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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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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론’의 함정/ 류동민

등록 2004-03-24 00:00 수정 2020-05-02 04:23

남부럽지 않은 지적 허영심을 가지고 있는데다 전공 분야도 전혀 관련이 없다고는 말하기 어려운 언저리에 있음에도, 차마 헤겔의 책을 요약 해설판이 아닌 원전으로 읽을 엄두를 내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나는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고,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다”라는 헤겔이 어디에선가 말했다는 저 유명한 문장이 철학강의나 신문칼럼도 아닌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것을 딱 두번, 아니 두번이나 들었다. 더구나 흥미롭기 짝이 없는 것은 그 두번의 맥락이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었다는 점이다.

극우마저 헤겔의 말을 인용하니

그 처음은 20년 전쯤 꽃샘추위가 겨우 가셨을까 싶던 초봄의 어느 날, 한해 위의 선배가 나를 포함한 100여명의 대학 신입생들을 모아놓고 가두시위에 나갈 것을 선동하면서 던진 말이었다.

사실 캠퍼스 안에도 사복 경찰이 상주하면서 데모라야 고작 ‘아침이슬’ 따위 부르다가 쫓겨다니기 일쑤였던 시절에, 선배가 나눠주는 유인물을 들고 광화문이나 종로로 나가라는 ‘지령’이 무섭지 않을 리 없었거니와, 학생은 어떤 경우에도 공부에 힘쓰는 것이 그 본분이다라는 명분을 내세워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선뜻 나서지 않는 후배들 앞에서 요컨대 그 선배의 말인즉, 군사정권에 반대한다면 복잡하게 이것저것 망설이지 말고 행동으로 옮기면 된다는 뜻이었다. 행인지 불행인지 그날 나는 그에게 설득당하지 않았다.

다시 그 문장을 듣게 된 것은 한참 뒤, 내 딴에는 참을 수 없는 불의라 생각하여 직장 상사와 언성을 높이며 대판 싸운 어느 날이었다. 공식적으로는 화해를 했음에도 여전히 앙금이 남아 있었을 그가 문득 조용한 목소리로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고,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다”라는 말을 읊조렸다.

나는 그 순간 갑자기 무서움을 느꼈는데, 그 말이 화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적어도 내게는 부조리해 보이는 현실에 섣부른 혈기로 덤비지 말고 알아서 기라는 말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대철학자 헤겔이 프로이센의 절대군주제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 역할을 했다는 풍월 정도는 듣고 있었던 터이건만, 문득 짧은 문장 하나가 이토록 엉뚱한 상황을 묘사하는 말로도 쓰일 수 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학창시절 그 선배의 얼굴을 떠올렸다.

헤겔의 원문이라도 찾아보려고 인터넷 검색엔진을 두드리니 놀랍게도 대통령 탄핵을 선동(또는 예언?)했던 극우파 기자의 홈페이지로 연결된다. 그는 이 문장에다 “무엇이 이루어지고 나면 합리화되고 정당화되기가 쉽다”는 주석을 붙여놓았다.

그와 쌍벽을 이루는 또 다른 보수 논객은 개인숭배와 반이성주의를 경계한다는 비장감 넘치는 글을 썼다. ‘학생은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라는 말만큼이나 ‘법률과 제도가 존중돼야 한다’라는 말은 언제 어디서나 타당한 것처럼 들린다.

그렇지만 언제 어디서나 타당한 말은 때론 전혀 상황에 맞지 않게 현실을 호도하거나 심지어 듣는 이를 협박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현실이니 이성이니 하는 말은 구체적으로 설명되고 규정되지 않는 한 공허한 것일 수밖에 없음을 뻔히 알면서도, 원론적인 주장을 반복하는 것은 엄청난 불의를 정당화하는 흔한 기제 중의 하나일 따름이다. 총칼로 정권을 빼앗았던 이 땅의 독재자들도 법률과 절차에 따라 체육관선거를 통해 임기를 이어나가지 않았던가!

‘이성적’ 현실이 진보를 이끈다

사실 지금 이 땅에서 합리화되고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그 여름날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이라 생각하면서 거리를 메웠던 젊은이들의 상당수가 내 또래였던 탓도 있겠지만, 주위에서 부쩍 요즘의 상황을 1987년 6월의 그것에 비유하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 시절 부조리한 현실을 깨는 데는 일단 성공했었지만, 그것이 자동으로 이성의 실현을 가져다주지는 않았던 아픈 기억을 어쩔 수 없이 떠올린다. 그래서 나는 현실을 어떻게 바꾸는 것이 진정으로 이성적인가에 대해서도 지금부터 생각해두어야 한다고 믿는다.

비록 지금은 미미하겠지만 우리 스스로가 대안을 만들어내고 그 싹을 키워나가지 않는다면, 1987년이 2004년에 반복되듯 2004년도 또 언젠가 반복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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