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홈리스’ 또는 ‘노숙자’라는 말이 사회부 기자들에게 갑자기 다가왔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집을 뛰쳐나온 어른들이 그렇게 많았다. 서울역에서 어렵사리 한 노숙자를 인터뷰했다.
“밤 10시 서울역 대합실 1층. 50∼60명의 사람들이 텔레비전 화면을 쳐다보고 있다. 하지만 보는 듯 마는 듯하다. 붉게 충혈된 눈은 초점이 없이 풀려 있다. 대부분 진한 소주 냄새를 풍긴다. 일부는 의자에 앉아 깊은 잠에 곯아떨어져 있다.
임아무개(47·충남 천안시 죽교동)씨도 잠을 청하려 한다. 2시간 뒤면 대합실 문이 닫히기 때문이다. 그 뒤부터 대합실 문이 다시 열리는 새벽 3시까지는 지하보도에서 웅크린 채 지내야 한다. 지하보도 중앙은 터줏대감들의 차지다. 임씨의 잠자리는 바람이 쌩쌩 부는 지하보도 입구다. 잠이 올 리 없다. 가족 생각이 가장 절실한 것도 바로 이때다.
설이 갓 지난 2월 초였다. 레미콘 회사에서 부장으로 있던 임씨에게도 정리해고의 칼바람이 불어닥쳤다. 직장 상사가 부르더니 그만 나가라는 투로 말했다. 나이 든 사람순으로 자른다는 말을 들은 터라 스스로 사표를 냈다.”( 203호 특집 ‘절망의 홈리스’ 중에서)
임씨는 “아빠, 왜 회사에 안 가?”라는 중학생 딸의 말을 듣고 집을 나왔다. 고깃배도 타봤지만 신통치 않았다. 18만원을 받아 10만원을 집에 부치고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역에서 다른 노숙자들한테 몰매를 맞기도 했다. 같은 직장을 그만둔 옛 동료도 만났다. 그리고 사흘째 굶은 날 기자를 만났다. 울먹이며 “한강에 갔었다”는 말을 했다. 품속에서 두 장의 사진을 보여주던 임씨가 생각난다. 하나는 가족 사진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공들여 설계하고 지은 건축물 사진이었다. 기자는 일자리를 구하러 강원도 속초에 가겠다는 그의 말에 지갑에 있던 3만원을 꺼내 건넸다. “꼭 갚겠다”며 기자의 전화번호를 챙기던 그는 지금까지 연락이 없다.
오래전 취재했던 일이 떠오른 건 이번호 표지이야기를 기고한 김준호(30·경희대 지리학과 석사과정)씨 때문이다.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노숙자’는 ‘노숙인’으로 불리게 됐다. 그들의 편에 서서, 사회의 편견에 맞서 힘겨운 투쟁을 해온 이들 덕분이다. 무료급식도 활성화됐고 재활을 돕는 다양한 사회적 기업도 생겨났다. 그런데 그들은 사회부 기자들의 망막에서 갈수록 지워져갔다.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외환위기 때의 다급한 상황과는 달라졌다는 인식 때문일까? 이제 지원 체계가 어느 정도 갖춰졌다는 안도 때문일까? 지난겨울, 설날을 맞아 아들의 손을 잡고 서울역 택시 승차장에 내려 대합실로 걸어가 표를 사고 개찰구를 지나 열차에 오를 때까지 노숙인의 디테일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은 사회부 기자가 아니어서일까? 그때 또 다른 임씨는 계단 옆 쓰레기통에서 담배꽁초를 줍고 있었을 것이다. 평범한 시선에는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또 다른 임씨는 간밤에 부족했던 잠을 채우고 있었을 것이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나쁜 일인 것 같다.
그래서 떠오르는 또 하나의 기억. 2005년 1월6일 아침, 미국 워싱턴 DC의 거리는 차가웠다. 우리 일행은 G 스트리트 945번지의 한 허름한 교회로 들어섰다. 지하 강당으로 들어서자 퀴퀴한 냄새가 훅 끼쳐왔다. 200여 명의 노숙인들이 강당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파란 눈의 백인부터 히스패닉, 흑인, 아시안 등 인종도 다양한 그들은 추운 겨울 워싱턴의 거리에서 집 없이 방황하는 처지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교회에서는 따뜻한 한 끼 식사를 대접했다. 그리고 ‘법률 상담’이 시작됐다. 노숙인들을 상대로 웬 법률 상담?
이 교회는 ‘노숙인을 위한 워싱턴 법률지원센터’와 연결된 현장 상담소 가운데 한 곳이었다. 1987년 출범한 이 법률지원센터는 노숙인 문제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변호사 단체다. 노숙인으로 전락한 원인이 되는 빚 문제, 일자리 문제, 집을 구하는 문제, 각종 사회복지 수당 문제, 정신·심리치료 문제 등 당장 닥친 어려움부터 정부의 노숙인 정책에 대한 로비 활동까지 노숙인을 위한 온갖 법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움직이는 ‘작은 로펌’이다. 우리 일행의 목적이 공익을 위해 일하는 미국 변호사들의 활약상을 찾아보려는 것이기는 했지만, ‘노숙인을 위한 로펌’은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더구나 5명의 변호사(현재 9명으로 늘었다)가 이곳에서 전업으로 일하고 있다니!
미국에서 홈리스 현상이 생겨난 것은 우리보다 오래전이다. 그만큼 홈리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각계의 노력이 우리보다 많이 더해지고 있는 셈이다. 그저 익숙해지기만 한다는 것은 나쁜 일이다. 전직 사회부 기자의 뼈아픈 반성이다.
한겨레21 편집장 박용현 piao@hani.co.kr
*이 글 후반부의 미국 탐방기 부분은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5주년 기념 자료집에 기고한 글에 실린 내용입니다. 해당 자료집을 접한 독자가 많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염치없이 그대로 따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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