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란주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
지난 8월30일 헌법재판소는 노동부예규 ‘외국인 산업기술연수생의 보호 및 관리에 관한 지침’이 연수생에게 근로기준법을 차별적으로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며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결정문을 통해 ‘근로자가 기본적 생활수단을 확보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받기 위하여 최소한의 근로조건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는 자유권적 기본권의 성격도 아울러 가지므로 이러한 경우 외국인 근로자에게도 그 기본권 주체성을 인정함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연수제 위헌 판결, 고작 4개월 남은 걸 갖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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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위헌 결정은 반가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한스러운 소식이었다. 그간 외국인 연수생에 대한 온갖 차별과 착취에 맞서 연수생들과 민간단체들은 부단히도 몸부림쳐왔다. 그 결과, 연수제도는 가까스로 고용허가제와 통합되며 폐지됐다. 위헌 결정과 관계없이, 올 초 신규 입국한 연수생의 연수 기간이 끝나는 연말이면 연수제도는 사라지게 될 운명이었던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2004년 3월 청구된 헌법소원에 대해 무려 3년을 끌다 이제야 결과를 내놓았으니, 일부에서는 헌재가 정치적 부담을 피하려고 일부러 늑장을 부린 것이 아닌가 의심하기도 한다. 노비를 14년간 맘껏 부려먹다 고작 4개월 남기고 면천시켰네 하며 자랑하고 있으니 그런 의심이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연수제도와 꼭 연결짓지 않더라도 이번 헌재가 밝힌 ‘이주노동자의 권리’에 관한 입장은 지극히 중요하다. 연수제도의 대안으로 운영되는 ‘고용허가제’가 과연 그러한 권리를 인정하고 있는지를 따져볼 수 있는 기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고용허가제는, 외국인 고용 허가를 받은 고용주에게 ‘찜’당한 이주노동자가 1년간 고용되는 조건으로 입국하는 것이다. 이주노동자는 1년씩 연장하여 3년간 일할 수 있으나,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해야 하므로 매일 바늘방석에 앉은 꼴이다. 또 1년 이내에도 언제라도 해고당할 수 있다. 더구나 이주노동자는 해고당한 뒤 2개월간 다른 직장을 찾지 못하면 아예 나라 밖으로 추방당한다. 자의로 회사를 옮기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고, 온갖 구실을 붙인 일방적 해고는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이들이 바로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다. 이주노동자는 내국인 비정규 노동자가 겪는 고통의 몇 배의 고통을 겪고 있다.
그뿐일까. 처음에는 고용허가제 노동자에게도 4대보험을 다 적용한다고 자랑하던 정부는 슬그머니 고용보험을 임의적용으로 바꿔버렸다. 그러면서 마치 이주노동자에게 혜택이 적은 고용보험을 면제시켜 되려 이득을 주는 듯이 생색내고 있는데, 이는 명백한 기만이다. 이주노동자에게도 내국인과 같은 혜택을 주면 되는 것이지, 혜택을 못 주니 아예 가입하지 말라는 것은 무슨 심보인가. 내국인 노동자가 혹여 직장을 잃는다면 실업급여를 받으며 당분간 생계를 유지하고 직업훈련을 받으며 재취업이나 창업을 꿈꿀 수 있지만, 배고픈 이주노동자는 손가락만 빨다가 2개월 내에 직장을 못 구하면 추방까지 당해야 한다. 세상에나, 평등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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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 사업장 내국인과 비교해보라
고용허가제 노동자의 임금은 또 어떠한가. 고용허가제 노동자는 거의 대부분이 월급 78만6천원을 받고 일한다. 본래는 최저임금 이상을 주도록 하고 있지만 사실상 최저임금선에 임금이 맞춰지는 탓이다. 노동부가 고용주에게 이주노동자를 알선할 당시 제시하는 임금이기도 하다. 이주노동자에게 기술이나 능력이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이 말이다. 이주노동자는 안 먹고 안 쓰고 아낄 테니 그 임금으로도 충분하지 않겠느냐는 말은 제발 하지 마시라. 동일 사업장의 동일 능력 내국인 노동자 임금과 비교해 차별이 있다면 부인할 수 없는 평등권 침해이다.
이번 헌재의 결정을 ‘이주노동자에 대해서도 기본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으로 넓게 해석한다면, 이를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정하는 기준으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위에 줄줄이 나열한, 고용허가제 노동자들이 처한 불평등한 현실을 어떤 방향으로 바꿔야 할지에 대해서도 좋은 답을 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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