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공부에도 때가 있다고?

등록 2009-06-25 17:27 수정 2020-05-03 04:25

지난주 학생들은 전국연합학력평가를 치렀다. 곧 성적표를 받게 되리라. 그 숫자들에 절망할 수많은 청춘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
초·중·고 시절 전반에 걸쳐 내가 가장 많이 접한 충고 가운데 하나는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듯 공부에도 때가 있다’는 것이었다. 때로는 자연현상과의 비유를 통해, 때로는 ‘때’를 놓쳐 공부하지 못한 비참한 사례를 통해 어른들이 아이에게, 교사가 학생에게 전해주는 ‘공부에도 때가 있다’는 충고는 당시 많은 힘을 발휘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 그 ‘때’를 지나고 나서 보니 이 말이 얼마나 교육에 방해가 되는지 알 것도 같다.

‘못 배운 채로 살아라’의 딴 말

공부에도 때가 있다고?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공부에도 때가 있다고?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공부에도 때가 있다’는 말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가혹하다. 어떤 이들이 ‘때맞춰’ 공부를 하지 못하나? 돈이 없는 사람이 그렇다. 이들은 자신을 위한 혹은 가족 누군가를 위한 학비나 생활비를 버느라 공부할 때를 놓친다. 건강하지 못한 사람도 그렇다. 건강이 회복될 때까지 공부를 중단하거나 영영 공부를 놓아버리게 된다. 장애를 가진 사람도 마찬가지다. 많이 개선됐다고는 해도 우리나라 현실에서 장애인이 때맞춰 공부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공부할 때를 놓친 많은 이들에게 ‘공부에도 때가 있다’는 말은 ‘이제 너희는 그렇게 못 배운 채로 살아가거라’ ‘그게 때를 맞추지 못한 너희가 짊어질 짐이야’ 하는 의미다. 숨 가쁜 삶에서 한시름 돌릴 무렵이 돼서 공부를 시작하려는 사람, 아니면 무언가 뜻을 품고 새로이 공부를 하려는 사람에게 ‘공부에도 때가 있다’는 말은 족쇄가 된다. 아, 이제 늦었구나, 나는 새로운 삶을 기획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로구나, 사람들은 절망하고 주저앉는다.

‘공부에도 때가 있다’는 말은 힘이 세다. 어린아이라도 알고 있다. 흘러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그러므로 ‘때를 놓치고 나중에 후회할 것’이라는 충고는 무시무시한 힘을 갖는다. 공부에 맘이 없는 학생이라도 책상 앞으로 불러들일 수 있을 만큼. 그러나 그가 진정으로 공부를 하도록 할 만큼 힘세지는 않다. 공부는 앎에 대한 진지한 욕망 없이는 성립되지 않으므로.

‘공부에도 때가 있다’는 말은 진짜 공부를 방해한다.

첫째, 이 말은 공부가 무언가를 이루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한다는 전제를 담고 있다. 때맞춰 하는 공부란, 시험이나 자격이나 학위를 위한 공부다. 이때 공부는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 기능한다. 시간 맞춰 이루어야 할 어떤 것이 있기에 그 수단인 공부도 때를 맞출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냥 즐거워서 하는 공부, 행복해지기 위한 공부, 좀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공부라면 때가 필요 없을 것이다. 우리는 평생토록 즐거워지고, 행복해지고,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을 멈추어서는 안 될 테니까.

둘째, 이 말에는 공부가 주로 특정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담겨 있다. 우리가 공부에도 때가 있다고 말할 때의 때란 젊은 때, 어린 때를 말한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머리도 잘 돌아가고 기운도 넘칠 때 한 자라도 더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이 들면 공부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담겨 있다. 마치 사진기같이 아이들은 습득한 것을 곧바로 재현해낸다. 아마 우리도 그랬으리라, 두뇌가 팽팽하던 어린 날에. 하지만 지식을 습득하고 암기하는 것만이 공부는 아니지 않은가. 우리는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공부하고, 더 좋은 세상을 위해 공부한다. 좀더 세상의 본질에 다가가기를, 좀더 진실에 접근하기를 갈망하면서 공부한다. 그리고 그런 공부는 연륜이 쌓일수록 더 빛을 발하는 법이다.

염려가 걱정스럽다

셋째, 이 말에는 공부를 책을 보고 하는 공부, 특히 학교에서 하는 공부로 한정짓는 문제점이 있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이 누구나 스승이 될 수 있고, 삶의 마디마디가 모두 배움의 장이 될 수 있음을 안다면 공부에는 때가 있을 수 없다. 공부는 평생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충고들이 또한 이와 같으리라. 공부를 권하고 있으나 실은 공부를 막고 있으며, 교육을 말하고 있으나 실은 교육을 방해한다. 오늘 너무 많은 이들이 교육을 말하고 학교를 염려하는데, 나는 그게 걱정스럽다.

박현희 서울 구일고 사회교사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