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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콘서트> 전성기 이끈 서수민 PD… “지금
의 <개콘> 만든 건 구성원의 절박감과 동지애”
등록 2013-10-23 15:30 수정 2020-05-03 04:27
서수민 피디. 한겨레21 탁기형 기자

서수민 피디. 한겨레21 탁기형 기자

지난번 인터뷰에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에게 ‘외면하지 않는 삶’에 대해 많이 물었다. 읽어보니 왜곡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내용들이 활자화돼서 공개된다는 사실은 여전히 민망하고 불편하다고 했다. 보면서 식은땀이 났다고 토로했을 정도니 의례적 수사는 아닌 게 분명하다. 어땠는지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인터뷰를 다시 숙독했다. 외려 행간이 더 많은 말을 하는 느낌. 그게 또 김진숙이란 사람일 것이다. 누구를 만나도 그런 뒷북이 많겠구나 하는 예감. 서수민 PD와는 어떨까.

“너무 얘기에 치중한 거 아닌가 몰라요.” 서수민 PD와 인터뷰하고 나오는데 동석했던 기자가 지나가듯 그렇게 말했다. 그럴 수도. 하지만 어떤 경우엔 그가 하고 있는 일의 색깔이나 성과가 더 그 사람이기도 하다. 작가가 육성보다 자신의 작품을 통해 자기를 더 잘 드러내게 되는 시기가 있는 것처럼 지금의 서수민이라는 사람은 그런 경우에 해당된다고 믿어서 한쪽으로 치우쳤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하 )가 작품이라고 한다면 그 작품의 시각에서 가장 중요한 창조자 중 한 사람인 서수민에게 둘이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혹은 어떤 의미의 관계인지 묻고 또 물었던 듯싶다.

한 주를 마감하는 ‘콜 사인’이 된

은 경이적인 프로그램이다. 무려 14년간 해당 분야에서 1위다. 매주 일요일 저녁이면 100분 동안 14개의 촌철살인으로 보는 이를 들었다 놨다 하는 요물이다. 직장인들에게 이 한 주를 마감하는 콜사인이 된 지는 이미 오래다. 최근 3년간 의 질적인 변화는 놀라울 정도다. 시청자와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올해 초 서수민 PD는 으로 ‘올해의 PD상’을 받았다. 지난 25년간 시사교양 PD가 아닌 예능 PD가 대상을 받은 전례는 없었다. 동업자끼리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경지에 올랐다는 방증이다. 14년 전 이 처음 시작할 때 조연출로 과 인연을 맺은 서수민은 최근 3년 의 선장이었다.

-요즘은 ‘의 서수민’이란 표현이 안 맞는 건가요.

네. 의 연출은 아니죠, 지금은. 연출을 3년 하다가 지난해 팀장으로 승진했어요. 을 포함해 두세 개 프로그램의 팀장을 합니다.

-그러면 지금 에 투입하는 에너지는 어느 정도인가요.

하루 일과를 100이라고 봤을 때 제 에너지의 한 30? 현재 스코어는 30.

-지금도 에 애정이 많은 거죠.

그럼요. 을 하고 있죠. 아직까지는 이 내 생활이라고 생각해요.

-을 서수민의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나요.

제 작품이라는 건 좀 아닌 거 같고요. 그냥 제가 사는 곳. 그러니까 예능 PD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하다가 이란 프로그램을 맡고 나서는 여기 살게 된 거 같아요. 개그맨들도 사실상 여기서 산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생활을 여기서 다 하잖아요. 생각도 그렇고 모든 생활적인 부분도 과 맞닿아서 만들어진 것이 많고. 무엇보다 제가 PD로서 연출적인 마인드나 보람 같은 여러 가지 것을 다 찾으면서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게 인 것 같아요. 아마 PD를 놓을 때까지는 저한테 그런 게 남아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게 부담이세요, 훈장이세요?

둘 다인 것 같습니다. 사실 훈장이라기보다 저 스스로에게 ‘아, 이제 예능 PD로 나중에 죽어도 ‘나 뭐했다’라는 말은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있어요. 나타난 성과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의 만족도로 봤을 때 생각보다 잘한 거 같아요. (웃음) 잘했다는 게 무슨 말이냐 하면, ‘너무 잘해’ 뭐 이런 게 아니라, 생각보다 잘했다. 처음에 되게 떨면서 했거든요. 어떻게 안 떨리겠어요. 이게 그냥 제가 편집해서 띡띡 고치는 어떤 영상물이 아니라 사람들이잖아요. 출연진이 100명이나 되는. 어떤 애는 당장 월세가 없고 어떤 애는 여기서 못 뜨면 집으로 내려가야 하고. 이런 애들이 내 어깨 위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처음에 되게 떨리더라고요. 근데 떨리는 걸 들키면 안 되죠. 만만하게 보니까. (웃음) 안 들켜야 하는 상황 속에서, 그리고 제가 코미디를 잘 모르니까 모르는 것도 들키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모르는 나도 내가 불안하고, 이 애들도 내가 잘할까, 이런 불안한 시기를 오래 거치다가 어느 하나가 터지는 순간 그다음부터는 자신감이 붙잖아요. 모든 일이라는 게 그렇게 자신감이 붙으면 ‘요건 요렇게 해보자, 저렇게 해보자’ 하는 의지가 저한테 나왔을 때 그 의지들이 발현이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박수도 받고 비난도 받고 그런 리액션을 통해 개그맨들도 저도 많이 클 수 있어서 그게 가장 큰 훈장인 거죠.

“웃기는 스킬 떨어져도 ‘말’에 집중했다”

지난 14년간 에는 7명의 PD가 있었다. 늘 정상이었지만 그가 연출을 맡은 지난 3년간 은 질적인 성장이 현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시청률 30%대를 기록한 2000년대 초반을 전성기라고 규정했지만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으로만 따진다면 지금이 전성기란 말도 일부 맞다고 조심스럽게 인정했다.

-어떤 것들 때문에 영향력이 크다고 보는 건가요.

개그에 대한 인식에서 많은 걸 바꿔놓은 것 같아요. 가장 쉽게 판단할 수 있는 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애들이 개그맨 유행어를 따라하면 혼냈어요. 선생님이 어머니한테 ‘애가 개그맨을 따라한다’고 이르기도 했죠. 그러면 막 집안 회의가 열리기도 하고. 근데 이제 모두가 따라해요. 에서 나오는 유행어는 괜찮다…. (웃음) 이제는 개그맨에 대해서도 눈 아래로 깔고 보는 경향이 조금씩 없어지고 있어요. 개그맨들이 신뢰가 필요한 제품의 광고 모델에 다 투입됐어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지금이 의 전성기가 맞아요.

주위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확실히 그렇다고 장단처럼 귀띔해줬다.

-그러면 그런 의 전성기에 본인이 기여한 바 혹은 역할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웃음) 뭘까요?

-뭔가요.

사실 저 이전에는 의 PD가 전부 남자분이셨어요. 어떻게 보면 코미디라는 장르가 굉장히 남성적일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여자인 게 뭐가 다를까 그런 생각도 있었을 텐데 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있었던 것 같아요. 같은 개그맨인데 쓰이는 캐릭터라든가 이런 게 많이 다르다는 걸 느꼈거든요. 저는 앞의 선배들보다 코미디적인 메이킹이 약해요. 너무 진지한 스타일이었고 대학교 때도 정통 연극을 했고요. 집에서도 아버지가 맨날 가곡만 부르시고. 그런 면에서 웃기는 스킬은 굉장히 떨어지지만 제가 조금 달랐던 점은 말에 집중했던 거 같아요.

서수민 피디. 한겨레21 탁기형 기자

서수민 피디. 한겨레21 탁기형 기자

그런 연출적 스킬이나 개그 프로그램에 대한 독특한 방향성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 방면에서라면 서수민보다 더 걸출한 PD도 숱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의 최전성기는 서수민이 구축한 내부의 관계(신뢰) 인프라에서 비롯한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팀 내부의 관계 인프라가 의 질적 변화와 재미를 담보했다는 생각이다.

장학금이란 게 있다. 여유 있는 개그맨이 돈을 내서 아직 자리잡지 못한 동료에게 장학금을 준다. 장학금 수혜자가 인기를 얻어서 여유가 생기면 또 다른 동료를 위해 다시 장학금을 쾌척하는 방식이다. 수혜자도 부끄럽지 않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일종의 공동체 안전망이다.

내부에서는 실패해도 차별받지 않고 재도전할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진다는 사실이 상식에 속한다. 모든 구성원이 그렇게 믿는다고 들었다. 투명성과 공정성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들으며 전율했다. 우리가 꿈꾸는 공동체 정신이 거기에 있다고 느껴져서다.

-그런 관계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서수민이란 사람은 대단한 공로가 있다, 서수민의 힘이다, 저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제가 했다기보다는 개그맨들 스스로의 노력이 중요했다고 보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밖에 없다는 거예요. 절실함이라고 할까. 여기가 우리가 사는 곳이다. 이 안에서 어떤 룰을 만들고 이 안에서 문화를 만들어야 생존할 수 있다는 절박함, 동지애 같은 게 있단 말이죠. 제가 연극을 해봐서 그런 호흡을 개그맨들과 맞춰갈 수 있는 베이스가 있었던 것 같고요. 그와 함께 실패해도 되는 시스템이라는 거, 그 근본은 고용 안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정말 중요하죠. 외부에 괜찮은 개그맨들이 있어서 발탁의 유혹도 있었지만 저는 그러지 않았어요. 만약 우리에게 돼지 캐릭터가 없다면 이 안에서 살을 찌워서라도 하는 거예요. 그러면 밖에서는 폐쇄적이라고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죠. 그치만 저는 그렇게 해서라도 이 친구들이 안정감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엄한데, 의외로 별 거 아닌 엄마 같은 존재 -악역을 많이 맡는다는 것도 비슷한 맥락인 거죠.

그렇죠. 예전에는 코너가 떠도 다른 예능 프로그램이나 외부 행사에 못 나가는 경우가 많았죠. 하지만 저는 허락해요. 대신 검사를 하죠. 만약 밖에 나가서 사금융 업체의 행사를 하면 안 되는 거죠.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그런 건 못하게 해요. 중요한 건 못하게 하는 건 하게 하려고 하는 거라는 사실이에요. 하게 하려고 못하게 한다는 거죠. 그런 간섭으로 해서 제가 악역을 맡게 되는 거죠. 걔들을 지키려고요. 다행히 제가 그런 악역이 굉장히 잘 어울리고 그런 면이 좀 있기도 한 것 같아요.

겉으로 표시 안 나게 속으로 한참 웃었다. 귀여우셔라.

-함께 일하는 개그맨들이 서수민이란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 거 같으세요.

저도 그게 궁금해요.

-잘 모르세요? 예측하건대.

엄마?

-엄한 엄마요?

엄한데 의외로 별거 아닌 엄마인 거 같아요. 애들이 겉으로는 무서워하는데 저한테 하는 짓을 보면 (웃음)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 거 같아요. 지금은 조금 떨어져 있어서인지 ‘저 사람이 우리를 위해 애썼다’는 걸 알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약간 있어요. 저의 오버일 수도 있지만.

-인기 절정 개그 프로그램의 감독과 개그맨들 사이에서 느껴질 법한 절대적 권위와 접대, 치열한 눈도장 찍기 같은 게 에선 거의 안 느껴져요.

여기선 그런 거 없어요. 그런 걸 한번 하잖아요. 그러면 소문이 파다하게 나요. 걔는 이미 저잣거리에 대롱대롱 걸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게 있을 수 없어요. 얼마 전에 한 친구가 쭈뼛거리며 들어와 눈도 못 마주치면서 그러는 거예요. ‘평생 은혜를 갚아야 할 사람이 PD님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작은 거 하나 준비했습니다.’ 제가 ‘너 그거 꺼내는 순간 죽여버린다’ 그랬더니 바로 ‘죄송합니다’ 하고 나가버리는 거예요. (광경이 떠올라 폭소) 그걸 애들이 밖에서 다 보고 있어요. 그게 또 파다하게 퍼지고 애들한테 개그거리가 되는 거예요.

내가 마치 그 공동체의 일원인 것처럼 마음이 환해지고 안심이 되는 느낌.

-과 관련한 요즘 고민은 뭔가요.

코미디는 기본적으로 장르가 마이너여야 해요. 코미디는 약간 없고 힘든 사람들의 편에서 그들이 다이렉트로 말하지 못하는 걸 대신 꺾어서 말해주는 것에서 유래됐고, 그게 코미디의 근본인데 사실 요즘 이 사상 유례없는 1위를 기록하면서 메이저가 된 거예요. 메이저가 되다보니 개그맨들이 약간 덜 먹고 힘들고 궁핍한 상태에서 말한다고 보는 게 아니라 ‘이미 저것들은 배에 기름기가 있어’ ‘이미 저것들은 시청률 1위야’ 이런 이미지가 과 개그맨에 투영되니까 힘들어요.

-전성기에 있는 이의 배부른 투정처럼 들리기도 하네요. 근데 하는 일이 최정상에 오르면 개인도 함께 전성기인 경우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서수민 PD 개인적으론 지금이 전성기세요.

저요? 저는 지금이 전성기인 것 같습니다.

-외형과 내용의 간극이 전혀 없으세요.

외형적으론… 전성기죠.

-내용적으론요?

내용적으론… 잘 모르겠어요. 많이 인정도 받고 성취감도 있죠. 근데 다가 아닌 거 같아요. 제 사무실이 6층인데 이렇게 앉아서 찌푸리고 있으면 사람들이 ‘야, 쟤는 다 가져서 시청률도 나오고 그러는데 뭐가 또 불만이야‘ 이러거든요. 그럴까봐 행복한 척, 좋은 척을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근데 내면적으로는 제가 다른 인생을 시작한 것 같아요. 제 인생에 다른 부분이 스타트가 된 거 같아요. 이렇게 얘기하면 다 산 사람 같지만, 지금까지 자라기만 했잖아요. 자라야 한다, 해야 한다,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 해서 대학에 들어갔고, 졸업해서 직장을 가져야 한다 해서 들어갔고, 거기에서 또 뭔가 만들어야 한다 해서 만들었죠. 못 만든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그에 대한 리액션도 있었고. 근데 여태까지는 (손가락으로 앞쪽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화살표를 앞으로 두고 사는 삶을 살았다면, 이제는 이 화살표를 다른 방향으로 하고 살아야 되지 않을까. 옆이든 밑이든 안이든. 그래서 이거에 대해 조금 집중해서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 어떤 건지 아시겠죠?

누구에게나 전성기는 온다, 꼭

제대로 사는 것에 대한 고민을 제대로 하는 거 같아서 큰소리로 ‘네, 알고도 남아요’라고 답했다. 제2의 인생의 시작 단계에서 ‘멍때림’ 중인 거 같다는 그의 말이 믿음직스러워 물끄러미 다독였다. 그런 고민을 하는 뒷배 같은 엄마가 있는 한 의 전성기는 한동안 계속되겠구나 하는 애청자로서의 기분 좋은 확신과 서수민이란 사람은 전성기에 들어선 게 맞구나 하는 느낌이 이유 없이 신나서 그의 모든 것을 열심히 응원하기로 했다. 아직 처럼 전성기가 오지 않아 시무룩한 이들에게 서수민의 음성 지원으로 시인의 격려를 전한다.

“대낮 올빼미/ 눈 부릅떠/ 아무것도 못 본다/ 기다려라/ 네 밤이 온다 꼭“(고은, ‘올빼미’)

꼭 온다는 데 500원 건다. 서수민은 그렇게 덧붙였을 것이다. 거기에 나도 500원 건다.

이명수 심리기획자 , 녹취 강선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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