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경태/ 한겨레21 편집장 k21@hani.co.kr
신문을 모으면 ‘역사’가 되기도 하지만 ‘역사’ 귀퉁이에 잔뜩 쌓이기도 합니다. 지하철 역사(驛舍) 말입니다. 아침저녁으로 전철을 타면서 느낍니다. 심심하고 싶어도, 심심할 수 없다고…. 특히 출근으로 번잡할 때에는 선반에 언제나 신문이 가득합니다. 입맛에 따라 골라 읽을 수도 있습니다. 공짜입니다. 별 생각 없이 술술 읽힙니다. 이것이야말로 언론의 자유일까요? 맘대로 읽는 자유 말입니다.
저는 요즘 머릿속이 복잡합니다. 편집장이 되고 나서 이것저것 판단해야 할 일들이 많아졌습니다. 심지어는 전철에서 나눠주는 ‘무가지’들마저 안 써도 될 머리를 쓰게 합니다. 지난주 화요일, 무가지 시장을 개척한 것으로 알려진 한 타블로이드 신문은 <한겨레21>의 표지이야기(‘고양이와 비둘기의 진실’)를 맘대로 요약해서 실었습니다. 사전 양해도, 사후 언질도 없었습니다. 그러고는 면죄부의 장치라도 되는 듯, <한겨레21> 로고를 하단에 박았습니다. ‘매거진’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다른 시사주간지 기사까지 발췌한 걸 보면, 작정을 한 모양입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걸까요. 홍보해줘서 고맙다고 감사전화라도 드려야 할까요?
포털이 장악한 인터넷 환경도 가끔은 혼란스럽습니다. <한겨레21>은 월요일에 발간됩니다. 그런데 일부 기사들이 당일 점심쯤 <인터넷 한겨레> 홈페이지에 오를 때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인터넷 한겨레> 실무자들과 언쟁을 벌였습니다. 유료 구독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따지다가 ‘아날로그 사고’라는 포화를 맞기도 했습니다. 종이매체 콘텐츠는 온라인에서 어떤 원칙을 갖고 독자들과 호흡해야 할까요. 즉각 100점짜리 해답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동종업계의 시사주간지를 보면서도 마음이 무겁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지난주 발행된 몇몇 시사주간지는 뚜렷한 특징 한 가지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제 억측일 수도 있겠지만, 광고주를 의식한 서비스가 너무 화끈한 게 하닌가 하는 마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특정 의료업계, 특정 병원, 특정 대학…. 비난을 하자는 건 아닙니다. 읽는 이들이 좋아한다면 시비를 거는 게 무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시사주간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니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독자와 광고주가 모두 대만족한다면 ‘윈윈 게임’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니 기본적으로, 그 영업력을 부러워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인터넷 매체의 포위 속에서, 냉혹한 자본주의 언론시장의 한가운데를 뚫고 나가야 하는 시사주간지의 현실을 잘 압니다. 시장과 매출의 원리를 부인하면서 ‘고급지’ 어쩌고 하는 건 순진한 발상일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상업주의 전략도 필요합니다. 뭔가 바꿔보겠다고 지면개혁까지 공표한 마당에, 그쪽 길을 따라 변화를 꾀해볼까요? 시사주간지들을 훑어보다가 생각의 나무에 잠시 불이 붙었습니다.
<한겨레21>이 지면개편호를 낼 5월 중순 즈음에 <한겨레>도 확 바뀐다고 합니다. 이름하여 ‘제2창간’입니다. “확 바뀐다”는 광고가 곧 나갑니다. <한겨레21>도 반드시 확 바뀌어야 하나요? 안 바뀌면 안 될까요? 농담입니다. ‘함부로’ 바뀌지는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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