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르크 부트게라이트 감독)이란 괴이한 영화가 있었다. 시체와 연애를 하고 섹스를 하는 시체애호증자(네크로필리아)들을 다룬 극영화인데, 그 표현 수위와 시선이 얼마나 직설적이고 노골적인지, 그래도 예술가 대접 좀 해준다는 독일과 미국에서도 상영 금지됐던 악명 높은 영화다. 썩은 시체를 끌어안고서 사랑을 해대는 이미지니, 뭐 할 말 다 했다.
‘전시’에서 ‘연출’로
한국은 시체애호증의 나라다. 장기 불황 속에서 유일한 생존책은 아무것도 안 하는 일뿐인 잉여시대라서 그렇다고?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전쟁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인터넷 시대라서 그렇다고? 천만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오기 전부터,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부터 한국은 이미 시체를 사랑했다. 군사정부와 안기부는 시체 전시 정책으로 정권을 유지했고, 1987년 이후에도 보수 권력층은 박정희의 죽음을 추모하는 동력으로 득세해왔다. 시체를 전시한다는 것은,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촛불시위를 기점으로 바뀐 것은, ‘전시’가 ‘연출’이 되었다는 것뿐이다. 기득권층은 시위대를 종북좌빨 세력, 즉 북조선에 조종당하는 괴뢰각시로 연출해버림으로써 위기를 벗어나곤 했다. 그들은 민중을 ‘좌좀’(누가 지었는지 정말 정확한 표현이다)으로 연출한다. 촛불시위 이후 가장 훌륭한 시체 연출자를 꼽으라면, 역시 국가정보원 되시겠다. 국정원은 각종 괴뢰각시, 좀비, 좌좀을 잊을 만하면 연출해주심으로써 진정한 좀비영화 연출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그들이 진정한 시체애호증자다. 시체가 없으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시체를 혐오하는 척하면서 시체를 사랑한다. 이는 마치 한 케이블방송사가 북한을 너무 증오한 나머지, 계속 북한 관련 방송만 내보내면서 은근히 그들과의 백년해로를 기원하는 것과 같다. 제발 내 곁을 떠나지 마. 네가 없으면 내가 살 수 없어. 사랑해줘. 쪽쪽쪽. (부트게라이트, 보고 있나.)
그리고 박정희 탄신제의 기운으로 현 정권이 태어났다. 시체애호증에 기반한 정권에서 사건마다 시체애호증이 등장한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세월호는 그들이 직접 연출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물 밖에서라면 사정이 달랐다. 생존자보다 주검을 더 건져내게 될 것이란 운명을 잠시 외면해볼 기세로, 그들은 유가족들과 추모 행렬을 또다시 ‘좌좀들’로 폄하해버렸다.
박근혜 정부가 과시한 시체애호증 중 역시 으뜸은, 구원파에 대한 사랑이다. 세월호 침몰 원인과 청해진해운의 비리가 얼마나 직접적으로 인과적인지, 세월호 실소유주가 결국 누구인지는, 그 소유관계가 억울하게 죽어간 원혼들을 얼마나 달랠 수 있는지는, 그렇게 중요한 사안이 아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구원파와 그의 수장 유병언 전 회장이 세월호의 모든 책임을 떠안을 수 있는 유일한 ‘죽일 놈’ 후보, 즉 시체 후보였다는 거였다. 그것이 그들이 유병언 전 회장을 미친 듯이 쫓아다녔던 이유이고(구원파 신도들의 “우리가 남이가?”라는 플래카드는, 이 추격 작전이 사실은 구애 작전이라는 뛰어난 은유인 듯하다). 그러나 현 정권의 시체 사랑은 이제부터 시작인 것 같다. 유병언 전 회장이 진짜 주검으로 되돌아왔으니 말이다. 비료포대 위에서 육포를 뜯어먹다가 사망하게 되었다는 기괴한 다잉 메시지를 남긴 채, 어색한 장소에서 어색한 포즈로 이미 반백골이 되어버린, 그래서 더더욱 침묵은 비명처럼 울려퍼지는, 진짜 시체 말이다.
누구의 무대인가의 마지막 장면은, 주인공이 시체를 산 사람처럼 연출한 뒤 그와 사랑을 나누는 충격적인 장면이다. 시체는 언제나 연출된다. 시체 주위엔 관객이 모여들기 마련이고, 시체는 이야기를 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시체는 언제나 무대 위에 있다. 무덤이란 무대다. 유병언의 시체는, 과연 어떤 무대일까? 그리고 또 누구의 무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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