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권 한겨레21 편집장 jjk@hani.co.kr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는 길’을 새삼 떠올려봅니다. 우리의 삶을 매 순간 구속하는 선택의 의미를 잘 묘사한 터라, 누구에게든 사랑받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2007년 2월이 끝나가는 이즈음엔 한층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나와 우리, 좀더 크게는 한국 사회와 한반도의 미래를 좌우할 ‘길찾기’가 지금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2월13일 북핵 6자회담을 타결지으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서로에게 손을 내밀기 시작했습니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목표를 향해, ‘말이 아닌 행동’의 단계로 들어선 겁니다. 첫 6자회담이 시작된 2003년 8월부터 치면 3년7개월 만입니다. 그사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등으로 한층 캄캄한 터널 속을 헤매기도 했지만, 끈기 있는 대화로 터널을 빠져나온 듯합니다.
물론 터널 밖은 탄탄대로거나, 고민이 필요 없는 외길은 아닙니다. 그래서 새롭게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핵폐쇄에서 핵불능을 거쳐 핵폐기로 가는 과정을 세심하게 조율하고 진행하는 한편으로, 이 과정에 힘을 실어주는 정치적 노력 같은 것 말입니다. 지난해 11월 부시 대통령이 거론한 것으로 알려진 남·북·미 3자 정상의 한국전쟁 종전 선언이나, 남북 정상회담 등은 북핵 합의의 진전에 결정적 요소가 될 겁니다. 2007년 안에 김정일 위원장과 부시 대통령이 악수를 나누는 장면이 현실로 나타나길 기대해봅니다.
우리 사회 내부에서도 길을 고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크게 눈에 들어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한민국 진보, 달라져야 한다”라며 참여정부에 대한 진보 진영의 태도에 문제를 제기한 뒤 빅뱅을 일으킨 ‘진보 논쟁’이 그것입니다. 비록 노 대통령이 폭발의 단추를 눌렀지만, 논쟁은 진보 진영의 자기 성찰이자 길찾기입니다.
이 길 역시 북핵의 앞길처럼 탄탄대로도 외길도 아닙니다. 어찌 보면 더 뿌옇고, 걸림돌과 갈래가 많은 길일 수 있습니다.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가 2006년 말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유권자들의 이념 성향은 ‘중도’가 36.9%로 가장 많고 ‘보수’ 30.2%, ‘진보’ 27.1% 순으로 나타납니다. 이 기관이 2002년 대선 직전에 실시한 여론조사(진보 41.1%, 중도 32.3%, 보수 26.7%)에 견주면 진보의 퇴조가 두드러집니다.
그런 만큼 진보의 길찾기는 더 많은 끈기와 상상력을 요구합니다. 은 이 길찾기의 출발점으로 진보 인사 10명에게 진보의 역할과 방향,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들의 대답이 독자들께 조그만 이정표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흔히 새 학기는 새 출발에 비유됩니다. 설렘으로 새 출발을 다짐하는 3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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