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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일째 세종보에서 금강 지키는 ‘바보들’

4대강 16개 보의 마지막 희망…환경부는 14개 댐을 새로 짓겠다고 발표
등록 2024-09-07 09:21 수정 2024-09-11 07:51
2024년 8월29일 세종시 한두리교 아래 금강변 천막농성장에서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맨 오른쪽), 박은영 대전충남녹색연합 사무처장(가운데), 임도훈 ‘보 철거를 위한 금강·낙동강·영산강 시민행동’ 상황실장이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다. 최예린 한겨레 기자

2024년 8월29일 세종시 한두리교 아래 금강변 천막농성장에서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맨 오른쪽), 박은영 대전충남녹색연합 사무처장(가운데), 임도훈 ‘보 철거를 위한 금강·낙동강·영산강 시민행동’ 상황실장이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다. 최예린 한겨레 기자


금강에도 가을이 왔습니다. 행정수도 세종을 가로지르는 금강은 아직 힘차게 흐릅니다. 환경단체가 세종보 근처 금강변에 천막을 친 지도 벌써 130일이 넘었습니다. 올여름 유난했던 장마와 폭염에도 천막농성장은, 금강 곁에서 안녕합니다.(▶관련기사: [현장] 금강 세종보 농성장 찾아든 새끼 박새…정부는 ‘재가동’ 엄포)

지독한 장마와 폭염에도 계속된 천막농성

2024년 8월29일 세종 한두리교 아래에선 ‘슬기로운 천막생활’ 유튜브 라이브가 한창이었습니다. 이 방송의 프로듀서 격인 오마이뉴스 김병기 기자의 큐 사인이 떨어지자 천막지킴이 3인방인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과 박은영 대전충남녹색연합 사무처장, 임도훈 ‘보 철거를 위한 금강·낙동강·영산강 시민행동’(보철거시민행동) 상황실장이 제법 자연스러운 ‘티키타카’로 수다를 떨었습니다.

“4대강에 설치된 16개 보 중 지금 세종보와 공주보 2개만 열려 있는데요. 최근 환경단체가 조사해보니 보로 막힌 14개 보 구간은 모두 녹조가 심각한 상태였고, 개방된 세종보·공주보 구간의 녹조 상태만 그나마 나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고인 물과 흐르는 물의 차이죠!”

정부는 재가동을 위한 세종보 수리 작업을 끝마쳤습니다. 보철거시민행동과 한국환경회의가 세종보 상류 800m 지점 다리 아래에서 무기한 농성을 시작한 건 4월29일입니다. 가을을 앞두고 천막지킴이 셋은 “여기서 맞는 세 번째 계절”이라며 웃었습니다. 여름의 끝 무렵 천막에서 박은영 처장은 친정 엄마의 부고를 들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박은영이 강가에 앉아 꺼이꺼이 울었다”고 들었습니다. ‘환경단체가 강가에서 캠핑을 하며 몽니를 부린다’는 식의 억울한 말을 들었을 때도 차분했던 그였습니다. 그렇게 엄마를 보내고 강으로 돌아온 첫날, 박 처장은 카메라 앞에 앉아 다시 ‘바보’처럼 웃고 있었습니다.

2024년 8월 세종보 천막농성장 모습. 장마와 폭염에도 130일 가까이 이곳을 지키고 있다. 최예린 한겨레 기자

2024년 8월 세종보 천막농성장 모습. 장마와 폭염에도 130일 가까이 이곳을 지키고 있다. 최예린 한겨레 기자


이들이 버티는 사이 정부는 ‘보 재가동’도 모자라 전국 14곳에 댐을 만들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정부가 댐 건설 이유로 내세운 건 또 ‘기후위기 대응’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4대강에 보를 만든다며 들이댄 이유도 같았죠. 임 실장이 서슬 퍼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인공구조물로 막힌 강이 얼마나 빨리, 심각하게 망가지는지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보 개방 뒤 강이 흐르면 느리더라도 다시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도 봤죠. 세종보가 재가동돼 금강 모래톱이 물 밑으로 사라지면, 우리 강의 희망도 다시 가라앉는 것입니다.”

환경부와 환경단체의 소통 창구가 끊어진 지는 오래입니다. 박·이 처장은 2023년 11월 세종보에 온 한화진 전 환경부 장관에게 입장문을 전달하려다 경찰 수사를 받기도 했죠. 법원은 약식명령으로 이들에게 각각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방송 뒤 강가에 마주 앉은 박 처장이 말했습니다.

만남도 통화도 거부하는 환경부 공무원들

“저희가 보 담수 문제에 대한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 매일 환경부 담당 부서에 전화해도 안 받고, 실무자 면담도 거절하더라고요. 어떻게라도 의견서를 전달하기 위해 세종보에 찾아가니 집시법 위반이래요. 정말 우리는 여기 천막으로 내몰린 거예요. 어떻게 되살아난 금강인데, 우리는 꼭 이 강을 지켜낼 거예요. 그래야만 해요.”

세종=최예린 한겨레 기자 floy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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