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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12일 글쓰기 고전 <글쓰기 생각쓰기> 윌리엄 진서
등록 2015-05-27 15:22 수정 2020-05-03 04:28

글쓰기의 고전 (원제 On Writing Well)의 저자 윌리엄 진서가 2015년 5월12일 미국 뉴욕에서 숨졌다. 향년 92세. 작가이자 진서의 아내인 캐럴라인 프레이저 진서는 “남편이 맨해튼 자택에서 지병으로 숨을 거뒀다”고 AP에 전했다. 윌리엄 진서는 평생 신문기자이자 작가, 교수로 일했다. “글쓰기의 명료함, 단순함, 간결함과 인간미를 전해준 사람”이라고 는 보도했다.

아내의 충고가 책 집필의 계기
AP 연합뉴스

AP 연합뉴스

작가인 로라 프레이저는 에 기고한 글에서 윌리엄 진서와의 만남을 이렇게 기억했다. “그는 내게 ‘당신의 에이전트나 편집자가 원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 원하는 글을 쓰세요’라고 했다. 진실된 이야기가 곧 독자를 위한 글쓰기임을 가르쳐준 사람이었다. 그는 언제나 작가들에게 현명한 멘토였다.”

윌리엄 진서는 1922년 뉴욕에서 4남매 중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독일 이민자 출신인 할아버지는 천연 합성수지를 만드는 회사를 차렸다. 자신의 뒤를 이어 가업을 잇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기대와 달리, 윌리엄 진서는 글쓰기를 평생의 업으로 삼았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좋은 칼럼과 신문 기사를 읽어준 영향이 컸다. 학창 시절부터 학보사 잉크에 중독된 그는 기자가 되고 싶었고, 무엇보다 에서 일하고 싶어 했다고 BBC는 전했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뒤 그는 에 첫 출근을 했다. 신문사에서 피처 기사와 영화 리뷰를 썼다. “나의 선택은 아버지의 가장 큰 아픔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내가 택한 분야에서 잘해내길 바랐다. 그보다 더 좋은 선물을 받은 아들은 없었다”고 1988년에 열린 웨슬리대학 강연에서 윌리엄 진서는 말했다.

1966년 경영 악화로 이 폐간됐다. 이후 그는 프리랜서로 나섰다. 1973년부터 1979년까지 예일대학에서 논픽션 글쓰기를 가르쳤다. 이 수업을 바탕으로 책을 썼다. “예비 작가를 위한 책을 내야 하지 않겠느냐”는 아내의 충고가 책 집필의 계기였다고 는 전했다.

당시 예일대학의 글쓰기 교재는 코넬대학 영문학과 교수 윌리엄 스트렁크 주니어가 1919년에 쓴 책을 E.B. 화이트가 고쳐 펴낸 였다. 좋은 문체를 위한 조언을 담은 책으로 당시 필독서였다. 윌리엄 진서의 사무실 벽에는 화이트의 사진이 늘 걸려 있었다.

“처음 글쓰기 책을 쓰는 내내 마음에 걸렸다. 그 책()은 글 쓰는 사람들의 필독서였고, 나 역시 그를 역할 모델로 삼아 그의 문체와 간결함을 닮으려 했다. 나는 그의 책과 경쟁하는 대신 그것을 보완하는 책을 쓰기로 했다”고 윌리엄 진서는 자신의 책에서 회고했다. 그렇게 하여 1976년 첫 출간된 그의 책 는 미국에서만 150만 부가 팔렸다.

그의 인생은 의 서문에 적은 대로 ‘사람과 장소, 과학과 기술, 역사와 의학, 비즈니스와 교육, 스포츠와 예술 등 글쓰기의 소재가 될 수 있는, 하늘 아래 모든 것에 대해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조언을 묵묵히 적어 내려간 과정이었다. 이 책은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30차례나 개정판을 냈다. 2007년에 나온 30번째 개정판을 번역한 책이 한국에도 출간됐다(돌베개 펴냄, 이한중 옮김).

한 번도 작가를 꿈꾸지 않은 작가

그는 논픽션과 저널리즘 글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논픽션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것과 관찰할 수 있는 것, 발견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쓸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미국에서 좋은 저널리즘은 곧 좋은 문학이 되었다. 논픽션은 저널리즘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또한 글쓰기의 즐거움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내가 재미있으면 다른 누군가도 재미를 느낄 것이다. 그러면 글쓰기는 하루하루 바칠 가치가 있는 일이다.” 글쓰기는 외로운 작업이기에 스스로 흥을 돋우려 애쓴다며 비결을 공개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자신이 흥미 있는 주제에 대해 쓰라”고 했다. 실제로 그는 외에도 야구, 재즈, 동화,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평생 19권의 저서를 냈다.

글쓰기 선생님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정작 그는 작가를 한 번도 꿈꾸지 않았다고 한다. “나의 작가적 목소리와 문체를 찾지 못했다”고 또 다른 저서 (원제 Writing About Your Life)에서 밝혔다. “를 쓸 때만 해도 나는 우아한 에세이스트나 칼럼니스트가 되길 바랐지만, 나의 진정한 역할은 내가 아는 글쓰기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었다”고 덧붙였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 그는 뉴욕 뉴스쿨에서 글쓰기 수업을 이어나갔다. 문학계간지 (The American Scholar)에 글쓰기, 대중문화, 예술에 대한 다양한 에세이도 연재했다. 2012년이 돼서야 윌리엄 진서는 은퇴했다. 당시 그는 친구들에게 “내 삶의 다음 단계로 접어들었다. 녹내장 때문에 급속도로 시야가 흐려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의 70년 글쓰기 인생은 그렇게 저물었지만, 그의 글은 남았다.

에서 진서는 이렇게 조언한다.

첫째, 간소한 글이 좋은 글이다. 좋은 글쓰기의 비결은 모든 문자에서 가장 분명한 요소만 남기고 군더더기를 걷어내는 데 있다.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하는 단어, 짧은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긴 단어, 이미 있는 동사와 뜻이 같은 부사, 읽는 사람이 누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게 만드는 수동 구문, 이런 것은 모든 문장의 힘을 약하게 하는 불순물일 뿐이다.

둘째, 버릴 수 있는 만큼 버리자. 자신이 쓴 글에서 군더더기를 찾아내 가차 없이 빼버리자. 내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기꺼이 버리자. 모든 단어가 새로운 역할을 하고 있는가. 그 생각을 더 경제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가.

셋째, 나만의 것이 곧 문체다. 문체는 글 쓰는 사람 고유의 것이다. 글을 애써 꾸미는 것이 문제다. 그러다보면 자신만의 것을 잃고 만다. 독자들은 진실한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

흉내내는 것을 주저하지 말라

넷째, 글 쓰는 자신을 위해 써라. 독자는 모두 서로 다른 사람이다. 그들은 막상 글을 읽을 때까지 자신이 무엇을 읽고 싶은지 모른다. 궁극적으로는 스스로를 위해, 한 사람의 청중을 위해 글을 써야 한다.

다섯째, 글쓰기는 모방이다. 다른 작가를 모방하기를 주저하지 말자. 모방은 예술이나 기술을 배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치는 창조적 과정의 일부다.

여섯째, 글쓰기는 과정이다. 작가가 완성된 글에 집착하면 여러 문제가 생긴다. 글의 형식과 목소리, 내용을 정하기 위한 결정에 집중하지 못하게 된다. 글쓰기의 과정을 즐겨라.

일곱째, 어떤 글에서건 가장 중요한 문장은 맨 처음 문장이다. 첫 문장이 독자를 둘째 문장으로 끌고 가지 못하면 그 글은 죽은 것이다. 그리고 둘째 문장이 독자를 셋째 문장으로 끌고 가지 못하면 마찬가지로 그 글은 죽은 것이다.

김승미 여행자 ·전 기자이 글은 , BBC, 와 그의 저서 를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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