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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감주나무 아래서 번뇌를 줍다

함안 낙동강 바람소리길, 꽃비와 열매와 염주로 이어지는 한 나무의 이야기
등록 2026-06-18 20:51 수정 2026-06-24 11:53
능가사 주변 벼랑에 뿌리 내리고 사는 모감주나무. 유월 중순의 모습이다.

능가사 주변 벼랑에 뿌리 내리고 사는 모감주나무. 유월 중순의 모습이다.


경남 함안군 능가사 앞에서 시작되는 ‘낙동강 바람소리길’을 걸었다. 이 길의 끝에는 남강과 낙동강이 합쳐지는 물줄기를 내려다볼 수 있는 합강정(合江亭)이 있다. 용화산 기슭 기암절벽 위에 세워진 조선시대 정자다. 왕복 7㎞ 정도 되는 그 길에서 바라보는 단애와 그 벼랑에 붙어사는 모감주나무는 진짜 멋지다. 저렇듯 험한 낭떠러지에서 어느 한 그루 추락도 없이, 도대체 뿌리가 얼마나 단단한 걸까. 땅을 그러쥐고 사는 나무의 힘을 길 위에서 목격한다.

 

땅을 그러쥔 뿌리, 미련 없이 지는 꽃

 

유월 중순, 모감주나무 꽃이 피기 시작한다. 모감주나무 꽃은 만개와 동시에 강으로 낙화할 것이다. 나무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깨끗이 포기할 줄 알아서 위대하다. 화려한 시절을 오래 붙들고 있지도 않으며 미련 따위 남기지 않고 훌훌 털어낼 줄도 안다.

서양에서는 모감주나무를 ‘골든레인트리’(Goldenrain tree)라고 부른다. 이 나무의 노란 꽃들이 떨어지는 모습은 영어 이름 그대로 진짜 황금빛 비가 내리는 것만 같다. 모감주나무가 자연적으로 살 수 있는 국토는 우리나라와 중국뿐이다. 국내에서는 연안과 그 인접 산지에 주로 자생하는데 전남 완도와 충남 태안, 경북 포항의 자연 서식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야생에서는 희귀하지만 인간이 잘만 심으면 검질기게 산다. 척박한 환경을 마다하지 않고 견디는 그 성정 덕분에 원산지를 벗어나도 잘 큰다. 모감주나무가 여러 국가에서 조경수로 인기를 끌게 된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동양이 고향인 이 나무는 오래전에 서양으로 넘어가서 제대로 유명해졌다.

모감주나무는 18세기에 활동한 프랑스 예수회 가톨릭 사제인 피에르 니콜라 르셰롱 댕카르빌과 사이가 각별하다. 유럽의 식물에 대해 지식이 넓고 아는 것이 많았던 그 신부는 청나라 제6대 황제인 건륭제가 집권하던 시기에 프랑스 국왕의 지원을 받는 공식 선교사이자 학자 자격으로 베이징으로 파견됐다. 그 무렵 청나라는 외국인의 출입을 철저히 제한했기 때문에 서양에서 온 상인은 광저우의 제한된 구역에만 머물러야 했다. 황실의 신임을 얻은 사제만큼은 예외였다 한다.

댕카르빌 신부는 프랑스 동인도회사의 무역선을 타고 1740년 6월 광저우에 도착했고 그 이듬해에 건륭제의 정식 허가를 받고 입궁했다. 황실의 뜰에서 식물을 관리하는 업무를 시작한 것이다. 정원 한쪽에서 재배 실험을 하며 때로는 황실을 벗어나 야생의 식물을 직접 관찰하고 채집할 수 있는 권한도 얻었다. 현지인들을 만나 민속의 알짜 정보를 모았을 것이다. 불두화, 신나무, 측백나무 같은 중국의 토종 식물이 그를 통해 파리 왕립 식물원에 도착했고 귀족과 지식인 사이에 처음 알려졌다.

구한말 한반도에서 활동한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에밀 타케 신부도 그랬다. 왕벚나무 자생지를 제주에서 발견해 우리 식물의 가치를 세계에 알렸다. 타케 신부는 댕카르빌 신부처럼 정식 교육을 받은 식물 전문가는 아니었다. 가난한 한국을 돕기 위해 선배 사제들로부터 식물 채집 기술을 습득해서 선교 자금을 모았다. 그가 사목했던 제주의 식물을 스스로 공부했다. 일본에서 제주로 밀감 묘목을 들여와 오늘날 감귤 농업의 토대를 만들기도 했다.

댕카르빌 신부가 모감주나무를 발견한 건 1747년이라고 한다. 신부는 생전 처음 본 모감주나무를 이렇게 기록했다. “이름은 모른다. 처음 보는 베이징의 식물이다. 눈부신 노란 꽃을 피우고 가을에는 꽈리 모양의 이색적인 열매를 맺는다.” 그 대목을 읽으며 나는 모감주나무 열매의 생김새를 꽈리에 빗댄 표현이 탁월하고 귀여워서 살짝 웃었다. 정말 그 열매는 물에 띄운 작은 풍등 같기도 하고 앞바다 양식장의 부표 같기도 하다.

 

작은 배가 된 열매, 제퍼슨의 정원까지

 

물에 떨어졌을 때 보트처럼 둥둥 떠서 이동하기 위한 것이다. 모감주나무 열매는 얇은 종이 질감의 막 3개가 박음질하듯 튼튼하게 이어져 있고 속은 풍선처럼 부푸는 구조다. 그 안에 든 서리태만 한 까만 씨앗을 안전하게 품고서 바람을 타고 비행한다. 물 위에 착지하면 강물과 해류를 타고 더 멀리 갈 수 있다. 배를 만들어 또 다른 대륙을 찾아 나섰던 탐험가처럼 미지의 어딘가에 가닿는다.

댕카르빌 신부는 모감주나무를 해상이 아니라 육로로 옮겼다. 중국에서 출항한 배가 적도를 지나는 동안 고온과 습도 때문에 식물이 상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당시 청나라와 정기적으로 교역하던 러시아의 무역 마차에 표본과 씨앗을 실어 보냈고, 모감주나무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거쳐 프랑스 파리 왕립 식물원의 책임자이자 신부의 식물학 스승인 베르나르 드 쥐시외에게 무사히 도착했다. 안타깝게도 댕카르빌 신부는 자신이 보낸 모감주나무 씨앗이 유럽에서 발아한 소식을 듣지 못한 채 1757년 베이징에서 감염병으로 선종했다. 모감주나무가 싹을 틔운 건 1763년의 일이다.

이후 모감주나무는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도 도착했다. 공식 기록에 따르면 1809년 미국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이 직접 심으면서다. 식물 애호가로도 유명한 제퍼슨은 프랑스대사로 근무하던 시절 유럽의 정원 문화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미국으로 돌아가서도 식물이 이어준 인물들과 꾸준히 교류했다. 1811년 3월27일 파리의 테세 백작부인에게 보낸 제퍼슨의 편지에 모감주나무가 등장한다.

“지난번 편지를 드린 이후 보내주신 모감주나무 씨앗 중 하나가 마침내 싹을 틔워 지금 자라고 있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저는 이 나무를 아주 정성 들여 돌보고 있습니다. 매일 이 나무를 볼 때마다 백작부인께서 제게 베풀어주신 고귀한 우정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모감주나무가 정말로 유명해진 건 인디애나주 뉴하모니시를 건설하면서다. 1820년대 지식인과 과학자들이 모여 유토피아 공동체를 이루던 그곳의 지도자 윌리엄 매클루어는 모감주나무를 특히 좋아했다 한다. 꽃이 희망과 번영을 상징하듯 피었기 때문이라던가. 도시 전체에 모감주나무를 많이 심었고, 나무는 뉴하모니를 넘어 포지 카운티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런 역사를 기념해서 뉴하모니시는 모감주나무 개화 시기에 맞춰 ‘황금 꽃비 축제’를 지금도 해마다 연다.

소설가 로스 로크리지 주니어는 미국에서 모감주나무가 번성하게 된 역사적 배경과 그 나무 자체에 영감을 받아, 1948년 ‘레인트리 카운티’(Raintree County)를 썼다. 19세기 중반 남북전쟁 시기, 인디애나주를 배경으로 신비의 모감주나무가 사는 전설 속 낙원을 동경하는 남자 주인공이 매혹적이지만 정신적으로 불안한 남부 여인을 만나 뜨겁게 사랑하고 비극적 결말에 이르는 대서사시다. 나는 이 소설의 시작부터 결말까지를 계속해서 지배하는 가장 크고 경이로운 존재는 다름 아닌 모감주나무, 그 나무라고 생각한다.

 

서양에서는 모감주나무를 황금빛 꽃비가 내리는 것 같다고 ‘골든레인 트리’(Goldenrain tree)라고 부른다.

서양에서는 모감주나무를 황금빛 꽃비가 내리는 것 같다고 ‘골든레인 트리’(Goldenrain tree)라고 부른다.


 

모감주나무 열매. 꽈리를 닮았다.

모감주나무 열매. 꽈리를 닮았다.


근심을 없애주는 검은 구슬

 

서양에서 모감주나무의 황금빛 꽃비에 열광했다면 동양은 그 나무에서 번뇌를 깨뜨리는 지혜의 구슬을 얻는다. 작고 단단하고 동글동글한 모감주나무 씨앗으로 사찰에서는 예로부터 염주를 만들었다. 모감주나무뿐만 아니라 같은 혈통의 무환자나무도 썼다. 그들을 묶어 근심을 없애주는 씨앗을 맺는 나무라는 뜻에서 목환자(木槵子)라고 불렀다. 그 종자가 어떤 외력에도 쉽게 모양이 변하거나 부서지지 않으니 금강자(金剛子)라고도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금강’이야말로 세상의 어떤 번뇌와 망념 속에서도 절대 깨어지지 않는 단단한 지혜 아니던가.

나는 모감주나무 아래에서 주운 씨앗 두 알을 필통에 넣어 다닌다. 아직 염주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그 알맹이를 만지작거리는 행위만으로도 평안을 얻는 순간이 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과 맞설 때 특히 효과를 좀 본다. 내가 마주하는 모든 고통과 분별의 세계는 실재하는 바깥의 그 무엇이 아니라 내 마음이 만든 것이라는 능가경(楞伽經)의 구절을 떠올리면서.

능가사 주변의 모감주나무도 인간에게 일종의 유심(唯心)과도 같은 마음을 가르쳐주려고 그렇게 벼랑에 뿌리를 내린 것일까.

 

글·사진 허태임 식물분류학자·‘숲을 읽는 사람’ 저자

 

*식물학자가 산과 들에서 식물을 통해 보고 듣고 받아 적은 익숙하지만 정작 제대로 몰랐던 우리 식물 이야기. 4주마다 연재.

 

서양에서는 모감주나무를 황금빛 꽃비가 내리는 것 같다고 ‘골든레인 트리’(Goldenrain tree)라고 부른다.

서양에서는 모감주나무를 황금빛 꽃비가 내리는 것 같다고 ‘골든레인 트리’(Goldenrain tree)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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