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병아리, 챗GPT에 물어가며 휴가 전 부화해야 한다

[전남 곡성] 알 품은 닭 ‘참이’, 휴가 가기 전에 얼른 부화해야 하는데… 챗GPT에 묻기까지
등록 2023-09-22 12:43 수정 2023-09-26 04:09
어미 품속에 안긴 병아리. 어미가 움직일 때마다 병아리는 종종종 따라다녔다.

어미 품속에 안긴 병아리. 어미가 움직일 때마다 병아리는 종종종 따라다녔다.

닭이 알을 품었다. 포란(抱卵)이라 한다. 원래 우리가 키우는 닭은 포란을 못한다고 생각했다.(개량한 닭 중에 포란을 못하는 종도 있다고 한다.) 매일 알 낳을 줄만 알지 포란을 못하니, 따로 인공부화기를 구매해 알을 부화시켜보려 하던 차였다. 알을 품은 닭은 ‘참이’라는 친구다. ‘쑥이’라는 암탉의 알과 참이의 알이 11개가 모이니 알을 품기 시작했다. 자기 자식, 남의 자식 구분도 없이.

알을 품고 병아리가 태어나기까지 총 21일의 시간이 걸린다. 참이는 잠깐의 밥 먹는 시간, 흙목욕을 즐기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21일 온종일을 알을 품는 데 시간을 쏟았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알을 품으려 할 때 참이는 부리를 이용해 알들을 자신의 배 아래로 밀어 넣었다. 혹시나 품지 못하는 알이 있을까 온몸을 최대한 넓게 펼쳤다. 11개의 알이 참이의 몸 밑에 골고루 깔렸다. 다리는 저리지 않았을까. 어디가 불편하진 않았을까. 21일을 올곧이 이겨냈다.

계산해보니, 21일 뒤 딱 휴가 날짜와 겹친다. 맙소사. 휴가 가기 5일 전, 작전을 시작했다. 우선, 참이는 꽤 높은 곳에서 알을 품고 있었다. 이대로 부화한다면 병아리가 저 위에서 떨어질 것이다. 위험했다. 안 쓰는 서랍장을 개조해서 낮은 곳에 병아리 집을 마련했다. 문제는 참이와 알을 안전하게 옮기는 일이다. 참이를 살짝 들어 올리고 알을 옮겼다. 참이는 나를 쪼고 발로 할퀴면서 알을 내놓으라고 공격했다. 알을 다른 곳에 갖다놨지만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품던 장소만 계속 바라보며 울었다. 실패다. 어쩌지. 챗지피티(GPT)에 물어봤다. 이런 경우는 많으며 닭이 잠에 곯아떨어진 밤을 이용하라는 것. 그렇게 하니 놀랍게도 참이는 다음날 약간 방황하고 다시 새로운 곳에서 알을 품었다. 고양이가 주변에 많았기에 닭장 주변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야 했다. 자칫 잘못하다간 병아리들이 고양이 밥이 될 수도 있다. 파고 들어갈 곳이 없도록 닭장 주변을 돌로 막았다. 처음으로 시시티브이(CCTV)란 것을 사서 설치했다. 휴가 간 동안 무슨 일이 생길까 싶어서.

다행히 떠나기 전날 병아리가 탄생했다. 삐악삐악삐악. 병아리 네 마리가 부화했다.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몽실몽실 뽀얀 털을 가졌다. 휴가를 떠나고, CCTV를 통해 두 마리가 더 태어났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슬프게도 한 마리는 죽었다. 예정일보다 3일 지나 뒤늦게 태어난 병아리도 한 마리 있다. 모두 여섯 마리다.

병아리들은 잘 때도, 움직일 때도, 밥 먹을 때도, 어미 품을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수시로 어미 품을 파고들었다. 참이는 날개를 살짝 펴서 그 사이에 병아리들이 들어가게 했고, 땅에 닿을락 말락 앉아서 병아리들이 배 아래로 들어오도록 했다. 한 병아리는 자꾸 어미 등에 올라탔다. 벌써 높은 곳을 좋아하는 본능이 나타나는 걸까. 참이는 먹을 것을 바닥에 놔주면서 ‘이건 먹는 거란다’라고 가르치는 것 같다. 어미가 땅을 훑으면 병아리들이 그것을 따라 한다. 어미 뒤를 병아리는 종종종 따라다녔다. 얼마나 귀엽던지. 모든 생명의 새끼는 참 귀엽다.

3년 전 경남 밀양에 막 귀농했을 때 병아리 세 마리를 처음 받았다. 한창 추울 때 받아서 병아리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집에서 따뜻하게 해줄 수 있는 거라곤 매번 주전자를 뜨겁게 덥혀 수건에 감싸주는 일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젠 어미 닭이 있으니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식지도 않는 40도의 체온, 보드라운 깃털이 있는 어미 닭의 품보다 따뜻한 곳이 또 있을까.

글·사진 박기완 토종씨드림 활동가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