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6월 초순 경기 중부지역 남의 집 텃밭에 대파꽃이 만발해 있다.
12도2촌(2주에 한 번씩 가서 12일은 도시, 2일은 농촌 생활을 하고 있다) 농부로서, 외주로 밭을 갈고 비료를 뿌려야 하는 처지라 일정이 안 맞아 징징거렸던 게 어언 한 달 전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아귀가 딱딱 맞아 날씨도 도와주고 사람도 도와줘서 비료도 제때 뿌리고 밭도 제때 갈았다. 농사 구력 5년차, 이젠 슬슬 생각대로 돌아가는 건가?
4주 전 옥수수 씨앗을 심었다. 남편과 나는 각자 파종기를 하나씩 들고 허리춤에 씨앗을 차고 한 번에 두 알씩 차곡차곡 이랑을 채웠다. 씨앗 냄새가 나는지, 사람이 심는 걸 보고 눈치챈 건지, 새들이 낮게 날다가 고랑을 걸어 다니며 뭔가 집어 먹는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새들이 씨앗을 다 파먹을까 염려했지만, 옥수수는 넘치게 달렸다. 아랫집 어르신이 그러셨다. “심은 거에 한 팔십 프로만 거둔다 생각하면 편해. 쟈들도 먹고살아야지.”
지난주 밭에 가보니 옥수수가 한 뼘쯤 자랐더라. 작년에 만들어둔 틀밭에 거름을 한 포씩 섞고, 채소 모종을 심고 나니 벌써 농한기가 찾아왔다. 2주에 한 번꼴로 가서 풀 매주고, 상추 솎아 먹으면 옥수수 익을 때까지 그늘 아래서 유유자적 놀아도 된다.
우리 밭이 멀리 있으니 요즘은 남의 밭 구경 다니는 재미를 들였다. 얼마 전 경기도 ㄱ시로 이사했다. 막개발로 이름난 동네답게 아파트와 빌라, 오래된 주택, 물류창고, 공장, 택배회사, 감성 카페, 식당, 반려동물 장례업체, 거대한 공동묘지까지 골고루 체계 없이 두루 섞여 있다. 대형트럭이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다니는 길가엔 야트막한 산들이 이어져 있고, 사이사이 나오는 공터마다 아기자기 텃밭들이 들어섰다. 역시 농자천하지대본. 한 뼘 땅만 있어도 뭐라도 심고 가꾸는 우리는 농본주의(였던) 나라의 백성이다.
6월 초 현재, 경기 중부지역의 텃밭 상황은 이렇다. 옥수수는 허리춤까지 자랐다. 감자는 꽃이 피었다. 완두콩은 제법 꼬투리를 주렁주렁 달고 있다. 호박 덩굴은 1.6m 남짓한 내 키를 넘어 올라갔다. 열매는 아직이다. 마늘은 잎이 노랗게 시드는 걸 보니 땅속에선 작물이 거의 여물었나보다. 대파는 퍼렇다 못해 시커멓게 자라 주먹만 한 꽃을 주렁주렁 달고 있다. 상추, 치커리, 오크 같은 푸성귀는 아래쪽 잎은 꽤 따 먹었는지 웃자란 대궁이 휑하다. 씨앗으로 뿌린 밭엔 미처 솎아 먹지 못해 빽빽하게 들어찬 잎들이 양분이 모자라 날씬하게 웃자라 있다. 야들야들하니 참 맛있겠다 싶다.
텃밭을 보면 비슷비슷해 보여도 주인의 취향이 조금씩 드러나 재밌다. 검은 비닐 씌우고 채소를 심은 한쪽 귀퉁이에 작약 한 포기 심어 꽃을 보는 집도 있고, 고구마, 옥수수, 감자 구황작물 위주로 심은 집도 있다. 어느 집은 담장 대신 나무로 경계를 지어놓았는데, 가만 보니 복분자, 호두나무, 앵두나무, 살구나무, 감나무, 대추나무 모두 유실수다. 먹을 수 있는 열매가 열리는 담장이라니. 이보다 유용할 수가!
남의 집 텃밭 구경을 하다보면 우리 밭 상황이 궁금해진다. 시시티브이(CCTV)라도 달아야 하나. 지난주 비실비실하던 애호박은 살았을까 말랐을까. 이번에 가면 이장님이 주신다던 애플수박 모종을 얻어 심어야지. 유튜브 보고 토마토 순치기 공부했는데, 순을 칠 만큼 자랐을까? 살구랑 앵두는 좀 익었을까? 돌아오는 주말, 2주 만의 2촌을 기다리며 오늘도 텃밭 산책을 나선다.
글·사진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
*농사꾼들: 농사를 크게 작게 지으면서 생기는 일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지역이 다른 네 명의 필자가 돌아가며 매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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