“우리 팀이 달라졌어요.” “역시 조선놈들은 빡세게 굴려야 돼!” “감독님, 감사합니다! 눈물이 납니다!” 2015년 초입의 장면이다. 시즌 개막이 한참 남은 시기였음에도 프로야구 관련 게시판과 뉴스 댓글은 전에 없이 달아올랐다. 기자들은 한화 이글스 스프링캠프 현장 사진을 거의 실시간 업로드하고 있었다. 사진 한장 한장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팬들은 처참한 몰골로 그라운드에서 뒹구는 선수들의 모습에 열광했다. 새로 부임한 감독은 ‘야신’ 김성근이었다. 그는 스프링캠프에서부터 선수들을 가혹하게 몰아쳤다. 펑고를 너무 받아 더 이상 일어설 힘조차 없는 선수들의 초점 없는 눈빛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들의 고통이 커지면 커질수록, 팬들의 환호 역시 비례해 커졌다.
2015년 시즌 개막 이후 한화 이글스는 이른바 ‘마리한화’ 돌풍을 일으킨다. ‘야신’ 김성근을 향한 찬사도 하늘을 찔렀다. 분위기만 보면, 팬들이 염원하던 ‘가을야구’도 문제없을 것만 같았다. 결국 포스트시즌엔 진출하지 못했다. 최종 순위는 6위였다. 하지만 한화 팬들은 내년엔 더 나아질 거라 서로를 다독였다. 야신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구단은 어마어마한 돈을 풀어 2016 시즌을 준비했고, 한화 이글스는 삼성마저 제치고 연봉 1위 팀이 됐다. 최고 감독에, 최고 연봉 선수들이었다. 못하는 게 더 이상한 전력이다. 올 시즌 직전 순위 예상에서 한화는 최상위권을 차지했다. 우승을 점치는 전문가와 팬도 적지 않았다.
2016년 프로야구가 개막하고 한 달 가까이 지난 지금, 한화 이글스는 10개 구단 중 10위다. 4월28일 현재 5승16패의 성적이다. 두산 베어스 선발투수인 더스틴 니퍼트 한 명의 승수(5승)와 한화 팀 전체 승수가 같다. 벌투와 혹사 논란, 특정 코치의 월권 논란, 이해하기 어려운 훈련 방식이 알려지면서 김성근 감독의 소통하지 않는 권위주의와 독선적 리더십이 연일 비판받았다. 급기야 일부 팬들은 ‘감독 퇴진’ 현수막을 걸기 시작했다. 김성근 감독을 리더의 본보기라 치켜세우던 많은 언론과 기자들은 대세가 바뀐 걸 느끼자마자 ‘태세 전환’에 돌입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불과 1년 전 어느 기자가 쓴 기사다.
“‘야신’이란 조어는 이젠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성역이다. … 김성근 감독은 70대 노년층은 물론 ‘삼포세대’로 불리는 20대에 이르기까지 희망을 준다. 그의 말 한마디는 전 세대에 울림을 준다.” 그렇게 야신을 찬양하던 기자는 며칠 전 올린 기사에 이렇게 썼다. “누가 한화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나. …2014년 말 김성근 감독의 한화행 소문이 일자 대부분의 구단 관계자 및 야구인들은 고개를 흔들었다. 한화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지 않기 바랐다. 김성근 감독의 야구관과 지도 스타일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화가 어떻게 될지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이토록 많은 김성근 야구의 반대자가 어디서 나타났는지 당황스러울 지경이다. 그 많던 야신 추종자들은 전부 어디로 가버렸는지도 신기하긴 마찬가지다. 사실 우리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성적이 나오면 ‘야신의 뚝심’이지만 성적이 안 나오면 ‘독선의 리더십’이 된다는 것을. 1982년부터 프로야구를 봐온 나 같은 올드팬에게 김성근 야구는 늘 한결같았다. 이리저리 변한 건 언론과 팬들의 태도였다. 이런 걸 지적하면 ‘프로’니까, 이기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거, 정말로 당연한 일일까?
그런 건 누구나 납득해야 하는 진리가 아니다. 모든 것을 결과의 성패에 따라서만 평가하는 태도는 프로페셔널리즘 따위가 아니라 단지 기회주의이고 성과주의일 뿐이다. 이기든 지든 틀린 건 그 자체로 틀린 것이다. 이기든 지든 맞는 건 그냥 맞는 것이다. 성적만 나온다면 성인 야구선수를 “아이”라 부르거나 비효율적이고 가학적인 훈련을 해도 용납된다는 식의 생각, 산업화를 했으니 민주주의를 파괴한 것은 어느 정도 용납된다는 식의 생각, 그런 생각들을 성찰하고 바꾸지 못한다면 두 얼굴의 야신은 영원히 다시 돌아올 것이다. 이건 “그깟 공놀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박권일 칼럼니스트※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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