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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은 지속된다

등록 2002-01-16 00:00 수정 2020-05-02 04:22

정보경제 바탕한 탈물질적 노동 증대… 일자리 안정성 잃어 노동의 가치 왜소

정보화와 자동화가 노동에 결코 복음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은 오래 전에 나왔다. 그것은 일반화한 예측이기도 하다. 제레미 리프킨은 (민음사, 1996)을 통해 자동화의 물결이 불러올 대량실업의 악몽을 섬뜩하게 경고했다. 이언 엥겔의 (롱셀러, 2001)과 비비안 포레스테의 (동문선, 1997) 또한 정보화에 따르는 숱한 직종의 소멸과 실업을 강력하게 경고했다.

새로운 유형의 일자리 꾸준히 나와

그러나 반론도 결코 만만치 않다. 스웨덴 경제사학자 모리시오 로하스는 80∼94년 피고용인은 전세계적으로 6억3천만명이, 미국에서만 45%가 오히려 늘었다며, 노동의 종말론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물질적 생산노동의 소멸, 또는 주변화 못지않게 새로운 유형의 일자리 또한 꾸준히 창출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번역돼 나온 라이시 전 미국 노동부 장관의 (김영사)와 네그리·하트의 (이학사)은 둘 다 탈물질적 노동의 증대되는 위상과 의미를 본격적으로 부각시켰다.

에 따르면, 정보경제로의 이행은 노동의 질과 본성의 변화를 수반한다. 노동은 이제 이전처럼 물질적 형태의 상품 생산에 직접적으로 투여되기보다는 서비스, 문화상품, 지식 혹은 소통과 같은 비물질적 재화를 생산하는 데 주로 바쳐진다. 산업노동자 계급은 대공장제하에서 물질적 생산품을 대량생산하는 작업의 주축을 이뤘지만, 이제 그 헤게모니적 지위를 상실하게 된다. ‘노동의 종말’ 담론은 이 한 가지 현상만을 부각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동시에 지식경제 체제에서 기본적인 생산수단은 더이상 자본도, 자연자원도, 노동도 아니며 지식이라는 지식경제론의 노동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드러커(지식경제론의 주창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지식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생산되며, 지식의 생산은 새로운 종류의 생산수단과 노동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탈물질노동은 크게 둘로 나눠볼 수 있다. 먼저 분석적이고 상징적인 일들이다. 디자인, 컨셉, 계획, 전략, 계약, 통찰력 등을 고안하고 판매하는 분야의 노동이다. 라이시는 이를 상징적, 분석적 서비스라 부르며, 새로운 세계화 경제에서 경쟁력의 열쇠라고 본다. 투자분석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경영컨설턴트 등의 직업군이 이에 속한다. 은 그러나 창조적이고 상징적인 지식노동의 성장은 자료입력과 워드프로세싱 등 낮은 가치 직무들의 성장에 기반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비물질적 생산영역 안에서 근본적인 노동분업이 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인간의 접촉과 관련된 정서적 노동이다. 의료와 육아, 가사, 친밀함의 제공 등은 가족이나 이웃 같은 비시장적 인간관계의 영역에 속했다. 이런 정서적 보살핌이 새롭게 상품화 영역에 포섭되면서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이런 노동은 신체와 의미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뤄지지만 안심, 행복, 만족감 등의 만질 수 없는 결과를 산출한다는 점에서 탈물질적이다.

일이 갈수록 부담스러워지고 있다

탈물질적 노동이 늘어나면 절대고용량은 커지지만 일자리의 안정성은 크게 흔들린다. 네트워크의 발달은 그때 그때 필요한 노동력의 연결을 가능하게 한다. 이 속에서 소수의 창조적 지식노동자는 거액의 몸값을 챙길 기회를 얻지만, 다수의 노동자는 예고없는 해고의 위험에 노출된다. 또한 전통적으로 여성의 보상없는 가사노동에 속했던 관행에 따라 정서적 노동의 사회적 보상, 즉 임금수준은 매우 낮게 설정된다.

라이시는 높게는 민간 노동력의 30%에 이르는 임시직, 계약직의 대두와 정서적 노동의 열악한 임금 등을 가리키며 “일이 과거보다 삶의 나머지 부분을 더 많이 침범하고 있으며, 일은 우리의 정신과 머리에 점점 더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더 적은 노동으로 더 많은 생산이 가능해졌음에도 노동은 다수의 사람들에게 더욱 팍팍한 과제가 되고 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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