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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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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매장의 추억

등록 2006-02-24 00:00 수정 2020-05-03 04:24

▣고경태/ 한겨레21 편집장 k21@hani.co.kr

생매장해본 적 있으십니까?
꺼내놓고 보니 소름 끼치는 말입니다. 어두운 과거를 고백합니다. 저는 생매장해본 적 있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그러나 잔인하고 냉혹하게 어떤 생명체를 ‘파묻어’버린 기억입니다.
16년 전입니다. 집에선 쥐가 골치였습니다. 툭하면 주방을 급습해 음식물을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도망갔습니다. 아버지는 놈이 자주 지나다닐 거라 추정되던 길목에 끈끈이를 놓았습니다. 놈은 딱 3일 만에 ‘체포’됐습니다. 살이 퉁퉁하게 오른 잿빛 몸뚱이였습니다. 끈끈이의 접착력은 실로 강력했습니다. 아무리 용을 써도 탈출이 불가능하더군요. 아버지는 이미 마당 장독대 부근에 땅을 파놓았습니다. 그러곤 한마디를 툭 던지고는 사라졌습니다. “네가 좀 치워라.” 손으로 옮기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삽으로 끈끈이에 달라붙은 쥐를 들어올려 ‘무덤’ 속으로 던져버렸습니다. 놈은 밖으로 빠져나오기 위해 발작에 가까운 몸짓을 해댔습니다. 흙을 조금씩 끼얹었습니다. 놈은 정말 생난리를 치며 절규했습니다. 그래봤자 어쩌겠습니까. 비극적인 최후는 끝내 다가오고야 말았습니다.

어느 날 새벽, 자동차를 몰고 가다 급브레이크를 밟았습니다. 교외 한적한 도로에서 갑자기 고양이 한 마리가 튀어나왔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부딪히지 않고 피했습니다. 달아나는 고양이의 뒤꽁무니를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순간 그 오래 전 쥐의 마지막 몸부림이 떠올랐습니다. 언젠가 꿈자리에서 그 쥐와 마주친 적이 있는 것도 같습니다. 죽이기 싫습니다. 다시는 내 힘으로 그 어떤 살아 있는 생명의 목숨을 끊거나 고통을 주고 싶지 않다는 강박이 있습니다. 동물에 관한 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앓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그런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앓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말한다면 좀 지나칠까요? 아무튼 동물의 생명권에 대한 조심스런 강박이 생겼으면 합니다. <한겨레21>에서 동물실험에 관한 기사들을 읽은 뒤의 정신적 충격이 컸으면 하는 희망사항입니다. 한 해 동물실험에 희생되는 수가 최소 300만 마리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말이 300만 마리지, 이건 거의 한국전쟁 때 무고하게 죽은 남북한 민간인 희생자 수에 버금갑니다. 인간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동물들을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꼭 학살해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소식을 전합니다. 이번호에는 ‘알림’기사가 많습니다. 이중에서 특히 101쪽 독자란에 실린 세번째 알림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마감기한이 가장 촉박하기 때문이지요. <한겨레21>이 취재 경력기자를 뽑습니다. 6년 만입니다. 현재 활약 중인 경제팀의 김영배·조계완 기자나 사회팀의 김소희·신윤동욱 기자가 2000년을 전후해 취재 경력으로 입사한 주인공들입니다. 그 뒤를 이을 열정적인 ‘뉴 페이스’를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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