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스필드 교수는 매력적이었다. 킹스필드 교수를 모르신다고? 이라는 1970년대 미국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영화의 인기를 업고 TV 시리즈로 만들어졌다. 존 하우스먼이 연기한 킹스필드 교수는 나비넥타이, 표정 없는 얼굴로 기억에 남는다. 그는 제자들에게 엄격했지만 뜨거운 열정을 지닌 사람이었다. 하버드 법대를 배경으로 한, 외화 한 편은 법에 대한 기대치를 턱없이 높였다. ‘법은 합리적이고 공정하다’ ‘법은 무표정하지만 따뜻하다’라고 생각해버렸다. “킹스필드 교수에게 속아 법대를 다녔다”며 나는 법대에 입학한 사연을 설명하고 있다. 아직도.
법의 시대다. 법을 지켜야만 정상적인 시민 대접을 받는다. 법이 일반 사회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체벌을 대체하는 상벌점제로 따지자면 초·중·고등학교도 법이 지배하고 있다. 옆 반에 놀러만 가도 벌점을 받고 선생님 앞에서 앞머리를 빗어도 벌점을 받는다. 몽둥이를 놓으라 했더니 교육을 내려놓고 법을 끌어와 학교를 법정으로 만들었다. 이러다보니 연령을 초월해 법을 잘 지켜야 멀쩡한 국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알다시피 법은 호박씨를 잘 깐다. 법전보다 ‘유전무죄·무전유죄’의 원칙을 더 잘 따른다. 작은 도둑은 잡아도 큰 도둑은 못 잡는 게 법이다. 셰익스피어는 에서 “우리가 맨 먼저 해야 할 일은 법률가들을 모조리 죽여버리는 일이다”라고 하지 않았나. 맙소사. 현명하여라.
법이 공정한 심판자가 된다는 가정은 실제로 가능한 일일까? 루터는 왜 “좋은 법률가는 나쁜 이웃”이라고 말했을까? 진리로 통하는 모든 문의 열쇠를 법률가들에게 맡긴 사회는 목적을 이룰 수 있을까? 사람 사이의 갈등을 규칙에 의탁해야만 풀 수 있는 사회는 행복할까? 법과 규칙에 어긋나면 가차 없이 불법 사람으로 내치는 사회는 합리적일까? 법의 여신 눈가리개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지 않을까? 분명한 것은 주변과 변방, 변두리와 경계의 사람들은 불법 사람이 되어 유령처럼 부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공황 시절, 빵을 훔친 할머니에게 벌금 10달러를 선고한 피오렐로 라가디아 판사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가난한 할머니가 손녀에게 먹일 빵을 훔쳐야만 하는 이 비정한 도시의 시민들에게도 잘못이 있다. 그동안 배불리 먹어온 내가 벌금 10달러를 내겠다. 방청인 여러분도 각자 50센트씩 벌금을 내시라.” 판결은 벌금형을 선고받은 모든 방청인에게 웃음 가득한 눈물을 선물했다. 그들이 낸 벌금은 빵을 훔친 할머니에게 전달됐다. 라가디아 판사는 법보다 마음이 할 일이 더 많다는 것을 알려줬다.
법 없으면 유지될 수 없는 사회가 더 위험박근혜 대통령은 법 안 지키는 사람들만 내각에 세우려다 번번이 망신당했다. 그런데 국민을 대상으로 준법교육을 하겠다는 포부를 밝혀 한참 웃음거리가 되었다. 법 없으면 유지될 수 없는 사회가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많은 사회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을 내쫓으려고 서울 대한문에 꽃밭을 만든 중구청장과 꽃밭을 지키느라 해고노동자들에게 “여러분은 지금 불법” 운운하는 경찰들. 그들이 지키려는 법은 꽃밭만큼 화려하지만 앙상하기 그지없다. 왠지 킹스필드 교수가 이렇게 말할 것만 같다. “법에도 혈관이 있어야 한다. 피가 흘러야 한다.”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속보] 대법원, ‘윤석열 지지자 법원 폭력·난동’ 긴급 대책 회의
윤석열 현직 대통령 첫 구속…법원 “증거 인멸할 염려”
권성동 “시위대에 일방적 책임 물을 수 없어…경찰이 과잉 대응”
법원이 무법천지로…윤석열 지지자 유리 박살, 소화기 분사 [영상]
“곧 석방될 것” 윤상현, 지지자들에 문자…“사실상 습격 명령”
‘윤석열 구속’ 긴급하게 전한 외신…미국 “법치주의 약속 재확인”
전광훈 “탄핵 반대 집회에 사람 데려오면 1인당 5만원 주겠다”
[속보] 공수처 “윤석열 쪽에 오후 2시 출석 통보”
이준석 “서부지법 난동, 백골단 추켜올릴 때 예고된 불행”
경호처 ‘윤석열, 하늘이 보낸 대통령’ 원곡자 “정말 당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