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권 한겨레21 편집장 jjk@hani.co.kr
한국방송 개그 프로그램인 의 ‘같기도(道)’라는 코너가 인기입니다. 우리네 삶에서 흔히 마주치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황이 웃음의 소재입니다. 이를테면 ‘가위바위보’게임을 하다가 손가락을 3개만 내민 뒤 “이건 주먹도 아니고 보자기도 아니여~”라고 말하거나, 바지를 반쯤 내리고는 “옷을 입은 것도 아니고 벗은 것도 아니여~”라며 상대를 당황하게 하는 식입니다.
이 코너엔 보통 사람의 폐부를 찌르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등장인물의 행동엔, 소신을 내세우고 싶지만 자신의 능력으론 어쩔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을 때 은근슬쩍 웃음을 버무려 곤란한 상황을 비껴가는 처세술이나 생존 논리가 잘 배어 있습니다. 물론 그 소시민적 처세술이 자아내는 웃음은 씁쓸함의 다른 표현일 테지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도 ‘같기도’같은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우리 정부가 지금껏 협상의 ‘데드라인’이라고 설명해온 3월31일(토요일) 오전 7시가 4월2일(월요일) 새벽1시로 연장된 것입니다. 미국의 무역촉진권한(TPA)에 따른 협상 시한인 4월1일(현지시각)이 휴일이라서 애초엔 주중에 협상을 마무리짓겠다고 했던 것인데, 막판 진통으로 타협점을 찾지 못하자 휴일에도 협상을 이어가기로 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는 “협상 연장은 없다”며 큰소리를 치고는 결국 추가 협상에 동의했습니다. 미국의 연장 요구에 끌려다닌 셈입니다.
그 때문에 정착 난처해진 것은 입니다. 3월31일 오전 7시에 협상이 결론날 것으로 보고 기사 마감 데드라인을 12시간 늦춰가며 FTA 표지이야기를 준비했지만, 협상 연장으로 관련 기사를 내보내지 못하게 됐습니다(은 통상 토요일 새벽에 기사를 마감합니다). 독자들께서 이번 654호에서 FTA기사를 찾아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협상이 타결됐을 경우 벼랑 끝에 설 한국 사회를 전망한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의 장문의 글이나, 미국 의회와 업계의 동향을 내다본 토머스 김 미국 한국정책연구소장의 글 등이 독자들을 만나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FTA 협상 문제는 다음 655호에서 더욱 상세하고 입체적으로 다룰 것을 약속드립니다.
대신 이번호는, 지난 2002년 서울 도곡동에 타워팰리스가 들어선 이후 한국 사회의 삶의 양식과 의식에 큰 변화를 가져온 ‘주상복합 아파트 5년’의 사회사를 표지이야기로 전합니다. 오래전부터 공을 들여 준비해온 길윤형 기자가 FTA를 다룰 수 없는 상황을 맞아 고생을 했습니다.
마감을 재촉하는 편집자의 눈치를 보며 ‘만리재에서’를 마무리해가는 제 심정을 ‘같기도’의 주인공처럼 표현하면 이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건 변명을 하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했다고 자랑을 하는 것도 아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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