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경태/ 한겨레21 편집장 k21@hani.co.kr
욕을 들어도 반갑습니다. 침묵보다는 비난이 맛있습니다.
요즘 인터넷상의 <한겨레21> 독자의견란이 활발합니다. “들끓는다”는 표현은 좀 과장일 테고, 적어도 편집자들을 심심하지 않게 합니다. 물론 칭찬하는 글보다는 공격적인 글이 많고 비방에 가까운 것도 없지 않습니다. 아전인수를 하자면, 그만큼 논쟁거리가 많아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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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 창간 때가 생각납니다. 저는 초년 기자로서 독자페이지를 담당했습니다. 잡지에 끼우는 독자엽서도 제 몫이었습니다. 창간을 앞두고 다른 주·월간지 독자엽서를 참고하며 어떻게 꾸밀까 고민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하나는 정기구독 신청용이었고, 다른 하나는 독자의견용이었습니다. “과연 독자들이 엽서를 뜯어내 보낼까”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습니다. 기우였습니다. 볼펜 글씨가 깨알같이 적힌 독자엽서들이 쏟아졌습니다. 창간호 땐 500여장이 왔습니다. 정기구독을 신청하는 엽서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일부 독자들은 엽서로는 성이 안 차 편지지에 구구절절한 사연을 담아 보내기도 했습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핸드라이팅’의 시대가 저문다고 합니다. 기본적으로 볼펜을 손에 쥘 일이 별로 없습니다. 언제부턴가 <한겨레21>엔 엽서가 사라졌습니다. 터놓고 말하면, 경비 절감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한겨레21>은 독자엽서를 2005년 지면혁신호부터 되살렸습니다. 매주 살린 건 아닙니다. 한달에 한번씩이라도 부활시키고 싶은데, 반응이 없다면 아마 효율성의 논리에 밀려날 겁니다. 다행히도 지면혁신호 엽서에서 자그마한 가능성을 엿보았습니다. 그래서 한번 더 해봤습니다(20~21, 88~89쪽 사이 참조). 욕을 먹어도, 육필(肉筆)을 느끼며 먹으면 정이 듭니다. 독자 여러분의 숨결이 들리는 듯합니다. 엽서에 무엇인가를 적어보십시오. 우체통이 어디 있는지 몰라 헤맬지도 모르겠지만.
마지막으로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이야기 하나. 제호 색깔의 변화입니다. <한겨레21>은 물론 국내 시사주간지 대부분이 빨간 제호 바탕을 고수해왔습니다. <타임>이나 <뉴스위크>도 오랫동안 그랬습니다. <한겨레21>은 막가기로 했습니다. 빨간색이 <한겨레21> 브랜드의 정체성을 수호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차적인 목적은 표지의 디자인적 완성도를 높이는 일입니다. 우연인지 모르겠으나, 다른 시사주간지도 따라오고 있습니다.
비화를 소개하자면, 지난해 창간 10돌을 앞두고 새 제호 시안을 만든 적이 있습니다(사진 참조). 판매·광고팀도 함께 참여해 여러 차례 회의를 했으나 결국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1999년 말에 이은 두 번째 실패입니다. 구관이 명관이라서일까요? 현재의 제호 서체가 올드하다고 느끼면서도 선뜻 ‘용단’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 콤플렉스를 색깔의 변화로 커버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빛깔이 풍부한 잡지, <한겨레21>은 계속 진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