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 끝난 뒤 상생의 목소리가 높다. 최근 몇몇 보수 언론과 논객들의 단골 메뉴이다. 상극에서 상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진보냐 보수냐를 넘어 분명 옳은 말이고 지금 우리 현실에 비추어 적절한 말이다.
한 나라에 같이 모여 산다고 하더라도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으로 구성되기는 애초에 힘든 일이다. 생각이 다르고 정치적 견해가 다르고 기호와 삶의 방식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살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제일 긴요한 것이 상생의 원리임은 분명하다. 내 생각과 다르다고 하여 “너 같은 사람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야”라고 하면서 비국민으로 낙인찍어 감옥으로 보내고 죽이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할 것이다. 국론통일이니 국시니 하며 국가 구성원들의 사상을 하나로 옭아매던 시대는 사라져야 한다.
그들의 말이 으름장으로 들리니…
사실, 대한민국이라는 근대 국민국가가 탄생하고서 요즘처럼 대한민국이 혼성의 공간, 이질적인 요소들이 혼재하는 공간으로 된 적이 없어 보인다. 단일 민족만이 살아오던 공간에 요즘은 다른 민족, 다른 국적의 외국인들이 늘어나고 있고, 보수주의 일색이던 국회에 민노당이 진출하는 등 극좌에서 극우까지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호주제 개선에 반대하는 유교적 가부장제가 여전히 공고한 반면에 동성애자와 페미니스트들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기도 하다.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달라졌다.
현실이 이러하기에 지금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들에게 가장 긴요한 일 중의 하나가 차이와 다름, 다양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나와 생각이나 가치관, 삶의 방식이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하는 일이라고 생각되고, 그런 차원에서 대한민국은 분명 새로워져야 한다.
하지만 다양성을 바탕으로 한 상생이 우리 사회의 원리로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변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서로 다른 것들의 상생과 공존을 위해서는 각자가, 나 자신이, 먼저 변해야 한다. 나와 다른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타자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내가 변해갈 때 공존과 상생이 통용되는 사회적 영역은 비로소 넓어진다. 그런 전제, 그런 실천이 없이 외치는 상생론은 그저 공염불이거나 위선이다.
총선이 끝난 뒤 쏟아져나오는 일부 보수 언론과 논객들의 상생의 논리가 아무래도 의심스러워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자신들은 전혀 변하지 않은 가운데 상생을 외치기 때문이다. 상생을 위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에 대한 언급이 없는 가운데 상생만 외치고 있고, 개혁세력이 과연 보수파를 보듬어 상생의 정치를 해나가는지를 지켜보겠다는 으름장뿐이다. 더구나 상생을 말하면서도 젊은것들이 철없이 날뛰어 좌익 세상이 되었고 대한민국이 조만간 망할 것처럼 호들갑이다.
그들이 말하는 상생의 논리란 것이, 대선에 이어 총선에도 모든 것을 걸었다가 또다시 졌는데, 그렇지만 지난 우리 행동을 잊어주고 우리를 탄압하지 말아달라는 구원 요청인 동시에 우리의 요청을 무시하고 탄압할 경우 결코 가만있지 않겠다는 협박과 경고로 들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중국 작가 루쉰(魯迅)은 “물에 빠진 개가 있으면 함부로 건져주지 말라”고 했다. 물에 빠진 개가 있으면 무턱대고 건져줄 것이 아니라 그 개가 어떤 개인지를 보아야 하고, 특히 사람을 무는 개라면 착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발휘하여 구해주어서는 안 된다고 권고한다. 물에서 올라온 뒤 결국은 건져준 사람을 물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개의 본성이고, 개의 본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생의 전제는 타자에 대한 이해
물론 우리나라 보수주의자들에게 물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건져주었더니 시간을 벌어 힘을 비축한 뒤 건져준 사람을 무는 그런 속성은 적어도 없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상생의 정치를 요구하는 것이 물에 빠져 소진한 힘을 다시 회복하면서 구해준 사람을 물기 위한 시간과 기회를 벌려는 고도의 생존 전략이 아니기를, 진정으로 변화하려는 마음과 나와 생각이 다른 타자와도 기꺼이 같이 살겠다는 개심(改心) 끝에 나온 상생론이기를 빈다. 그래서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는 루쉰의 권고가 그저 1920년대 중국에나 해당되는 일이라고 믿고 싶다. 대한민국이 진정으로 새로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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