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애끓는 부정

등록 2007-11-30 00:00 수정 2020-05-03 04:25

▣ 정태인 경제평론가

내 무식의 소치겠지만 ‘애끓는 부정’을 잘 보여주는 서양의 일화는 금방 떠오르지 않는다. 어린 나이에 죽은 아들을 놓고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자학하는 마르크스의 편지를 그의 묘 앞에서 떠올렸던 게 내 경험의 전부다. 오히려 소설, 영화에서 끝없이 변주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서양의 부자 관계를 상징하는 게 아닐까?

가죽 장갑의 ‘애끓는 부정’

효를 바탕으로 했다는 우리 쪽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자애로운 어머니와 대비하여 엄부(嚴父)라 표현하는 것은 아무래도 일정한 거리를 느끼게 하며 어느 정도는 대립의 관계를 암시한다. 황산벌 전투에서 죽어 돌아온 아들, 관창을 보고 품일 장군 왈, “나라를 위해 죽었으니 후회할 것 없다”고 절절함을 표현하는 정도가 애끓는 부정이 될까? 물론 ‘충’으로 버무렸으니 이것도 가능할 터이다.

그 희귀한 애끓는 부정이 2007년 한국 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그것도 뭐 하나 모자랄 것 없는 재벌 총수들의 부정이니 더욱 가상하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아들이 나서는 일은 동서고금에 비일비재했어도, 밖에서 맞고 들어온 아들을 위해 직접 가죽 장갑을 끼고 나서는 부정은 21세기 한국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다.

쇠파이프와 전기충격기까지 동원됐으니 그의 사랑이 얼마나 지극했는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안타깝게도 사적인 부정(父情)은 사회적인 부정(不正)으로 이어졌다. 사건을 덮기 위해 십수억원을 뿌렸고 경찰 간부들에게 로비를 했다. 드물게도 1년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물론 우울증 등의 이유로 석방됐다.

그러나 여기 훨씬 더 ‘애끓는 부정’이 있다. 역시 삼성이 하면 뭐가 달라도 다르다. 위 경우처럼 즉흥적이지 않다. 철저히 기획됐고 한 군데서라도 차질을 빚을까, 그야말로 물 샐 틈 없는 대비를 했다. 바로 10여 년에 걸친 삼성 이건희 회장의 사랑이다.

1995년 증여가 그 시작이었다. 단돈(?) 45억원은 그동안 신통방통한 재주를 부려서 무려 조 단위로 몇백 배 뻥튀기됐고, 결국 아들 이재용씨는 삼성이라는 세계적 기업을 지배하게 되었다. 삼성에버랜드라는 회사의 전환사채를 터무니없이 싸게 구입해서 계열사들에 비싸게 파는 방식은 최근 경제개혁연대의 발표에 따르면 제일기획 주식 매각에도 적용됐다. 한편 후계자의 능력을 만방에 떨치기 위해 시작한 이재용씨의 e삼성 사업은 실패했고, 손실은 이번에도 계열사들이 떠안았다.

어찌 사단이 나지 않겠는가. 과거에야 적당히 넘어갔겠지만 외환위기 덕에 도입된 촘촘해진 법의 그물망이 거치적거리게 되었다. 현재 제기되는 것만 해도 삼성에버랜드의 금융지주회사법 위반 혐의, 삼성생명과 삼성카드의 금산법 위반 혐의(그리고 삼성화재의 배임 혐의) 등 여러 가지다.

이 모두를 막으려니 경제부처, 검찰, 국회, 법원, 언론, 학계를 전부 얽어매야 했다. 모두를 공범으로 만드는 것만큼 확실한 보증이 또 어디 있을까. 지난해의 X파일 사건과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는 삼성이 이 모두를 ‘삼성 가족’으로 만들려고 했다는 증거이다.

온 사회를 뒤흔드는 ‘애끓는 부정’

자식이 조금 더 편안하게 살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 그런 면에서 김 회장이나 이 회장은 온 부모의 귀감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건희 회장이 부럽고 자기 아이들에게 이재용씨처럼 해주지 못해서 미안한가? 그렇다면 우리는 확실히 망한다. 불법과 부정을 ‘경쟁’이라고 오해하는 사회의 시장경제는 필연코 실패하며 그 결과는 제2의 외환위기이다. 혹시 불법과 부정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이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우리 모두 불공정 경쟁(예컨대 과외나 부동산 투기)을 꾀하는 것은 아닌가? 그것 또한 천천히 망하는 길이다. 부정(父情)을 버려서 아이들을 공공의 장에서 공정하게 경쟁시켜야 한다. 그것만이 살길이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