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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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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등록 2007-07-20 00:00 수정 2020-05-03 04:25

▣ 정재권 한겨레21 편집장 jjk@hani.co.kr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다룬 지난 668호 표지 기사에서 못다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전 시장의 도덕성을 잣대로 추적한 BBK 및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 의혹과 그의 ‘성공신화’ 사이엔 어떤 함수관계가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문은 ‘도덕성에 하자가 좀 있으면 어때. 능력이 중요하지…’라는 인식이 그의 높은 지지율을 뒷받침하고 있는 현실과 닿아 있습니다. 이 전 시장의 상표인 ‘경제 대통령’의 허실을 BBK라는 프리즘을 통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얘깁니다.
이 전 시장은 분명 성공신화의 주인공입니다. 그는 현대건설에 일반 직원으로 입사해 서른다섯에 최고경영자(CEO)가 되는 입지전을 이뤘고, 시장 시절 말도 탈도 많았던 청계천 복원을 성사시켰습니다. 그 덕에 그의 도전정신과 불도저 같은 추진력은 최고의 정치적 자산이 됐습니다.
그런 이 전 시장이 또 다른 성공신화를 꿈꿨던 걸까요? 그는 2000년 2월 LKe뱅크를 설립해 대표이사를 맡으며 이렇게 공언합니다. ‘국내 최초의 사이버 종합금융기관.’ 그는 BBK투자자문, e뱅크증권 등을 거느리고 ‘사이버 금융왕국’ 건설에 나섰습니다. 그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였던 ‘금융 전문가’ 김경준씨의 말대로라면, 이 전 시장은 “정치인으로 재기하지 않고 사업가로 남겠다”고 약속할 정도로 열의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초라해 보입니다. 김경준씨의 주가조작으로 이 전 시장은 구설에 올랐고, 관련 업체들은 흐지부지 상태입니다. 선진 금융 영역의 신화 창조 꿈이 실패로 귀결난 셈입니다. 이 전 시장은 자신을 “김경준이 저지른 주가조작의 피해자”라고 설명하지만, 이를 사실로 받아들인다 해도 ‘희대의 30대 사기꾼’에 농락당한 자기 한계의 고백과 다름없습니다.
이런 ‘실패’는 이 전 시장의 리더십에 물음표를 던집니다. 1970년대 개발독재 시절의 건설 마인드에 바탕한 그의 리더십이 21세기 환경에서 벽에 부닥친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입니다. 그가 제1공약으로 내세운 것도 한반도 운하 건설 사업인 터라, 이런 의문은 우리의 미래와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21세기 한국의 미래는 세계와 경쟁하는 지식기반 경제를 어떻게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최근 내놓은 ‘미래 트렌드에 부합하는 10대 유망 사업’은 그 방향을 함축적으로 제시합니다. 연구소는 유망 사업으로 △바이오제약 △의료서비스 △자산관리 △관광 △도시인프라 구축 △에너지 플랜드 △물 산업 △신재생에너지 △뉴IT(정보기술) △투자은행 등을 꼽았습니다. 지난 세기 우리에게 익숙했던 ‘파고, 닦고, 놓는’ 국토개조 사업은 이런 트렌드와는 거리감이 큽니다.
이 전 시장의 성공과 실패를 객관적으로 함께 평가해야만 ‘이명박의 몸값’은 제대로 저울질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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