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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현실적인 것’

등록 2008-04-04 00:00 수정 2020-05-03 04:25

▣ 홍기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3월25일자 1면에는 이런 소식이 실려 있다. 한국의 육해공군 수뇌 회의에서 전 사병들의 목욕(bath)을 주 1회로 제한하기로 했다고 한다. 에너지 절약을 위한 대책이라고 한다. 가엾은 사병들. 1970년대 초등학교 때의 추억을 되살려 위문편지와 땀띠약을 위문품으로 보내야 할 것 같다. 머리 풀어헤친 서태지가 ‘진보’를 외치며 자동차를 팔아치우는 2008년에 이 무슨 박정희 시절 복고 드라마인가. 군 수뇌의 두뇌 구조만을 나무랄 일이 아니다. 이미 이명박 대통령도 ‘50개 기초 품목’의 가격 통제를 공언했다. 어이가 없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시작으로 ‘전방위적·동시다발적 FTA’와 같은 무제한의 개방으로 ‘글로벌 스탠더드’로의 ‘업데이트’를 꿈꾸는 대한민국 정부가 전세계적인 인플레이션 파고에 대처하기 위한 대책으로 내놓은 것이 고작 ‘공산주의’ 국가 중국에서나 채택하고 있는 기초 생활 물품 가격 통제인 것이다.

보수 정당이 경제를 살린다?

현재 진행 중인 원유, 원자재, 곡물 등의 지구적인 가격 상승은 일시적·주기적인 것이 아니라 지난 20년간 ‘지구화’의 이름으로 벌어진 지구 정치·경제 체제의 변동에서 비롯한 구조적인 것이다. 석유도 원자재도 곡물도 그 극심한 가격 상승의 원인이 지난 90년대 이후 기술 변동이나 산업적 재구조화, 지정학적 조건 등과 같은 ‘지구적’ 차원에서의 구조 변동에 있음은 동일하다. 그런데 이 거대한 지구적 구조 변동 앞에서 기껏 땀띠약이나 칼국수 가격 때려잡기를 대책으로 내거는 이들이 정말 지난 몇 년간 줄창 ‘현실적 경제통’임을 외쳐서 집권한 세력이 맞는가. ‘엽기’와 ‘현실’이 이렇게 서로의 명찰을 바꾸어 달고 다니는 상황은 ‘초현실주의적’이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그런데 그런 상황의 발생에는 항상 이유가 있는 법이다.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이 나온 1930년대에도 그랬듯이, 21세기로 들어선 세계 질서도 급격한 구조 변동을 겪고 있다. 단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종말을 맞은’ 인간 역사의 영원한 질서처럼 선전되던 세계무역기구(WTO)의 다자 무역 질서나 자유로운 세계 금융시장의 자기 조정 기능 따위는 이제 심드렁한 옛 노래가 되어버렸다. 대신 양자간 무역투자 협정이 창궐하고 ‘국부 펀드’에 대한 보호주의적 규제와 금융 파생상품에 대한 규제 요구가 울려퍼지고 있다. 어제까지 부동의 진리요 상식으로 통하던 것들이 하나의 ‘의견’의 자리로 떨어져버리고, 현실을 모르는 철없는 혹은 이상주의적인 몽상으로 여겨지던 것들이 급격히 대세를 장악하기도 한다. 이러한 지구적 혼란의 와중이니, 입에다 ‘시장의 자유’를 달고 다니던 이들이 장바구니 쫓아다니며 가격 통제를 외치거나 물가를 잡겠다고 하고 또 동시에 대운하로 7% 경제 성장을 내거는 슬랩스틱 코미디가 벌어진다고 해도 과히 나무랄 수만은 없겠다.

곧 총선이다. ‘정치는 현실’이라며 20세기 한국 정치를 지배해왔던 고정관념들이 있다. ‘역시 경제는 보수 세력’이라든가 ‘당선 가능성이 있는 야당에 표를 몰아줘야 한다’든가 ‘민중적 당파성을 견지해 투표하자’든가 하는 것들이다. 20세기 냉전기에 생겨난 이러한 정치적 통념에 휘둘려 우리는 평소 온갖 견해와 이상을 품고 살다가도 투표소 휘장 속에만 들어가면 ‘맞아, 정치는 현실이지’라는 주문에 붙잡혀 파블로프의 개처럼 찍던 대로 찍고 나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과연 20세기 냉전 시대와 그 끝물에나 재미를 보던 이런 ‘현실론’이 21세기의 현실에 얼마나 먹혀들던가. ‘개혁 정당’은 개혁을 이루었으며 ‘진보 정당’은 진보를 이루었으며 ‘보수 정당’은 경제를 살릴 것 같은가.

투표, 가장 확실한 투자

전세계 금융시장이 대혼란이다. 이럴 때 투자자는 ‘현실과 대세’ 소리에 휘둘리지 말고 스스로의 창의적인 상상력과 판단으로 임하는 것이 돈 버는 길이라고 한다. 그 ‘현실과 대세’ 소리에 신물이 났던 누구는 지난해 12월19일 온종일 바닷가에서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4월9일에는 투표장으로 가려 한다. 그가 21세기 들어 처음으로 참여하는 선거다. 마침 봄이다. 동굴 같던 20세기의 ‘현실’에서 찍혀나온 현실성이니 당선 가능성이니 하는 칙칙한 겨울 외투는 벗어버리겠다고 한다. 서툴고 어설프더라도, 힘이 없어 보여도, 몽상가처럼 들려도, 인간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과거의 기억에서 풀려나 20세기와 단절하고 21세기의 거센 파도로 뛰어들 준비가 된 이들을 찾아 기분 좋게 한 표 찍고 나올 것이다. 생각해보면, 아마도 그게 모든 것이 불확실해진 이 21세기 초엽에 가장 ‘보수적’이며 ‘개혁적’이며 ‘진보적’인 투자일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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