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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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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특권, 국가

등록 2010-06-23 16:58 수정 2020-05-03 04:26

참여연대가 천안함 사건을 둘러싼 논란을 담아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서한을 보냈다. 내용을 보니 지금 현재 한국 내에서 제기되는 의문점에 관한 것이었다. 한국의 국무총리는 즉각 “애국심이 있다면 유엔에 가져가 우리 조사결과가 잘못됐다고 말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어느 나라 국민인지 의문이 생긴다”고 발언했다.
구구절절하게 참여연대가 유엔의 ‘협력비정부기구’(associated NGO)이고, 유엔 경제사회이사회의 ‘특별협의지위’(special consultative status)를 가진 전세계 2167개 비정부기구 중 하나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구차하다. 문제는 국무총리가 나서서 우리 조사결과가 잘못됐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국민’이 아니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것에 있다. 이것은 한마디로 ‘국민’을 정의하는 근대국가의 상식에 어긋난다. 그것도 총리 자리에 오르기 전 ‘불편부당하다’는 평가를 받던 인물의 입에서 이런 표현이 나왔다는 것이 상당히 충격적이다. 학자로 자리매김한 시절에 한국 사회에 만연한 ‘근대성의 왜곡’에 대해 개탄한 사람이 바로 정운찬 총리가 아니었던가.

그들이 정하는 국민의 자격

당신들의 특권, 국가.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당신들의 특권, 국가.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국민’의 자격, 또는 민주적 주권은 국무총리의 권한을 통해 부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아는 사람이 이런 말을 서슴없이 했다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다. 과거에 괜찮았던 개인이 권력에 눈이 멀어 변절했다는 식으로 이 사안을 정리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모든 문제의 원인을 개인의 양심으로 치부하는 건 사건을 간단명료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근본적 해결책을 고민하는 길을 방해하는 것도 분명하다. 중요한 건 일관성 없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멀쩡한 상식을 위배할 수밖에 없는 상황 자체다. 구조적 문제가 여기에 드리워져 있다.

냉전 이데올로기가 한국의 경제개발을 이룩하기 위한 중요한 기제로 작동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여기에서 냉전 이데올로기는 상시적인 ‘전쟁 상황’을 조장해 ‘적과 아’라는 극단적인 정치적 대립을 만들어냈던 기제다. 이것은 특정 정치 세력의 권력을 공고하게 만들고, 이를 통해 부의 흐름을 통제하는 데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했다. 한국의 우파는 이런 ‘정치적 상황’을 통해 본원적 축적을 이룬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을 ‘기득권층’으로 규정하고 기회의 균등과 쾌락의 평등을 주장해온 세력이 중간계급이다. 한국 사회에서 중간계급의 특징은 국가를 특정한 정치체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들에게 이상적인 건 바로 경제에서 정치를 분리해버린 ‘중성국가’(neutral state)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탈정치화’한 중간계급의 유토피아는 고전적인 한국 우파의 관점에서 본다면 가치관의 혼란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우파는 동일한 경쟁 조건을 전제하는 시장주의 자체를 불편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말로는 시장주의를 외치고 시장이야말로 구세주라고 노래하지만, 실상은 시장의 우위에 있거나, 아니면 적어도 바깥에 있는 ‘특권’을 달라는 것이 주장의 핵심이다. 한국의 상황을 ‘비정상국가’라고 규정하고, 정상화하기 위해 친북 인사를 제거해야 한다는 우파의 발상은 참으로 흥미로운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이런 사고에 기반을 둔 흑백논리가 경제 영역으로 하강할 경우 문제는 4대강의 참상처럼 자못 심각해진다. 국민의 세금이라는 공공자산을 사적 이해관계를 충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경제성장’이라고 핑계를 댈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화의 덫에 걸린 우파

이런 사실은 역설적으로 한국의 우파에게 왜 철 지난 반북 이데올로기가 절실하게 필요한지 짐작하게 만든다. 냉전시대라는 준전시 상황을 다시 소급함으로써 노리는 건 시장의 현기증을 정치적인 것의 복권을 통해 해소하려는 전략이다. 한국의 우파 또한 신자유주의라는 전무후무한 ‘세계화’에 직면해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화를 주장하던 이들이 정작 자신에게 닥친 문제는 반세계화 방식으로 풀려는 것이 앞뒤가 맞지 않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막무가내로 멱살을 잡는 우파의 ‘빨갱이 몰이’가 대다수 국민으로부터 설득력을 상실하는 까닭은 ‘적과 아’의 대결이라는 정치적 대립각에 우파가 집착하기 때문이다. 정치와 경제의 분리라는 고전적 부르주아의 전략을 정작 이들의 논리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참여연대의 서한 정도에 발끈한다는 건 여전히 사안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치적 이분법에 맞춰 바라본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이 모든 게 한국 우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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