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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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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외인간 아줌마

등록 2006-09-08 00:00 수정 2020-05-02 04:24

▣ 조영아 소설가· 지은이

문예지 신인상을 심사할 때 편집위원 혹은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아줌마를 배제하라’라는 규율이 암암리에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일단 무조건 아줌마 냄새가 나는 작품은 제외시킨다. 요즘은 신인상 공모 공고에 대놓고 ‘우리는 젊은 작가를 원한다’라고 주를 달아놓는 문예지도 있단다. 그럼 젊지 않은 작가는 아예 응모도 하지 말라는 것인가. 그뿐만이 아니다.

수준이 고만고만한 몇 작품을 뽑아놓고 일일이 전화로 나이를 확인한 다음 “네, 알겠습니다.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하고 상냥하게 전화를 끊는다. 그러곤 연락이 없다. 그중에 나이 제일 어린 누군가가 다시 연락을 받는 행운을 차지했을 것이다. 그래서 공모를 준비할 때면 아줌마 티가 나는 작품은 일찌감치 제쳐둔다. 뛰어나게 잘 쓰지 않은 이상 뽑히기 어렵다는 지론에서다.

나이를 확인하는 전화를 받은 뒤…

올해는 유난히 나이 든 사람들이 신춘문예며 각종 문학상을 휩쓸었다. 이에 우리 문학이 젊어져도 모자라는 판국에 뒷걸음질치고 있는 건 아니냐는 둥 여기저기서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심지어는 젊은 작가를 포함한 문학판이 대오각성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까지 들렸다. 올해 상을 받은 나로서는 우리 문학판이 뒷걸음질치는 데 한몫한 격이 되고 말았다. 죄를 지은 기분이다. 출판사 쪽에서 수상 소식을 전해주면서 가장 먼저 나이부터 물어왔다. “나이 많은데요?” 내 나이를 알면 이 사람들이 얼마나 맥이 빠질까. 이 사람들도 이왕이면 톡톡 튀는 젊은 작가를 원했을 텐데. 그러나 곧 생각이 바뀌었다. 나이가 무슨 대수야. 잘 썼으니까 뽑혔겠지. “마흔인데요.” 나는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마흔’을 외쳤다. 물론 그쪽에서 이런 것을 문제 삼거나 섭섭해한 것은 절대 아니다. 오해 없기를. 내가 느끼기에 그랬다는 것이다. 그 좋은 순간에 왜 그런 자격지심이 들어야 했는지. 단지 소심한 내 성격 탓이었을까.

나는 서른이 한참 넘은 나이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한때는 ‘아, 10년만 일찍 시작했어도’ 하는 후회를 했다. 그러나 지금은 나이 들어 시작한 것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긴다. 젊은 시절 저 잘난 맛에 세상의 그 무엇이 보였겠는가. 모르지. 더 빨리 커서 더 확고히 자리매김하고 있을지도. 분명한 건 젊고 재기 발랄한 머리만으로 쓰는 글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머리와 가슴이 적당히 어우러져야 좋은 글이 나온다. 내가 10년 일찍 소설을 썼다면 아마도 머리만 가지고 썼을 확률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늦게 시작한 걸 다행으로 여긴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이 다 좋다거나 젊은 작가들이 머리만 가지고 쓴다는 소리는 물론 아니다.

요즘의 젊은 작가들을 비판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중에는 머리와 가슴을 골고루 갖춘, 정말 잘 쓰는, 발군의 실력을 가진 작가들이 꽤 있다. 그런 젊은 작가들을 선호하는 건 당연하다. 나도 부러우니까. 그게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그것이 전부인 양 몰고 가는 문학판의 풍토가 문제다. 이런 식으로 나가다가는 조만간 문학상 공모에 나이 제한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나이가 많고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아줌마 티가 난다는 이유로 심사 대상에서 일찌감치 제외된다는 것은 창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 나라를 떠나라”는 말로밖에 안 들린다. 그럼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잘 써. 그러면 되잖아. 잘 쓰면 안 뽑고 배기겠어?” 과연 그럴까.

아줌마는 늘 그렇고 그래?

수준이 비슷한 두 작품이 있을 때 순순히 아줌마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역시 이왕이면 다홍치마일 것이다. 사회가 이만큼 성장한 데는 아줌마의 힘이 컸다고 인정하면서 왜 글판에서의 아줌마는 싹 틔울 기회조차 박탈당해야 하는가. 아줌마는 늘 그렇고 그런 이야기만 써. 사람들 머릿속에 박혀 있는 아줌마에 대한 편견이 가장 큰 고질병이다. 이번 신춘문예나 문학상에서 드러났듯이 실제로 잘 쓰는 아줌마 작가들, 혹은 나이 많은 작가들이 얼마나 많은가. 설마 아줌마 작가들이 이 나라 뜨기를 기대하는 건 아니겠지. “우리도 한 때는 젊은 시절이 있었다!” 들리지 않는가. 아줌마들의 절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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