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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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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

등록 2005-02-16 00:00 수정 2020-05-03 04:24

▣ 배경록/ 한겨레21 편집장 peace@hani.co.kr


짧지 않은 설 연휴가 끝나고 이제 모두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설 연휴가 시작되기 전, 정부가 경제 살리기에 온 힘을 쏟겠다고 했고, 경기회복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고위 경제관료의 분석까지 나온 터여서 올 설이 조금은 푸근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앞으로의 형편이 좀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잠시, 일상으로 돌아온 뒤에도 활기차야 할 우리의 일터를 여전히 무겁게 짓누르는 것이 있다. 기아자동차 노조간부 채용 비리와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폭력 사태로 촉발된 한국 노동운동의 위기가 그것이다.

오비이락 격으로 터진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1987년의 이른바 ‘노동자 대투쟁’을 기억해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수도권의 대공장과 반월공단, 성남공단 등지의 사업장 곳곳에서 봇물처럼 터져나왔던 노동쟁의 현장에 몇달 동안 살다시피 하며 취재를 했기 때문이다. 당시 대부분의 사업장에는 노조가 아예 없거나 사용자가 노조를 인정하지 않아 노조 인정과 활동 보장을 요구하는 집회와 시위가 잇따랐다. 어용노조가 선점하고 있던 사업장에서는 집행부 교체를 둘러싸고 몸살을 앓거나 복수 노조를 인정받기 위해 힘겨운 대정부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것은 임·단협에 눈이 먼 단순한 노동운동이 아니라 눈물겨운 인권운동이었다.

지금은 아득한 옛날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노조 설립인가서를 내주어야 할 지방자치단체는 회사쪽 눈치를 보며 인가서 발급을 고의로 기피했고, 집회와 시위 현장에는 주저 없이 공권력이 투입돼 무자비한 해산이 이뤄졌다. 안기부와 보안사, 검찰, 경찰, 노동부, 자치단체 등이 참여하는 관계기관 대책회의에서는 노조 와해 대책이 논의됐고 주동자에 대한 사법 처리 방침이 정해졌다. 회사쪽은 ‘노조 파괴 브로커’들을 고용해 노동운동이 뭔지 잘 모르는 노동자들을 회유하거나 협박했고, 구사대를 조직해 외부에서 동원된 깡패들과 함께 노조의 집회와 시위를 무력화하기도 했다. 많은 노동자들이 만신창이가 된 채 사업장에서 쫓겨나 거리를 방황해야 했고, 교도소와 구치소는 노동자들로 넘쳐났다. 오죽하면 당시 가장 ‘잘나가는’ 변호사가 노동사건 전담 변호사라는 얘기가 나돌았을까.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했던가? 그런 저항과 희생의 토대 위에서 노동운동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연대의 틀이 만들어졌고, 마침내 오늘날과 같은 노조의 위상을 이뤄낼 수 있었다. 그래서 기아차 노조 비리와 민주노총 폭력 사태는 더욱 실망스럽고 분노를 자아낸다. 한국 노동운동 전반이 위기로까지 내몰리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 노동운동의 과거사가 그토록 잔인하고 피와 땀으로 얼룩지지만 않았다면 지금처럼 참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제 기아차를 비롯한 대공장노조들과 민주노총에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 사회 정의와 도덕성, 투명성을 바탕으로 한 약자 보호와 진보 추구, 민주적인 절차 이행을 가장 먼저 요구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동자 대투쟁’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주문하고 싶다. 제 살을 도려내는 쓰라린 아픔 없이는 한국 노동운동의 미래 또한 어둡기만 하다. 대공장노조와 민주노총이 설 연휴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온 1천만 노동자와 함께 힘차게 새 출발을 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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