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경태/ 한겨레21 편집장k21@hani.co.kr
독자들은 주검을 탐닉합니다.
대한민국 이야기가 아닙니다. 타이를 비롯한 동남아의 일부 국가들이 그렇습니다. 타블로이드 일간지들은 경쟁적으로 주검 사진을 1면에 싣습니다. 처참하고 끔찍할수록 재미를 본다고 합니다. 6년 전 방콕에서 만난 타이 일간신문 <마띠촌>의 한 기자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충격적인 주검 사진이 있어야 잘 팔리는 것은 야한 누드 사진이 있어야 잘 팔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국은 다를 겁니다. <한겨레21> 독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겨레21>은 2년 전 칼로 난자당한 어느 아체 청년의 사진을 표지에 실은 적이 있습니다. 아체의 현실을 가장 사실적으로 드러내주는 장면이었지만, 거센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극소수 독자들은 편집자의 윤리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표지가 아닌 본문에 주검 사진이 실릴 때에도 민감한 반응이 감지됩니다.
이번호 표지이야기는 ‘주검’ 그 자체입니다. 적나라한 시각물은 없지만, 망설였습니다. 날도 더운데 읽는 이들의 불쾌지수를 자극할지도 모를 소재입니다. 그럼에도 용기를 냈습니다. ‘죽은 자의 권리’라는 명제 때문입니다. 기사를 쓴 김창석 기자는 거창하게 말합니다. “주검을 관리하는 검시제도는 한 사회의 문명 수준을 재는 척도”라고.
옛날 에피소드를 한 가지 소개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입니다. 제가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하기 전, 한겨레신문사의 각성을 촉구하며 농성하러 온 일입니다. 신문사가 영등포구 양평동에 있던 시절인데, 대표전화로 “농성하는 학생 누구누구 좀 바꿔달라”고 하면 전화 받는 여직원이 무지 싹싹하고 친절하게 “끊지 말고 기다리라”며 달려가 바꿔주던 때입니다. 1989년 6월로 기억됩니다. 그때 저와 모종의 관계를 맺었던 이들은 “지면에 컬러 주검 사진을 실으라”며 한겨레신문사 일부를 점거해 삭발을 하고 단식농성을 했습니다.
주검의 주인공은 조선대 학생 이철규였습니다. 1989년 5월10일 오전 11시30분, 광주시 청옥동 제4수원지에서 변사체로 떠오른 그의 몸은 흉측하게 퉁퉁 불어 있었습니다. 그는 당시 수배 상태였고, 행방불명되기 전 경찰의 검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주검 사진을 본 이들은 경찰의 고문에 의한 타살이 분명할 거라 확신에 가까운 ‘추측’을 했고, 진실을 알리기 위해 한겨레가 이 사진을 실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물론 한겨레신문사는 거부했습니다. 농성 학생들은 “한겨레가 창간정신을 잊었다”고 반발했습니다.
몇달이 흐른 뒤, 수사기관쪽에서는 십여구의 주검이 담긴 컬러 전단을 뿌렸습니다. 익사체의 유형을 보여주는 사진이었습니다. 물에 불은 주검들은 원래 다 고문당한 것처럼 변질된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목적이었나 봅니다. 진실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신문에 컬러 사진을 실어야 한다고 주장한 쪽이나, 익사 주검은 원래 그렇다며 컬러 전단을 뿌리던 쪽이나 마찬가지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주검에 대해 쉽게 판정내린 겁니다.
문제는,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독립적인 검사기관을 설치해야 한다는 게 표지이야기의 결론입니다만, 아무쪼록 ‘검시’의 대상이 되는 일이 없도록 몸조심도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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