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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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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방귀

등록 2008-07-17 00:00 수정 2020-05-03 04:25

▣ 윤용인 노매드 미디어&트래블 대표 www.nomad21.com


몇 년 전 발리에서 만나 선후배가 된 40대 아저씨는 술 한잔을 걸치고 짐바란 해변을 거닐며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세상 남자들이 왜 바람을 피우는지 모르겠어. 자기 마누라가 제일 편한 거 아냐? 집사람 앞에서는 방귀도 뿡뿡 뀔 수 있잖아. 애인 만들어봐. 그런 것도 다 눈치 보이지.”

바람을 안 피우는 이유가 고작 자유로운 괄약근 운동 때문이었다는 것이 ‘발리에서 생긴 일’치고는 다소 허탈했으나, 이해했다. 나도 비슷한 마음이었으니까. 그래도 한마디 물었다. “근데 선배 와이프도 선배처럼 방귀를 뿡뿡 뀌면서 결혼의 자유를 느끼심?” 순간 그의 표정이 ‘기막혀코막혀눈막혀’하더니 나무라듯 내게 하는 말. “후배도 참, 그런 마누라랑 어떻게 살아?”

저 이기적이고 남성중심적인 ‘발리맨’의 호쾌한 정리법에 허허 헛웃음이 나왔지만 크게 웃지는 못했다. 역시, 나도 비슷한 마음이었니까. 내가 뀌면 ‘향기’요 네가 뀌면 ‘독기’, 남자가 뀌면 ‘호연지기’요 여자가 뀌면 ‘주책맞음’이라고 은근히 방귀를 정의하고 있었으니까.

결혼 2년차 후배 녀석은 결혼에 따른 문화적 충격을 안주로 수다 떠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형, 저는 말이에요. 여자는 방귀도 안 뀌는지 알았어요. 저희 어머니는 아버지 앞에서 육십 평생 방귀 한 번을 안 뀌었거든요. 그런데 제 아내는….”

서른 넘은 사내의 저 순진무구한 코 질질 대사에 순간 경악하며 아내 어쩌고는 듣지도 않고 물었다. “그게 말이 되냐? 그럼, 어머니는 어디서 방귀를 배설하신 건데?” “그건 모르죠. 아마 아버지 몰래 화장실에서 해소하셨겠죠.”

종갓집 며느리 신분으로 어머니가 만들어낸 무풍(無風)의 가풍(家風)을 제대로 전승하지 못하고 침실에서 방심의 향기를 내뿜은 그의 아내에 대한 후배의 분노에 공감할 리는 없었으나, 그의 어머니가 보여준 ‘조신방정’한 태도에는 살짝 존경의 염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남자들이 다 그런 건 아니다. 뒤늦게 결혼해 아내 사랑이 유별난 이런 친구도 있다. “아내가 방귀를 ‘뽀옹’ 뀌는데 그게 그렇게 귀여운 거야. 방귀 소리는 모두 ‘뿡’ ‘빵’인지 알았는데 뽀옹이라니. 엉덩이에 뽀뽀라도 해주고 싶더라니까.”

순간 세상에 태어나 최고의 호사를 누리는 친구 아내 엉덩이를 떠올리다 움찔해 이게 뭐 하는 야설스러움인가 하며 제정신을 차렸지만, 아내의 방귀에 대처하는 친구의 자세가 참으로 예뻐 보였음도 인정한다.

초등학교 때 여선생에 대한 로망은 어른이 돼서도 무의식 속에 이어져, 여선생처럼 내 여자도 방귀질을 안 할 것이라고 애써 믿고 싶은 남자의 심리. 그 로망이 깨질까봐 연애할 때 여관방에서, 그녀가 화장실에 들어가면 일부러 텔레비전 소리를 크게 틀거나 귀를 막고 있었던 그 처절한 몸부림. 결혼 뒤 부쩍 늘어난 부엌 도마질의 효과음, 뽕뽕 소리를 들으며, 아침부터 무슨 포장지를 저렇게 뜯나 애써 마인드컨트롤하는 남편의 자기암시술. 그러면서도 구들장이 꺼지도록 발산한 자기 ‘똥꼬’ 파열음은 여자와 공유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이율배반적 두레 정신. 이렇듯, 여자의 방귀를 둘러싼 남자들의 심보는, 방귀 뀌는 여자의 뱃속보다 더 복잡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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