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고양 편

바람에 비닐이 벗겨진 동무의 텃밭에서 월동용 마늘이 새순을 내밀었다.
텃밭 오르는 뒷길 언덕에서 묘한 격자무늬를 만났다. 알맹이 꺼낸 밤송이의 짙은 갈색이 반쯤 녹은 허연 눈과 어울려 카펫을 이루고 있었다. 얼었다 녹은 겉흙은 푹신함을 더했다. 돌아올 동무를 기다리며 빈 밭이 환영행사라도 준비한 걸까?
흙으로 단단히 마감한 공동경작밭 비닐터널은 무탈했다. 뿌옇게 김이 서린 터널 안에선 양파와 마늘이 기지개하고 있었다. 꼬챙이를 끼워 마감한 동무 밭의 비닐은 바람에 다 벗겨졌다. 가만 보니 뭔가 있다. 앗! 비닐 벗겨진 맨밭에서 새순이 여지없이 고개를 내밀었다. 겨울의 한가운데서 곧 봄이 올 것을 안다.
2026년 1월24일 낮 주말농장 총회가 열렸다. 경기도 고양시 단골 고깃집에서 동무 다섯이 모였다. 솥뚜껑 한가운데 간판메뉴 오겹살을 올렸다. 배추김치, 콩나물무침, 파무침, 편마늘 등 조연은 주변에 배치했다. 2025년 11월 말 김장농사를 마무리하고 두 달 남짓 만에 처음 모인 자리다. 안부를 나누는 데만 술이 몇 순배 돌았다.
큰형이 직접 담근 고추장아찌를 데려왔다. 지난해 고추는 2년 연속 실했다. 일반고추, 청양고추, 아삭이고추, 꽈리고추 등 나름 안배해 심었는데 소용없었다. 일찌감치 지독히 더워 초여름부터 죄다 매워졌다. 어느 주말 막내가 “물 만 밥에 찍어 먹어야겠다”며 수확한 고추를 딱 한 주먹 들고 갔다. 일주일 뒤 만난 막내는 “6~7타수 1안타”라며 혀를 내둘렀다. 예닐곱 개 매우면 한 개쯤 덜 매웠단 얘기다.
장아찌를 담는갔데도 맵기는 쉽게 빠지지 않았다. 호기롭게 한입 크게 베어 문 밭장이 맨밥을 찾는다. 장아찌는 집마다 조리법이 다르다. 밭장이 전수한 조리법은 물·설탕·식초·간장이 모두 같은 비율이다. 큰형네는 설탕을 절반만 넣는단다. 장아찌용 고추는 포크로 한두 군데 미리 구멍을 내준다. 혼합한 절임장은 끓여서 뜨거울 때 고추에 붓는다. 아삭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밭장 조리법은 여기서 끝인데, 큰형네는 처음 부은 절임장이 식으면 다시 끓여 식혀서 한 번 더 부어준단다. 식감이 살아 있으면서도 장이 깊게 스며들어 잘 익었다. 아직 많이 남았다니, 내년 봄 밭일 마친 텃밭 평상에 둘러앉아 새참 먹을 때도 맛볼 수 있을 것 같다. 텃밭 식구들 밥 자리는 돌고 돌아 결국 농사 얘기로 모인다. 지난 농사 품평은 언제나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다. “흙이 갈수록 좋아진다”는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도 빠질 수 없다.
텃밭 ‘기세 대마왕’이던 작두콩을 초토화한 만차랑단호박은 언덕밭에 옮기기로 했다. 작두콩도 이겼으니 한여름 텃밭 곳곳으로 줄기를 뻗는 칡의 근거지에서 한판 승부를 벌여도 괜찮을 듯해서다. 부들부들한 애호박도 따로 한 고랑 심기로 했다. 지난해 새로 만든 응달밭 두 고랑에는 애플민트·스피아민트·페퍼민트 등 줄기로 뻗는 허브류, 포기로 자라는 로즈메리와 라벤더를 몇 개씩 내기로 했다.
고추·오이·토마토·가지 등 열매채소는 서너 해 연작했으니 밭갈이(돌려심기)를 해주면 어떨까 싶다. 역시 연작 중인 잎채소류나 땅속에서 자라는 고구마·감자 따위와 위치를 바꿔주면 될 것 같다. 밭장은 텃밭 생활 초기에 내다 만 참외와 수박 농사에 다시 도전하겠단다. 설익은 참외를 옷에 쓱쓱 닦아 한입 베어 물면 쌉쌀 풋풋한 단내가 난다. 하, 초여름까지 어찌 기다릴꼬.
글·사진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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