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버이날을 맞아 부모님 댁으로 향한다. 대중교통이 거의 다니지 않는 마을에 살고 계신 부모님을 뵈러 가기 위해 운전대를 잡았다.
운전하고 보니 도로는 문명사회에서 직접적 생명의 위협을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다. 약육강식 아스팔트 생태계 위에서 오래된 경차를 몰고 있으면 무리하게 끼어들고 위험하게 추월하는 차를 자주 만난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이상한 운전자는 보통 나이 든 여성 운전자다. 그들이 다수거나 유달리 위험한 것도 아닌데, 운전자를 확인했을 때 나이 든 여성이면 ‘김여사’라는 단어가 자동으로 떠올라 각인된다. 내가 그 단어를 싫어하는지 좋아하는지, 실제 그 단어가 유효하게 사용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단어를 안다는 사실만으로 내 뇌는 나이 든 여성 운전자와 마주하는 사건을 더 특별하게 기억한다. 시인 김춘수의 시 ‘꽃’에서처럼,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으나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 아니, 김여사가 된다.
이와 달리 험하게 운전하는 남성 운전자에겐 불러줄 이름이 없다. ‘난폭운전자’나 ‘보복운전자’는 성별, 나이 등이 드러나지 않기에 행위 주체가 되는 개인의 특성이 주목받지 않는다. 같은 잘못을 해도 남성 운전자는 익명이라는 방패를 가진다.
소수에게 나쁜 이름 짓기가 얼마나 쉬운지, 얼마 전 ‘극단적 채식이 건강을 망친다’는 내용의 기사를 읽으면서도 느꼈다. 채식의 건강적 이점을 말하면서도 영양균형을 고려하지 않으면 뼈 건강을 해치고 탈모, 피로감 등을 느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극단적 채식’이란 말을 ‘극단적 식단’으로, ‘극단적 육식’으로 바꿔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 영양균형을 고려하지 않는 식단은 당연히 건강에 해롭다. 닭가슴살을 매일 먹는 진짜 극단적 육식 식단이 건강식처럼 대중화된 한국 사회에서, 소수의 채식주의자를 저격하듯 ‘극단적 채식’이라고 자극적인 이름을 붙이는 일이 옳은지, 그저 다수의 호응을 끌어내기 좋은 편한 길을 택하는 것은 아닌지, 새로운 언어는 새로운 존재를 만드는 만큼 신중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건강 정보라는 명분은 좋지만 급격히 늘어난 육류 소비량으로 개인의 건강뿐 아니라 윤리적·환경적 부작용을 앓는 지금, 성인병에 걸리고 만성피로에 시달리며 탈모로 고민하는 사람 중 채식인이 얼마나 될까.
차를 세우고 보조석에 있는 묵직한 가방을 내린다. 콩과 곤약으로 만든 식물성 새우, 스파게티, 올리브유가 들어 있다. 가족에게 직접 저녁 식사를 차려주고 싶어서 챙겨왔다. 익숙지 않은 엄마의 부엌에서 스파게티를 삶고 올리브유에 마늘과 고춧가루를 잔뜩 넣어 기름을 낸다. 해동한 비건 새우와 면을 넣고 소금으로 간을 맞추면 훌륭한 ‘비건 감바스 오일 파스타’가 된다. 두 개의 큰 접시에 나눠 담고 말린 허브도 뿌렸다. 아빠, 엄마, 나, 동생 둘, 총 다섯 명이 먹기 부족할까봐 올리브 치아바타도 데웠다. 폭신한 치아바타를 매콤한 오일에 찍어 먹으면 아주 맛있다. 남동생은 새우 모양의 재료가 꽤 그럴싸하다며 신기해했다. 정작 이름으로 부르는 일은 거의 없지만, 내게 가장 소중한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새우 없는 새우파스타를 남김없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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