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중순, 가깝게 지내는 도시농부나 다양한 작물을 심는 소규모 농가의 농민에게 연락이 온다면 용건은 대부분 ‘모종’이다. 토종오이나 참외 모종을 냈는지, 혹시 모종이 남는다면 나눠줄 수 있는지, 올해는 어떤 특별한 작물을 파종했는지, 어떤 모종은 시기가 조금 늦은 것 같은데 지금 심어도 괜찮을지 같은 질문을 주고받는다.
그중 가장 설레는 질문은 바로 ‘밭에 남는 자리가 있는지’다. 모종이 남았으니 가까운 시일 내에 만날 수 있다면 나눠주겠다는 뜻이다. 5월부터는 본격적으로 매일 밭으로 나가 작물을 돌봐야 하지만 모종을 나눠준다는 말에는 기꺼이 없는 시간까지 만들어 서로의 밭으로 찾아간다. 도시농부나 도시정원사, 소규모 농가에는 종묘상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는 특별한 작물이 많이 있으니까. 게다가 모종 심는 시기를 훌쩍 지나버리면 제대로 크지 못하거나 원래보다 짧은 생을 살다 가버린다.
나도 자리를 내주지 못한 토마토와 허브는 누구에게 보낼까 고심하고 있다. 주변 도시농부들의 손에서 손으로 이어온 에얼룸(heirloom, ‘가보’라는 뜻으로 대대로 내려오는 재래종 씨앗을 뜻한다) 토마토는 누가 가장 맛있게 먹어줄 수 있을까, 어떤 허브 종류는 잡초처럼 번져 나중에는 뽑아내기 바쁜데, 이 허브는 누구네 밭으로 가야 필요한 작물일까. 땅을 돌보는 이들의 밭을 떠올리며 내가 키운 모종의 적재적소를 고민하게 된다.
마침 며칠 전에는 경기도 양평에서 농사짓는 친구가 얼마 전 부추를 캐고 남은 뿌리를 따로 심어두었는데 혹시 필요한지 물어 ‘비밤’ 모종을 들고 찾아가 교환했다. 벌을 불러들이는 밀원수이자 민트과 허브인 비밤은 종류가 매우 많은데, 올해는 절화로 써도 손색없는 인디고핑크빛이 감도는 ‘얼룩무늬’(Spotted) 품종을 파종했다. 풀을 곁에 두며 쓰임을 찾는 것을 좋아하는 그들의 밭이라면 딱 좋겠다 싶어 모종을 따로 남겨뒀다.
이 시기 꼭 가봐야 할 곳은 원예계의 얼리어답터인 충남 논산의 ‘꽃비원’이다. 농민이 되기 전 플로리스트로 일했던 꽃비원의 오남도 농민은 ‘꽃비가 내리는 과수정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예쁜 화훼도 골고루 키운다. 정원사 사이에서 ‘자연주의 정원’ 열풍으로 유명해진 ‘에린지움’ 꽃도 나는 비싼 모종을 사다 심었는데 그는 지난해에 직접 채종한 씨앗으로 나눠주기도 했고, 몇 해 전 ‘라일락버베나’ 모종을 선물해준 사람도 바로 그다. 아는 농민 중 가장 심미안을 가진 그가 고르는 꽃 품종은 한두 해가 지나면 정원 애호가 사이에서 반드시 유행해 올해는 어떤 모종을 내는지 궁금해진다. 그와 교환할 꽃 모종도 따로 빼놓고 만날 약속을 정해뒀다.
아직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토마티요’ 모종은 누구에게 주면 좋을까? 지난달 농부시장 ‘마르쉐@’에서 밭에 남는 자리가 있으면 키워서 먹어보라며 내 손에 미나리와 루콜라 모종을 들려준 ‘초록손가락’의 안성선 도시농부에게 주면 좋겠다. 내 밭에는 열 포기만 필요해도 모종은 서른 포기도 넘게 파종하는 이유다.
글·사진 이아롬 프리랜서 기자*농사꾼들: 농사를 크게 작게 지으면서 생기는 일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지역이 다른 네 명의 필자가 돌아가며 매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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