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인 ‘꿀벌 실종’ 보도가 이어지고 올해 우리 밭에도 꿀벌이 찾아오지 않았다. 4월까지 벌이 보이지 않을 때는 단순히 ‘이상하다’는 생각뿐이었는데 5월부터는 불안해졌다. 아까시꽃이 만발했는데 꿀벌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밭 주변으로 아까시나무가 제법 많이 자라고 있는데 그동안 아까시꽃이 만개할 때마다 짙은 꽃향기와 벌의 “붕붕” 날갯짓 소리를 듣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꿀벌이 한 마리도 없는 아까시꽃 철은 이 밭을 쓰는 5년 동안 처음이었다.
꿀벌이 사라진 자리에는 말벌이 들어왔다. 예전에는 스쳐가는 행인이나 다름없던 말벌이 왜 떠나지 않고 밭에 머무를까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창고 지붕에 걸어둔 새집에 집을 짓고 있었다. 그 새집은 남편이 “귀여운데다 벌레도 많이 잡아먹는 박새를 꼭 모시고 싶다”며 새집 만들기 워크숍에 참가해 만들어둔 거였는데, 황당하게도 우리가 새 대신 받은 건 말벌이었다. 다행히 집 크기가 작아 손으로 떼어낼 수 있었지만 문제는 그다음에도 말벌이 여전히 많이 머무른다는 거다.
말벌은 우리 밭에 건축허가권이라도 갖고 있다는 듯이 굴었다. 한번은 모종을 키우는 작은 온실에 집을 지은 줄도 모르고 손을 넣어 도구를 꺼내다 집을 짓다 놀란 벌 몇 마리와 대치했고, 급기야 지난달에는 예초기를 돌린 뒤 성난 말벌 한 마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손가락을 쏘고는 끝까지 쫓아와 위협했다. 역시나 주변에 또(!) 집을 짓고 있었다. 손가락에는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타들어가는 통증이 느껴졌다. 처음 느껴보는 통증과 끝까지 쫓아와 위협하던 녀석의 기세에 눌려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때부터 남편은 ‘내 아내의 원수’를 갚겠다며 복수의 칼날을 갈기 시작했다. 온종일 말벌에 관해 열심히 검색하더니 다음날부터 밭에는 양봉 모자와 말벌 트랩, 스프레이 접착제 같은 도구가 하나씩 늘어났다. 모든 도구가 갖춰지자 양봉 모자와 두꺼운 코팅장갑으로 무장한 남편은 스프레이 접착제를 말벌과 벌집에 사정없이 난사했다. 접착제를 맞은 말벌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땅으로 떨어졌고, 벌집은 봉인됐다. 돌아갈 집이 사라진 말벌은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했다.
알고 보니 녀석은 말벌로 부르는 벌 중에서 비교적 순하다고(?) 알려진 쌍살벌이었고, 우리에게 말벌을 내쫓을 자격이 있을까 하는 죄책감에 마음이 복잡했지만, 독침에 쏘여보니 우리는 공존할 수 없음을 느꼈다. 벌에 쏘이고 이튿날 손의 절반이 부어올라 여러 번 쏘였으면 정말 위험했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얼마 전 근거지를 농촌으로 옮겨 농사와 함께 적정기술을 연구하는 ‘대안에너지기술연구소’ 강신호 소장도 소셜미디어에 말벌에 쏘인 경험을 적으며 “사람의 안전과 생태계와의 공존을 위해 벌집을 없애고 건축허가권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단호히 말했다. 우리처럼 밭에서 말벌이 떠나지 않고 머무른다면 벌집이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벌이 있는 곳과 천막으로 덮어둔 곳을 점검하고 즉시 제거해야 한다는 조언과 함께. 인간은 이렇게 독기를 잔뜩 품었는데 안타깝게도 벌은 여전히 우리 밭에서 집터를 살피는 중인가보다.
글·사진 이아롬 프리랜서 기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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