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8일 오후 광주광역시 서구 덕흥보 둔치에 갔더니 ‘취수구’가 보였다. 표지석엔 ‘광주광역시 하천유지 용수’라고 적혀 있었다. 영산강 물을 상수원수로 취수할 수 있는 시설이다. 취수구 아래에 오염 차단용 펜스가 쳐져 있지만 수질은 탁해 보였다. 전남 담양 용추봉에서 발원한 영산강은 덕흥보를 지나 광주천과 황룡강 등의 지류를 만난다. 임동주 광주시상수도사업본부 물운용총괄과장은 1월6일 “영산강 물을 상수원수로 사용하기 위한 공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덕흥보 영산강 물 취수 공사는 50년 만에 광주에 닥친 가뭄을 상징한다. 광주시는 그간 전남 화순 동복댐과 순천 승주의 주암댐에서 하루 평균 50만t의 물을 관로로 끌어와 식수를 공급했다. 하지만 1월6일 동복댐의 저수율은 24.78%, 주암댐 저수율도 28.37%로 30% 이하로 떨어져 1994년 이후 29년 만에 제한급수 상황이 올 수 있다. 광주시상수도사업본부 쪽은 “2022년 12월 다섯 번째 주엔 물 사용량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4% 줄이는 데 그쳤는데, 20% 수준까지 줄여야 3월 제한급수를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광주의 가뭄은 심각한 상황이다. 2022년 광주·전남 지역은 1973년 기상관측망이 확충된 이래 역대 세 번째로 누적 강수량이 낮았다. 광주지방기상청 집계를 보면, 2022년 광주·전남 7개 지역 누적 강수량은 854.5㎜로 평년 대비 60.9% 수준에 불과했다. 이지은 광주지방기상청 기후서비스과 주무관은 “2021년 겨울철 광주·전남 강수량이 9.2㎜로 평년 대비 8.7%에 그쳐 그때부터 가뭄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광주시상수도사업본부는 비가 내리지 않으면 2023년 5월14일께 동복댐이 고갈될 것으로 우려했다.
광주시는 제한급수를 막기 위해 물 사용량 줄이기 등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35억원을 들여 덕흥보에서 영산강 물을 취수해 20㎞ 밖 용연정수장으로 공급하기 위해 관로를 연결하고 가압장을 설치하는 등의 공사는 4~5월께 끝난다. 광주시상수도사업본부가 조사한 영산강 수계 수질 현황을 보면, 2020년 1월부터 2022년 11월까지 광주 광신대교의 생화학적산소요구량(BOD) 평균은 3.4ppm으로 3급수 수준이어서 고도 정수처리를 하면 문제없는 수준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식수난 극복을 위한 고육지책도 나오고 있다. 광주시는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동복댐 취수탑 밑바닥에 고인 사수(死水) 350만t을 비상 공급하는 공사(31억원)를 추진하기 위해 타당성 조사와 실시설계 중이다. 동복댐 주변에 지하 관정 65개를 개발하는 방안(36억원)도 검토하고 있다. 이 사업들이 계획대로 추진되더라도 수원 확보는 하루 2만~5만t에 그친다.
이 때문에 광주시의 근시안적인 물관리 정책이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광주시는 2022년 9월 환경단체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감사원의 폐쇄 처분을 근거로 청풍동 일대 무등산 제4수원지 상수원보호구역을 해제했다. 당시 광주시상수도사업본부 쪽은 “동복댐, 주암댐에서 받는 50만t 물만으로도 충분하다”며 반대 의견을 일축했다. 이성기 조선대 교수(환경공학과)는 “하루 2만t 공급이 가능했던 제4수원지는 물 활용의 어려움에 부닥칠 수 있는 상황을 고려해 비상수원으로 남겨놓았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더 큰 문제는 광주의 가뭄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상 전문가들은 “기후변화에 따른 비상상황이어서 남부지방에 가뭄이 잦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기상기구 태스크포스(TF) 팀장,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국가 수석대표를 지낸 윤원태 국제기후환경센터 대표는 “3년째 라니냐(열대 동태평양 수온이 낮아지는 현상)가 지속하면서 북서태평양에 따뜻한 해수가 몰리는 한국, 일본, 중국 남부 해안 등지에 이상기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한반도 남부·해상에 고기압이 자주 발생해 비가 내리지 않고, 서울 등 중부에선 고기압과 북쪽의 저기압이 만나면서 비를 쏟아붓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전남 지역 가뭄은 2023년 3월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세계기상기구로부터 인정받은 13개 모델의 자료를 모아 기상 상황 예측 모델을 개발한 윤 대표는 “2023년 1~3월 강수확률 예측 그래프를 분석한 결과, 한국 주변은 평년보다 비가 적을 확률이 40~60% 정도다. 광주·전남엔 3월까지 가뭄이 지속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기후위기와 가뭄, 식수난으로 이어지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윤원태 대표는 “남부에 장기간 비가 내리지 않아 취수조차 힘든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며 “광주시와 전남도가 5천억원 정도를 투자해 해수 담수화 시설을 갖춰 10만t 정도의 물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도 1월5일 전남 광양시 포스코 광양제철소를 방문해 하루 약 2만7천t의 바닷물을 공업용수로 공급하는 해수 담수화 시설 현황을 살폈다.
장기적으로 물순환 도시를 조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광주시는 2016년 환경부의 물순환 선도 도시 조성 시범사업지로 선정된 뒤, 서구 상무지구 일대(2.1㎢)에 빗물 침투 시설을 설치해 불투수 면적을 91%에서 59%로 낮추는 것 등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2020년 1월 광역시 가운데 처음으로 설치했던 물순환 전담 부서가 2022년 조직개편 때 사라져 아쉬움을 줬다. 박미경 광주환경운동연합 대표는 “기후변화 영향으로 나타날 수 있는 가뭄과 홍수 등에 대비하려면 주택과 아파트, 공공시설 등에 빗물 활용 시설을 늘리는 등 물순환 도시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2022년 12월27일 시청 브리핑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시민들의 절수 운동에만 기대지 않고 물순환 체계로 가는 종합적인 대책을 만들어 가뭄 상황을 근본적인 기후위기 행동 마련의 기회로 바꿔보겠다”고 약속했다.
광주=정대하 <한겨레>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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