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4일 경남 통영시청 브리핑룸장에서는 한 할머니의 떨리는 목소리가 장내를 숨죽이게 했다. 일본군 위안부 생존 피해자인 김복득 할머니가 ‘경남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가칭, 이하 역사관) 건립 기부금을 전달하는 자리였다. 백발의 할머니는 온몸을 떨며 절절한 마음을 전했다.
“한이 돼가지고, 이런 일이 또 일어날까 싶어… 겁이 납니다.”
“우리 아이들이 나만치 또 당하면 안 되니까, 그래서 하게 됐습니다.”
참석한 많은 기자들이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할머니의 말과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그 역사적 현장을 기록했다. 무게를 가늠할 수 없는 고통을 홀로 감내하며 고난의 삶을 이어온 할머니의 더없는 헌신에, 참석자 모두가 먹먹함과 죄스러운 마음, 무한한 존경의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96살 김복득 할머니. 그는 전국에서 두 번째, 경남에서 최고령인 할머니다. 통영에서 태어나 22살 되던 해에 취업사기로 끌려가, 중국과 필리핀에서 7년 동안 혹독한 일본군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한 일본군 위안부 생존 피해자다. 김 할머니는 1994년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생존 피해자로 등록됐고, 통영·거제 시민모임과 함께 10년 넘게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을 이끌어오고 있다. 수요집회, 일본 나고야·오사카 증언집회, 각종 집회에서의 생존자 발언, 수많은 언론 인터뷰 등으로 경남 지역에서 위안부 운동을 확산시키는 구심점이 됐고, 그 과정에서 김 할머니는 자신의 정체성과 당당한 자아를 조금씩 회복해갔다.
지역 주민들의 관심과 학생들의 끊임없는 방문봉사는 김 할머니에게 행복한 노후를 안겨다줬고, 이는 아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져 마침내 장학기금 기부라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정부지원금을 아껴 모은 전 재산 2천만원을 어려운 학생들이 꿈을 키워가는 것을 조금이라도 도우고 싶다며 통영여고에 장학기금으로 내놓으신 것이었다. 이 사실은 언론에 보도돼 우리 사회에 감동과 존경을 불러일으켰고, 각계각층에서 격려와 위로금이 전해져 할머니를 자존감과 자긍심으로 물들게 했다.
그리고 또다시 이어진 역사관 건립 기부금 2천만원. 여기에는 할머니의 이런 자존감과 자긍심이 깊게 배어 있다. 가난한 농촌, 집결지인 부산, 일본과의 지리적 위치 등의 조건들이 충족된 경상남도다. 이러한 이유로 전국에서 가장 피해가 많이 난 곳이 되었고, 인구 대비 단일 지역으로 가장 많은 수의 피해자가 등록된 곳이 통영이다. 우리 사회는 이 지역이 지닌 역사적 의미를 담아내 제대로 기록해야 할 책무가 있다. 지역의 피해 실태 조사와 연구를 통한 자료 수집·기록·보관·전시를 통해 그들의 역사를 올바르게 정립해야 한다. 전국에 등록 피해자 237명, 생존자 56명, 경남 지역 생존자 단 8명, 이 절박함을 정부와 경상남도·경남도의회 등 지역사회가 깊이 성찰해 하루속히 역사적 책무를 이행해나가야 할 것이다.
김 할머니는 역사관 건립이라는 희망의 주춧돌을 놓았다. 이제 우리가 그 손을 잡아야 할 때다. 할머니의 고귀한 뜻, 아낌없는 헌신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가 받들어 이어가야 한다. 할머니는 피해자임에도 모든 걸 내놓으며 스스로 고통을 치유해나가는 모습으로, 그동안 무관심과 방관으로 외면해온 우리 사회와 무책임한 대한민국 정부 그리고 일본 정부를 향해 손짓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 평화를 주자고,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게 하자고. 역사관 건립, 인권과 평화의 상징으로 우리 모두가 세워내기를! 김 할머니 살아생전에!
송도자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하는 통영·거제 시민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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