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룸살롱의 소심남들

등록 2008-03-28 00:00 수정 2020-05-03 04:25

▣ 윤용인 노매드 미디어&트래블 대표 www.nomad21.com

심리학 용어 중에 전이라는 말이 있다. 법률용어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 소개되는 심리용어도 죄다 한자어 일색이다. 그래서 어렵다. 사우나에서는 쉽게 가자.
전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정희라는 여자가 떠올라 반가웠다면 그게 바로 전이다. 분명 처음 만난 사람인데 이상하게 편하거나 거꾸로 불편하다면 이것도 전이가 나타난 것이다. 즉, 어떤 대상에게 품고 있던 감정이 무의식적으로 또 다른 대상에게로 향하는 것, 프로이트옹은 이것을 전이라고 했다.

자의든 타의든, 좋든 싫든, 사회적 시선이 곱든 말든, 한국의 남성들은 룸살롱이라는 곳을 가게 된다. 제 돈 내고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접대라는 이름으로, ‘뿜빠이’를 전제로 한 등 떠밀림으로 그렇게 룸살롱을 찾는다.

바가 세상과의 격리를 전제로 한 소통 공간이라 할 때 룸살롱은 남자를 왕으로 만들어주는 곳이다. 안락한 소파, 충분한 술과 음료수, 별개의 화장실과 성능 좋은 노래방 기계는 아방궁의 밀실이다. 그러나 진짜는 따로 있다. 가장 중요한 왕의 의식이 남아 있으니, 왕이 여자를 고르듯, 여자를 찜하는 특혜를 누린다.

바야흐로 전이가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단골은 지정녀를 고르겠지만, 대부분 첫 대면에서 5초의 승부가 이루어진다. 잘 놀 것 같은 여자, 야할 것 같은 여자, 성격 좋을 것 같은 여자, 첫사랑을 닮은 여자 등 저마다의 기준에 따라 가장 적합할 것 같은 여인을 지명한다. 과거 만났던 이성의 관상학적, 체형적, 패션적 통계가 이 전이의 과정에 기초로 작용된다. 경험상 저렇게 생긴 애가 튕기지도 않고 잘 놀았지, 암.

이 과정이 나는 참 어색했다. 그런데 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죄책감 비스무레한 감정을 느끼는 남성들이 꽤 있더라 이거다. 그 이야기를 들은 여자 후배는 그럴 바에는 안 가면 되는 거 아니냐고 비아냥거렸지만, 말했잖아! 어쩔 수 없이 가게 되는 때도 있다구!

암튼, 죄책감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당최 눈을 마주치지 못하겠는 거. 매력적인 미소로 웃고 있는 여성들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하겠다는 거. 갑자기, 사람이 사람을 선택하는 이 행위가 너무 속물적인 거라는 의식에의 침범. 대부분 그 뒤의 결론은, 얼떨결에 앉게 된 내 옆자리의 여자가 아니라 거래처넘이 선택한 여자가 진짜 예쁘다고 생각하며 맛없는 술자리를 마감하는 식이다.

어떤 이는 해외에 나가 동남아 업소를 가게 됐는데 무려 1개 중대에 해당하는 여인들이 번호표를 달고 유리방 안에 들어가 있더란다. 그 수십 개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는 순간 “국제매춘을 일삼는 부끄러운 한국 남자들”이라는 신문 카피가 퍼뜩 떠올라 결국 아무 짓도 못했다고 자기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단순하게 초이스해서 시원하게 놀아주고 깔끔하게 퇴장하는 것이 그 바닥의 매너다. 좋든 싫든 리비도의 내사가 이루어져야 자연스러운 룸살롱에서 틱한 용어를 내사하고 있는 남자들. 그러나 이 진상 짓은 어디다 고백도 못한다. 내 후배처럼 반응할 것이 뻔할 뻔자기 때문이다. 그저 어제도 오늘도, 본의 아닌 호협심과 맨정신이 아닌 상태로 룸살롱 문을 밀고 들어가, 소심한 놈, 찌질한 놈 소리 들을까 전전긍긍하며 진상 짓에 타협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