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공산성에는 파란 천막이 덮여 있다.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공주 시민의 자존심이자 백제의 슬픈 역사를 간직한 공산성(사적 12호) 일부가 지난 8월 중순부터 무너져내렸기 때문이다. 붕괴 이유를 두고 “4대강 사업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시민사회단체와 “빗물 때문에 무너졌다”는 정부가 다투고 있지만, 원인도 파악하기 전에 보수부터 서두르는 공주시까지 너무들 한다는 생각이 든다.
“강물 끼고 세워져 수량 변화땐 지형에 영향”
공주 시내 어디에서 봐도 어머니처럼 늘 그 자리를 지키던 공산성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가슴이 무너지고 자존심이 상했다. 공산성은 북쪽으로 금강을 끼고 있다. 금강의 폭은 300m(장마철을 제외하고는 200m)로 넓은 강변에는 황금빛 하중도(모래사장)가 펼쳐진다. 대보름이면 시민들은 이곳에 몰려나와 깡통을 돌리는 등 휴식처로 늘 사랑해왔다.
2009년 4대강 사업으로 공산성에서 100m 떨어진 구간부터 강 건너 200m 구간까지 모래사장 준설이 시작됐다. 수많은 전문가가 현장을 다녀갔다. 공산성을 세 차례 찾은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은 “공산성은 강물을 끼고 세워졌기 때문에 수위가 높아지고 수량이 늘어날 경우 삼투압의 영향으로 지형 변화와 함께 지질에 염려와 붕괴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언론에도 알려졌지만, 당시 공주 시민들은 4대강 사업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이 많았다.
그 우려는 8월 초 강변을 낀 공산성 성곽 20곳에서 임신부의 배처럼 부풀어오르는 이른바 ‘배부름 현상’으로 현실화했다. 성곽 밑동의 사석이 1m가량 밀리면서 어른 주먹이 들어갈 정도로 틈이 벌어지고 뒤틀리고 있었다. 공산성 안 공북루(유형문화재 37호) 근처에는 거대한 웅덩이(너비 7m)까지 생겼다. 문화 유적인 만하루와 연지(충남기념물 42호)도 곳곳에 틈이 벌어지고 강변 쪽으로 배부름 현상이 나타났다. 일부 사석은 유실까지 됐다. 이에 공주 지역 시민사회단체가 공산성을 방문해 “4대강 사업에 의한 과도한 준설의 영향”이라고 지적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다녀가고 변영섭 문화재청장 등이 이곳을 찾자 국토교통부는 “성곽에 나 있던 10cm가량의 구멍에 빗물이 유입돼 발생한 것”이라고 현장 방문 하루 만에 원인을 서둘러 발표했다.
공주시는 성곽 조사를 위해 산성 주변 수풀을 정리했다. 9월11일 금강변 500m 구간에서도 배부름 현상이 추가로 발견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던 공주시는 9월14일 오전 성곽을 걷던 시민에 의해 사고 소식이 알려지자, 서둘러 대형 천막으로 현장을 덮고 ‘공사 중’ 표지판을 세웠다. 충남도도 사고 발생 하루 만에 “80mm 빗물로 인한 사고다”라는 자료를 발표했다.
성곽이 위험에 처했음에도 공주시는 여전히 관광객을 출입시켰다. 공산성 금서루 근처에서는 옛 백제군 복장의 병사가 ‘웅진성 수문병 교대식’ 재연 행사를 했다. 그러면서 언론의 입을 막기에만 급급했다. 이처럼 공산성이 언론의 주목을 받은 일도 흔치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제59회 백제문화제를 앞두고 관광객이 줄어들 것과 내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실사단 방문을 앞둔 상황에서 사고를 감추고 싶은 마음이었는지, 공주시는 사고 하루 만에 서둘러 복원에 돌입했다.
원인 규명 없이 복원공사 서두르는 공주시시민사회단체는 매일같이 공산성을 찾아 “사고 원인을 찾은 다음에 복원을 서둘러도 늦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공주시는 “4대강 사업이 원인 가운데 하나다”라고 말하는 시민단체의 지적을 감추기라도 하려는 듯 서둘러 복원을 하고 있다. 공주 시민들에게 공산성은 서울 한복판의 국보 1호 숭례문과도 같다. 공주시 등이 지난 8월 초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에 귀만 기울였어도 붕괴까지는 오지 않았을지 모른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인지는 모르지만, 더욱 철저한 조사와 검증을 통해 숭례문처럼 공산성이 다시 우뚝 서기를 바란다.
공주=김종술 공주생태시민연대 사무국장*이 전국 곳곳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하는 코너를 시작합니다. 독자 여러분이 살고 계신 지역의 현안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글로 풀어 hwany@hani.co.kr에게 전해주세요. 독자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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