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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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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 년을 버틴 씨앗, 하루 만에 사라진 아이들

이스라엘 팽나무 진딧물에서 시작된 질문, 유대 대추야자의 흥망과 전쟁의 시간
등록 2026-03-27 12:49 수정 2026-03-31 11:13
유프라테스강 하부에 있는 이라크의 고대 유적 바빌론의 대추야자. 게티이미지

유프라테스강 하부에 있는 이라크의 고대 유적 바빌론의 대추야자. 게티이미지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있는 농업연구기구 식물보호연구소의 즈비 교수에게서 전자우편을 받았다. 2025년 11월의 일이다.

“이스라엘에서는 지난 25년간 팽나무속 나무를 가로수로 널리 심어왔습니다. 자생종은 없습니다. 동아시아와 북유럽 등지에서 도입한 것입니다. 적당한 성장 속도와 현지 기후 적응력, 그리고 병충해에 강하다는 장점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전에 없던 ‘팽나무알락진딧물’이 유입돼 정착하면서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이 진딧물은 팽나무에 살며 군집을 형성하고 진득한 즙을 대량으로 배설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길이 끈적거려 시민 민원이 끊이지 않으니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과도한 살충제 살포와 강한 전정 작업을 합니다. 참다 못한 주민들이 나무를 베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생물학적 방제를 위해 이 진딧물의 천적인 기생벌 종류를 찾아 이스라엘로 도입하고자 합니다. 진딧물이 서식하는 팽나무를 식별하고 샘플 채취에 적합한 군락지를 찾는 데 박사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텔아비브에서 온 전자우편

 

즈비 교수가 속한 연구소는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세워지기 전부터 있었다. 지난 100여 년 척박한 팔레스타인 지역 정착촌에서 연구소는 생존을 위해 자급자족할 수 있는 농업 기술을 필사적으로 연구했다. 사막을 옥토로 바꾸는 기적도 실현했다며 단순한 학문을 넘어 나라를 세우고 지탱해온 과정을 기록한 장소와도 같다고 즈비 교수는 내게 연구소를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즈비 교수팀은 이번 여름에 한국에 와서 나와 함께 팽나무 몇 종류를 채집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당장은 기약할 수 없게 되었다. 전쟁 때문이다.

나처럼 실제 겪지 않은 세대도 ‘전쟁’이란 말을 들으면 두려움부터 밀려온다. 한반도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벌어졌던 전쟁의 참혹함과 상흔을 간접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수천 년을 통과하며 번성과 쇠락을 반복한 식물의 생애를 들여다볼 때 더욱 실감하는 편이다.

전쟁은 유대 지방 대추야자 농업 문명의 운명을 바꾸기도 했다. 대추야자는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사막지대에서 오아시스를 활용한 관개농업의 대표 작물이다. 이 식물은 세계에서 가장 오랜 재배 역사를 지닌 유실수로 알려졌다. 세계적인 부자 만수르가 간식으로 즐겨 먹는다고 직접 소개하며 국내에서도 유명해진, 일명 두바이 쫀득한 대추가 열리는 나무가 대추야자다. 그 달콤하고 말랑거리는 열매가 대추를 닮아서 접두어 ‘대추’를 달았을 뿐 사실 대추나무와는 관계가 없다.

 

국내에 심어 기르는 야자수 세 종류. (왼쪽부터) 중국 원산의 종려나무, 아프리카 카나리섬이 고향인 카나리아야자, 미국 남서부 지역이 고향인 워싱턴야자. Plants Of the World Online

국내에 심어 기르는 야자수 세 종류. (왼쪽부터) 중국 원산의 종려나무, 아프리카 카나리섬이 고향인 카나리아야자, 미국 남서부 지역이 고향인 워싱턴야자. Plants Of the World Online


사막을 먹여 살린 나무, 대추야자

 

대추야자는 약 6천 년 전 아라비아와 메소포타미아(현재의 이라크)에서 처음 재배한 작물로 추정한다. 레반트 지역, 다시 말해 고대 유대 지방의 중요한 식량자원이었다. 유대 지역 대추야자 농업이 가장 독보적인 명성을 떨쳤던 시기는 로마제국 초기(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다. 당시 유대산(産) 대추야자는 로마 황제의 식탁에 오를 만큼 지역 최고의 명물이었다고 한다. 유대인들은 접붙이기와 인공수분 기술이 뛰어났고, 사해 근처의 척박한 땅을 비옥한 농지로 바꾸는 관개 기술이 있었다. 로마가 유대를 정복했을 때 발행한 동전에는 포로가 된 유대인 옆에 대추야자나무가 그려져 있을 정도였다. 기원전 5세기에 활동한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와 기원후 1세기에 활동한 로마제국의 작가 플리니우스는 그들의 저서에 유대 대추야자의 뛰어난 품질을 기록했다. 보존 기간이 길어서 멀리까지 운반이 가능했기에 그 시절의 대표 수출품이었다는 설명이다.

대추야자를 포함해 그 혈통에 속하는 여러 종을 통칭해서 ‘종려(椶櫚)나무’라고 부른다. 잎은 대체로 거인이 손바닥을 쫙 펼친 것처럼 생겼다. 영어로 손바닥을 뜻하는 ‘팜’(Palm)을 붙여 종려나무 혈통을 ‘팜트리’(Palm Tree)라고 부르는 이유다. ‘종려나무’ 하면 야자수가 먼저 떠오를 수 있다. 국내에 도입돼 재배되는 야자나무과 식물 여러 종을 아울러 편의상 ‘야자수’라고 부른다.

“우와, 이모 저것 좀 봐. 파인애플이 나무에 열렸어!” 태어나서 처음 제주도 여행을 하게 된 조카는 제주공항 게이트가 열리자 쭉쭉 선 나무를 가리키며 놀란 듯이 외쳤다. 조카에게 제주에 도착한 것을 가장 실감 나게, 맨 먼저 알려주는 존재가 야자수, 그러니까 종려나무 무리였던 것.

제주와 남부 지역에 가로수나 정원수로 심어 기르는 그들 야자나무는 생물학적으로 세 종류다. 중국이 고향인 ‘종려나무’, 미국 남서부 지방이 고향인 ‘워싱턴야자’, 아프리카 카나리섬이 고향인 ‘카나리아야자’. 그중 중국 원산의 종려나무를 가장 널리 심는다. 중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일찍이 다양한 품종이 개발됐고 국내에도 도입된 덕분이다. 최근에는 키가 작은 ‘당종려’와 ‘왜종려’ 등의 품종을 심는다. 그간 심은 종려나무는 키가 너무 크게 자라기 때문에 거센 바람이 불면 픽픽 쓰러지는 문제가 발생하곤 했다. 강릉과 대구에서도 종려나무 품종이 가로수로 등장한 걸 보며 온난해진 기후를 새삼 느낀다. 국내에서 대추야자는 자랄 수 없다. 대한민국은 100% 수입에 의존한다. 이스라엘과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에서 들여온다.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가 활동하던 7세기는 유대 대추야자가 이미 정점을 찍고 서서히 부침을 겪던 때다. 당시 유대 지역은 비잔틴제국(동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았는데, 잦은 전쟁과 과도한 세금으로 인해 과거 로마 시절만큼의 화려한 농업 생산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대추야자 농업의 중심지는 유대 지역에서 아라비아반도로 옮겨갔다. 시간이 흘러 무함마드 사후 아랍 군대가 유대 지역을 정복하면서 대추야자 농업은 다시 부흥기를 맞는다. 아랍인들은 자신의 유목 지식에 유대인들의 정착 농업 기술을 접목하고 재배 기술을 북아프리카를 거쳐 스페인까지 전파했다. 이 과정에서 역설적으로 유대 지역만의 독점적 명성은 점차 희석됐고 이후 11세기에 십자군전쟁이 터지면서 결정적인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건과일로 즐겨 먹는 대추야자. 국내에서는 재배가 안 되고 이스라엘,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지에서 들여온다. 걸프투데이(gulftoday)

건과일로 즐겨 먹는 대추야자. 국내에서는 재배가 안 되고 이스라엘,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지에서 들여온다. 걸프투데이(gulftoday)


므두셀라, 2천 년 만에 깨어난 씨앗

 

내가 이런 사실을 알고 관심을 두게 된 배경에는 이스라엘의 고대 유적지에서 발견된 대추야자 씨앗이 있다. 이스라엘 민족이 로마제국에 항거하며 마지막까지 싸웠던 요새인 마사다 유적지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구약성경 사본으로 알려진 ‘사해문서’가 발견된 쿰란 동굴에서 나온 씨앗이 바로 그것이다. 스위스 취리히대학 연구팀이 분석한 결과, 기원전 155년부터 기원후 64년 사이의 것으로 확인됐다. 그 씨앗이 놀랍게도 2008년에 발아했다. 그걸 가능하게 한 예루살렘 자연과학의학센터 연구진은 돋아난 대추야자에 ‘므두셀라’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구약성서에 969년을 살았다고 기록된 인물이다. 그리고 몇 년 후 6개 씨앗이 추가로 싹을 틔우며 연구는 계속됐다. 2020년 사이언스어드밴스(Science Advances)에 발표된 연구 결과를 읽으며 나는 유대산 대추야자의 흥망성쇠가 먼 과거의 일이 아니라 마치 지금 일어나는 일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동쪽으로는 인더스강 상류에서 서쪽으로는 모리타니까지 대추야자의 재배는 지난 수 세기 동안 확장했다. 그럼에도 유대 지방의 대추야자가 쇠락한 것은 단순히 한 사건이 아니라 정치적 변화와 환경적 재난이 겹친 결과다. 아랍 세력이 유대 지역을 장악하면서 기존의 고도화된 관개시설 관리가 소홀해졌고 대추야자의 생산량은 급격히 줄었다. 11세기부터 13세기 사이 유럽의 십자군과 이슬람 세력 간의 전쟁으로 대추야자 농경지는 초토화됐고 퇴각하는 군대는 상대의 경제 기반을 최대한 파괴하려고 대추야자숲을 통째로 베어버리는 말살 작전까지 펼쳤다. 이게 결정타였던가. 14세기에 들이닥친 극심한 가뭄과 감염병(흑사병)으로 인구마저 줄자 노동집약적인 대추야자 농업은 그 지역에서 사실상 맥이 끊겼다.

 

종려나무. 일러스트레이션 차지우

종려나무. 일러스트레이션 차지우


남겨진 것은, 침묵한 어른들의 얼굴

 

반대로 오늘날 전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대추야자의 한 품종인 메드줄(Medjool)의 최대 재배지는 이스라엘과 미국이다. 이스라엘 대추야자는 요르단 계곡의 척박한 땅을 현대적 기술로 개간해 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미국은 1920년대 이슬람 국가에서 메드줄 묘목을 들여와 대량 재배에 성공했고 지금도 큰 수익을 올리고 있다.

2026년 2월28일 미국이 이란을 공습했다. 대낮에 미사일이 하늘에서 초등학교를 조준해 내리꽂혔다. 대추야자가 많이 사는 동네 어린이를 포함해 175명이 그 자리에서 죽었다. 오전반 수업을 마치고 가족을 기다리거나 수업을 듣고 있던 아이가 대부분이었다. 아이들이 피폭당해 죽었고, 남은 가족이 오열하며 쓰러지는데 몹쓸 일을 저지른 미국은 모른다고 잡아뗀다. 국가에 소속된 어른들은 침묵한다. 입으로 정의를 말하던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평화의 중요성을 가르치던 어른들이, 한순간에 아이들의 목숨이 허공에 흩어졌는데 입을 꾹 다물고 있다. 국가란 무엇인가, 다시 한번 입술을 깨문다. 내가 생물학적으로 다 자란 사람이란 게 지독하게 부끄럽고 밉다.

 

허태임 식물분류학자·‘숲을 읽는 사람’ 저자

 

*식물학자가 산과 들에서 식물을 통해 보고 듣고 받아 적은 익숙하지만 정작 제대로 몰랐던 우리 식물 이야기.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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