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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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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댐원점재검토” 정부 약속 어디 가고

댐추진위 횡포 묵인하는 영양군·경찰
현수막 훼손에 주민 폭행도 모르쇠
등록 2013-11-27 14:39 수정 2020-05-03 04:27
지난 5월 경북 영양군 송하리 입구 송정교 위에 영양댐 건설에 반대하는 내용이 담긴 펼침막이 걸려 있다.한겨레 강재훈

지난 5월 경북 영양군 송하리 입구 송정교 위에 영양댐 건설에 반대하는 내용이 담긴 펼침막이 걸려 있다.한겨레 강재훈

경북 영양군 송하리 송정교 옆에는 컨테이너가 있다. 영양댐 건설을 반대하는 이곳 주민들(영양댐건설반대 공동대책위원회)이 한국수자원공사 하청업체의 측량을 막는 등 마을을 지키기 위해 지난 2월부터 세워둔 공간이다. 송하리는 영양댐 건설 예정지다. 이곳에 댐이 들어서면 이 일대 56가구가 물에 잠긴다.

지난 11월19일 아침, 이곳 컨테이너 일대와 좁은 산골길은 경찰 기동대버스 4대 등 차량 10여 대와 경찰 150여 명으로 꽉 메워졌다. 컨테이너와 30m 떨어진 곳에 영양댐 공동추진위원회(추진위)가 새로운 사무실을 차리고 현판식과 궐기대회를 하기 위해서다. 경찰 병력은 현판식 3시간 전부터 마을에 쏟아졌다. 마을을 지키려는 촌로와 부녀자들은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아 현판식을 막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날 주민 4명이 현장에서 연행됐고, 부녀자들은 남자 경찰들에게 무차별 강제 이동되는 과정에서 성적 수치심까지 느껴야 했다.

원래 추진위 사무실은 읍내에도 있다. 영양 5일장이 섰던 이날 추진위는 마을에서 궐기대회와 현판식을 한 뒤, 읍내로 이동해 또다시 궐기대회를 진행했다. 마을을 지키는 주민과 마을을 팔려는 주민이 지척에 있다보면 충돌은 불 보듯 뻔해, 영양경찰서장과 영양군수에게 사무실 입주 철회를 요청하고 항의 방문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경찰도 반대 주민들의 바로 옆에서 진행하는 집회가 충돌로 이어질 거라고 충분히 예견했을 것이다. 그러나 추진위가 읍내 집회를 마치고 마을로 돌아와 해산할 때까지 경찰은 충돌을 방지하는 책임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이날 경찰의 보호 아래 진행한 현판식이 끝난 뒤, 추진위 사람들을 태운 관광버스와 경찰버스도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추진위는 읍내에서도 궐기대회를 마친 뒤 관광버스를 타고 마을로 돌아오다가, 국도변과 마을 진입도로변에 붙어 있던 영양댐 반대 펼침막을 미리 준비한 낫과 칼로 마구잡이로 훼손했다. 이 장면을 마을 주민이 목격했고, 이를 담으려고 현장에 온 동영상 카메라맨은 추진위 사람들에게 잡혀 넘어졌다. 카메라를 보호하려고 끌어안는 동안 12명에게서 집단폭행을 당해 카메라맨이 병원에 실려가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지난 7월 펼침막 철거 행정대집행을 시도했다가 마을 주민의 반발로 무산된 경험이 있는 영양군은 이날 추진위의 행동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한국수자원공사도 수몰 예정지에서 ‘영양댐 공동추진위원회’라고 새긴 현판을 거는 사진을 확보했다. 반대 펼침막이 사라진 마을 어귀와 추진위의 현판이 걸린 사진이 어디에 쓰일지는 안 봐도 뻔하다.

영양댐은 영양군수가 국토교통부에 요청한 사업이다. 여러 차례 수요처 변경을 겪어 180km 떨어진 곳에 물을 보내고, 이미 폐기된 휴타운 사업으로 수요를 산정하는 등 수많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영양군은 국비 수천억원을 끌어와 영양을 발전시키겠다면서도 댐 건설로 영양군이 겪게 될 100억∼300억원의 농업 손실, 11년째 이어져온 명품 영양고추의 상품성 실추, 환경파괴 등은 검토조차 하지 않는 편향을 보여왔다. 환경부조차 전략환경영향평가를 통해 사실상 댐 건설에 반대했는데도 말이다.

국토부는 지난봄, 절차를 무시하고 댐 건설을 강행하려다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와 여론 악화에 부딪히자 ‘원점 재검토’를 공식 발표했다. 그 뒤에는 ‘댐 사업절차 개선방안’을 공언했지만, 현실은 이렇다. 게다가 국토부는 마을 주민 12명을 상대로 낸 형사고발과 56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취하하지 않고 있다. 정부의 지켜지지 않는 약속으로 주민들이 고통받고 있는 이 사태의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영양=이상철 송하리 주민·영양댐건설반대, 공동대책위원회 사무국장*‘지역통신’은 전국 곳곳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독자 여러분이 살고 계신 지역의 현안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글로 풀어 hwany@hani.co.kr로 전해주세요. 독자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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