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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성으로 단련된 언어학

등록 2001-10-31 00:00 수정 2020-05-02 04:22

인간의 언어능력은 타고나는 것…언어의 본질에 대한 과학적 통찰로 신기원을 개척하다

노엄 촘스키는 생성문법으로 알려진 그의 언어학으로서뿐 아니라 심리학, 철학, 인지과학, 인공지능, 정치학 등에서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상가이다.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해리스를 통해 언어학을 공부한 촘스키는 1955년 <통사구조>라는 논문으로 언어학의 혁명이라 불리는 새로운 이론을 제기하였다. 언어의 설명에 변형규칙을 도입하고, 아이들의 언어습득 현상에서 나타나는 창조성과 용이성 등을 손쉽게 설명할 수 있다는 데서 촘스키의 이론은 일거에 언어학계를 풍미하게 되었다. 당시 대서양 양안(미국과 유럽)의 구조주의 언어학이 음운자료의 축적에 치중하고, 당대를 풍미하던 행동주의 심리학이 언어습득을 비둘기의 운동역학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고 주장할 때, 촘스키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며 보편언어설과 언어생득설을 주장했다.

보편언어와 언어생득설

보편언어란 현상으로서의 언어가 아니라, 언어에 공통된 특성들의 집합을 의미한다. 그의 주저인 <지배와 결속이론 강의>(1981)는 언어의 보편원리와 매개변항을 자세히 논하고 있다. 한국어와 영어는 공통의 보편원리와 서로 다른 매개변항 값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즉 영어와 한국어는 후치사와 전치사, 목적어-동사 순서와 동사-목적어 순서, 절-접속사와 접속사-절의 순서를 가진다. 이런 차이점들은 모두 핵-매개변항으로 설명된다. 예컨대 영어는 Mary(주어) likes(동사) John(목적어)의 순서를 갖는 반면 한국어는 메리는(주어) 존을(목적어) 좋아한다(동사)의 순서로 배열된다. 또 영어(to the school)는 전치사(to)가 명사(the school) 앞에 오지만 한국어(학교에)는 후치사(에)가 명사(학교) 뒤에 온다. 핵-매개변항이라 부르는 이런 차이는 두 언어 사이에 일관되게 나타나며, 따라서 순서만 바꿀 경우 모든 언어의 문법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촘스키의 중요한 학설 중 하나는 인간이 언어능력을 타고난다는 언어생득설이다. 언어는 자극과 반응의 산물인 언어행위일 뿐이라는 왓슨-스키너의 행동주의 실험심리학자들의 주장을 촘스키는 단호히 배격하며 성인과 어린아이의 언어습득을 예로 든다. 성인은 외국어를 배우기 위해 수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도 잘 안 되는 일이 허다한데, 어린아이는 두세살만 되어도 의식적 노력이나 공식적 훈련없이 주어진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한다. 게다가 어린아이가 접하는 언어자료가 말더듬이 부모와 같이 열악한 경우라 하더라도, 정상적 부모에게서 자라난 아이와 언어습득상의 차이가 없다. ‘플라톤의 문제’라 불리는 이러한 현상을 통해 촘스키의 언어생득설은 이론적 근거를 확보한다. 충분한 영양과 조건이 주어지면 팔다리가 성장하다가 일정 시기에 이르면 정지되는 것처럼, 언어도 일정한 조건만 충족되면 성장하다가 한계시기에 이르면 성장을 멈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촘스키 학문의 강점은 과학적 엄밀성에 있다. 명료성, 단순성, 대칭성, 엄밀성 등은 이미 <통사구조>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이 논문은 당시로서는 출판계의 이해를 얻지 못하고 이십년 뒤에야 출판되기도 했다. 물론 그는 이러한 자산들에 대한 지적소유권을 플라톤, 데카르트, 예스페르센 등의 이성주의 선배들에게로 돌린다.

엄밀성을 담보하기 위해 촘스키와 그의 동료들이 고안한 성분통어, 변형, 생성, 심층구조와 표층구조 등은 언어학의 기초이자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촘스키 언어학은 오늘날 다분히 추상화로 치달았고, 최근의 저서 <최소주의 프로그램>(1995)은 난해하기로 악명이 높다.

1990년대 이후 생물학과 연계

그의 이론이 명료성과 엄밀성을 띠고 있으면서도 고도로 추상화된 이유는 그의 스타일이라기보다 그가 추구하는 주제의 속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1990년대 이전의 촘스키 언어학이 언어습득과 보편언어의 증명을 추구했다면, 그 이후에는 인간언어가 필수적으로 충족시켜야 할 생물학적 조건들이 무엇인가를 규명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언어의 본질을 규명하는 과제는 이제 생물학과 맞물려 있는 셈이다. 비판적인 시각에서는 최근의 촘스키 이론이 언어학을 떠나서 언어연구를 생물학으로 전가시켰다고도 하고, 너무 추상화되어 더이상 아무런 실질적 내용이 없다고도 한다.

장영준/ 중앙대 교수(영문학·언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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