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권 한겨레21 편집장 jjk@hani.co.kr
오랜만에 한 선배와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이번호 표지이야기 주제인 ‘귀농’이 기억 저편의 그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노동운동을 한 뒤 서울에서 출판사를 하다 돌연 충남 홍성으로 간 게 2001년이니 벌써 7년차 농사꾼입니다.
휴대전화 건너편의 목소리에선 예의 소탈함과 넉넉함이 배어났습니다. 짓궂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형, 그래 이제는 땅이 받아줍디까?”(그가 시골 생활을 담아 2004년에 쓴 책 제목이 입니다.)
“허허” 하는 웃음과 함께 “잘 몰라”라는 답이 되돌아왔습니다. 그러곤 “아직도 얼치기 농사꾼이야”라는 말이 덧붙었습니다. 일이 서툴러, 7월 중순에도 다른 이들이 다 끝낸 김매기에 한창이랍니다.
그는 시골을 사랑하고 감사해합니다. 아무런 인연도, 땅 한 뙈기도 없던 경상도 사람에게 홍성의 마을은 논밭을 내주었답니다. 그래서 그는 시골을 ‘없는 자가 발을 들일 수 있는 낮은 땅’이라고 생각하며 삽니다. 그 땅에 기대 맨 밑바닥 힘까지 쏟아내며, 비록 남의 소유일지라도 생존의 터를 넓혀갔답니다. 물집이 잡혔다 터지곤 하는 나날들 속에 손바닥의 굳은살이 단단해질수록 땅은 조금씩 가슴을 열었겠지요.
그렇지만 그 7년을 낭만적으로 받아들이기엔 눈앞의 벽이 너무 두껍고 높아 보입니다. 당장 농촌을 포위한 외부 환경이 농민의 삶을 벼랑으로 내몹니다. 조심스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타결됐는데”라며 눈치를 살폈습니다. 홍성에선 “송아지 값이 내리는 건 당연할지 모르겠는데, 돼지 값이 떨어져서 다들 걱정”이랍니다. 우리 돼지고기 값이면 미국산 쇠고기를 사먹는 시대가 닥치면서 축산 농가들이 직격탄을 맞았다는 겁니다.
의료, 문화 등 삶의 질과 연관된 인프라도 여전히 턱없이 부족할 테지요. 아이가 다니는 읍내 학교의 교육 수준도 걱정거리지만, 그나마 “도시의 비인간적인 경쟁은 없다”는 것으로 자위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먹고사는 어려움 이상으로 걱정인 것은 공동체의 붕괴인 듯했습니다. 아이들이 자라고 이웃이 생겨나는, 사람 사는 일의 기본이 무너지는 것 말입니다. 그가 새 삶의 둥지를 튼 뒤 7년 동안 마을로 새로 들어온 이는 없었다고 합니다. 대신 떠나는 사람들은 많았고, 50살을 눈앞에 둔 자신이 마을에서 가장 젊은 축이 됐다고 합니다. 그는 “더불어 사는 삶이 사라지는 것, 그것이 가장 힘들다”고 토로했습니다.
인위(人爲)의 삶에 대한 염증 때문이든, 대안의 삶에 대한 적극적인 모색이든, 이런저런 이유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귀농자가 땅과 동화하는 일은 그리 녹록하지 않을 겁니다. 특히나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전망이 불투명하다면 한층 어려움이 클 게 분명합니다. 이 전북 남원시 산내면 귀농공동체의 10년 세월을 되짚어보는 것도 그 공동체의 가능성이 궁금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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