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논산시 남쪽에 자리잡은 연무읍 금곡1리 화석마을에는 낡은 녹색 대문 집(연무읍 금곡리 256번지)이 있다. 이 허름한 집은 송재 서재필(1864~1951) 박사의 생가다. 격변기 우리 근대사의 정치·언론·사회·문화 등에서 큰 족적을 남긴 서 박사가 갓 태어난 뒤부터 7살까지 유년 시절을 보냈던 고택이다. 그가 1884년 갑신정변에 참여해 실패한 뒤, 그의 부모·형제·처·자식까지 비운을 맞이한 곳도 바로 이곳 화석마을이다.
서 박사 가족의 흔적은 마을 곳곳에 남아 있다. 마을 뒤편에는 서 박사 부모의 묘소가 있다. 이곳은 서씨 문중이 논산시에 기부채납한 땅이다. 그러나 현재 개인 소유인, 서 박사가 유년 시절을 보낸 고택은 주인 없이 오랫동안 비어 있어 이제는 폐가가 됐다. 집으로 통하는 길은 승용차 1대가 겨우 들어갈 정도로 좁아서 먼 곳에서 오시는 분들에게 보여드리기 민망할 정도다.
380여 명이 모여 사는 화석마을은 자기 땅으로 농사를 짓는 가구가 4분의 1에 불과한 소작마을이다. 논산 육군훈련소가 내려다보이는 따뜻하고 온정이 넘치는 이 정남향 마을에서는 오래전부터 서 박사의 생가를 잘 가꿔 그의 정신을 커가는 학생들에게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를 위해서는 논산시와 충남도의 도움이 절실하다. 나랏돈으로 서 박사의 생가를 사들여 복원·정비하는 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외지에서 오는 이들에게 자랑하고 마을의 자긍심을 높여주고 싶지만, 관계 당국의 대답은 늘 “예산이 없다”다. 충남도의회에서 서 박사 생가를 도 지정문화재로 지정하려는 논의가 있다지만, 속 시원한 답은 못 듣고 있다.
사실 복원사업은 우리 마을이 혼자 해나가기에는 벅찬 사업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둘 수도 없는 일이다. 이 때문에 우선 마을 주민들이 나서기로 했다. 을 만든 당사자이자 최초의 서양 의사였던 서 박사의 업적을 홍보하는 추진위원 등도 있다. 또 마을 주민이 모두 뭉쳐 여러 통로를 통해 생가 복원을 청원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전남 보성이 서 박사의 생가라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그러나 사실은 이렇다. 서 박사의 어머니인 광산 김씨는 1864년 친정인 보성에 가 아이를 낳았다. 화석마을에서 서 박사를 얻은 광산 김씨는 친정에서 출산을 한 뒤 다시 화석마을로 돌아왔다. 그런 탓에 보성의 집이 서 박사의 생가라고 하는 건, 마치 산부인과를 생가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논산 전체로 볼 때, 서 박사는 논산이 배출한 대표적인 근현대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백제 사비(지금의 부여) 방어의 요충지 득안성이 위치했던 논산은 조선시대에서는 예학의 1번지로 손꼽혔다. 사계 김장생과 명재 윤증의 유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충효 정신이 살아 있는 고장이다. 우리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지만, 근현대 인물에 대한 논산 시민의 관심과 교육적 활용 및 애향심 고취를 위한 노력은 많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서 박사의 생가 복원에 앞장서 근현대사의 거목을 키워낸 고향마을을 역사·문화 자원으로 드높이는 것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그동안 우리 마을이 서 박사의 추모제를 올렸지만 지금은 경제적 어려움 탓에 연무읍 번영회가 추모제를 맡고 있다. 현재도 마을 위층에 사당이 있다. 마을 주민들은 하루빨리 박사님의 고택이 복원돼, 매주 전국 각지에서 이곳을 찾는 8천여 명에 이르는 관광객에게 자랑하고 싶다. 그리고 논산의 애향심도 높이고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분을 후대에 알려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싶다. 앞으로 복원사업이 이뤄진다면 근대사의 체험장이 될 뿐 아니라 우리 마을 발전에도 큰 이정표가 되리라 확신한다.
논산=차택환(충남 논산시 연무읍 금곡1리) , 송재 서재필 박사 생가복원추진위원회 총무지역통신’은 전국 곳곳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독자 여러분이 살고 계신 지역의 현안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글로 풀어 hwany@hani.co.kr로 전해주세요. 독자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를 바랍니다.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정우성 “아버지로서 책임 다할 것” 청룡영화상 시상식서 밝혀
“화내서 미안” 명태균에 1시간 사과 ‘윤석열 음성’…검찰이 찾을까 [The 5]
검찰·대통령실·감사원 특활비 다 깎았다…민주, 예결위서 강행
[단독] 친한 “한동훈, ‘공천개입 수사’ 김 여사까지 갈 수 있다 해”…친윤에 엄포
‘TV 수신료 통합징수법’ 국회 소위 통과에…KBS 직능단체 “환영”
어도어와 계약 해지한 뉴진스, 왜 소송은 안 한다 했을까
한동훈 ‘도로교통법 위반’ 신고…“불법정차 뒤 국힘 점퍼 입어”
롯데호텔에서 밤에 페인트칠 하던 노동자 추락 사망
박단 전공의 위원장, 재차 “의대 모집 중지를…여론 조금씩 바뀌어”
동덕여대, ‘본관 점거 학생’ 고발…재물손괴·업무방해 등 6개 혐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