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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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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의 가치를 사는 소비자가 필요하다”

한살림의 ‘살아 있는 역사’ 윤형근 전무이사 인터뷰
“8년째 4.9%인 친환경 농업 확대하려면 정부의 계획과 의지가 뒷받침돼야”
등록 2022-12-31 02:56 수정 2023-01-03 10:26
사진=류우종 기자

사진=류우종 기자

기후위기의 시대에 지구를 위해, 또 사람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하나.

“먹는 것은 살아가는 동력, 생명력을 얻는 것이다. 생명력이 충만한 먹거리를 먹어야 한다.” 윤형근(59·사진) 한살림 전무이사의 답이다. 한살림의 역사는 한국 유기농업의 역사이기도 하고 한국 생활협동조합(생협)의 역사이기도 하다. 한살림은 1986년 12월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서 시작한 한살림농산, 1987년 시작한 한살림연구모임이 양대 뿌리다. 기후위기 시대에 한살림이 추구하는 유기농은 하나의 돌파구이고 한살림의 역할도 그만큼 중요해졌다. 한살림이 기후위기 시대를 어떻게 헤쳐나가려는지 그 고민과 계획을 들어봤다. 2022년 12월1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살림연합회 사무실에서 윤 전무를 만났다. 윤 전무는 1987년 연구모임 시절부터 참여한, 한살림의 살아 있는 역사다.

현재 기후위기가 큰 화두다. 친환경 유기농이란 무엇인가?

“친환경 유기농은 농사 기술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세계관이다. 김영원 초대 생산자협의회장은 ‘유기농은 관계 회복의 철학이다’라고 말했다. 생태계가 가진 물질 순환, 관계, 다양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여기서 생명력 있는 먹거리가 나온다. 무위당 장일순이나 김지하, 김종철 선생은 이 세 가지에 자연의 영성(영혼성)을 더했다. 그것이 인간과 자연을 지키는 길이다. 농사지을 때 비료나 농약을 쓰고 안 쓰고가 아니라 땅과 흙을 살릴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그것이 ‘한살림’(큰 살림)이다.”

어떤 농사를 지어야 하나?

“첫째, 전세계적으로 기업농이 먹거리를 30% 생산하는데 경작지의 70%를 쓴다. 품종도 제한적이다. 반면 소농은 70% 생산하고 경작지의 30%만 쓴다. 품종도 훨씬 다양하다. 소농이 많아져야 한다. 둘째, 지금 관행농업(화학비료와 농약을 쓰는 농업)은 땅에 질소, 인산, 칼륨을 쏟아부어서 작물을 키운다. 유기농은 작물 생산으로 유기질 비료를 만들고 흙의 건강을 살리는 것이다. 논농사해서 나온 볏짚을 소에게 먹이고 그 소의 똥을 다시 논에서 거름으로 쓰는 순환농업 같은 것이다. 셋째, 아르헨티나에서 소고기를 생산해 한국으로 가져오려면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한다. 사람이 먹는 곳에서 가까운 데서 생산해야 한다. 넷째, 통상 여름에 나오는 작물을 겨울에 생산하려면 에너지가 몇 배 더 든다. 계절에 맞는 농사를 지어야 한다.”

지붕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된 경기도 안성 한살림 물류센터. 상품을 운송할 때 재사용 상자와 바구니를 쓴다. 한살림 제공

지붕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된 경기도 안성 한살림 물류센터. 상품을 운송할 때 재사용 상자와 바구니를 쓴다. 한살림 제공

EU처럼 20%까지 올리는 대전환 필요해

한국의 친환경(유기농+무농약) 경작지 비중은 2001년 0.2%에서 2012년 7.5%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2014년 4.9%로 줄어든 뒤 2021년에도 4.9%로 8년째 제자리걸음이다. 2021년 농림축산식품부는 2025년까지 이것을 10%로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2014년 이후 친환경 농업은 정체 상태다. 어떻게 해야 하나?

“2020년 유럽연합은 2030년까지 유기농 경작지를 25%까지 높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일본도 농약과 비료 사용을 대폭 줄이기로 했다. 한국 정부도 친환경 농업 비중을 늘린다고 계획을 세우는데 제대로 실행을 못했다. 우리도 친환경 경작지를 2030년까지 20% 정도로 높이는 대전환을 해야 한다. 유럽 수준까지는 못 가도 그 아래까지는 가야 한다. 친환경 농업을 확대하려면 정부의 계획과 의지가 뒷받침돼야 한다.”

현장 유기농 농민의 어려움은 뭔가?

“농업 전체가 그렇지만 유기농도 고령화로 농민이 적어진다. 물론 귀농자가 있지만 줄어드는 농민 수만큼 늘어나지 못한다. 유기농은 관행농업보다 사람 손이 훨씬 많이 간다. 그런데 현재는 사람 외에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또 2014년 이후 정체된 생산과 소비도 늘려야 한다. 유기농이 확대되려면 가격이 낮아져야 한다. 그러면 높은 생산비와 낮은 시장가격 사이에 틈이 생긴다. 이 틈을 어떻게 메울지가 문제다. 현재 유기농은 어느 정도 높은 가격이 농사의 어려움을 보상한다.”

농업과 임업, 목축업을 섞는 ‘혼농임업’이나 땅을 갈지 않는 ‘무경운 농법’ 등 더 근본적인 유기농 방식도 제시된다.

“이런 방식은 확실히 유기농에 도움이 된다. 문제는 지불 의사와 능력이 있는 소비자가 있는가다. 농민 입장에선 생산이 어렵고 생산량도 적다. 이런 농축산물에 높은 가격을 치를 소비자가 있어야 이런 농사를 지을 수 있다. 한살림이 종 다양성과 독립성, 개량을 위해 토박이 씨앗을 살려 실험적으로 농사짓는다. 이런 실험적 농사는 유지도 쉽지 않다. 현재 상황에선 혼농임업이나 무경운 농법처럼 근본적으로 가기 어렵다.”

농업과 농촌은 미래 사회의 모델이 될 수 있나?

“현대인의 삶이 힘들어진 원인 중 하나가 자연과 멀어진 것이다. 농촌은 단순한 식량 기지가 아니라 좋은 삶의 모델이다. 한살림은 충남 아산, 충북 괴산, 강원도 홍천 등지에서 그런 공동체를 실험 중이다. 아산이나 괴산 등지에서 복지나 돌봄 사업을 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농촌에서의 다른 활동과 관련해선 생각이 다양하다. 청년 생산자는 농사 외에 카페나 빵, 음료, 관광 사업에도 관심이 많다. 그러나 기존 생산자는 그냥 농사만 지으면 안 되나 하는 경우도 많다. 농사도 중요하고 농민 개인의 삶도 중요하다. 다양한 사람이 참여하는 새로운 농촌공동체를 어떻게 만들지 생각해야 한다.”

낱개 판매, 병 재사용의 딜레마

유기농은 생명과 생태계, 기후위기 등 거대 담론에서 확실히 설득력이 있다. 자연과 사람, 먹거리를 함께 살리는 유기농은 유력한 기후위기 해법이다. 그러나 우리 삶은 더 작고 구체적이다. 윤 전무에게 좀더 미시적인 문제도 물어봤다.

한살림이 우리밀을 되살리는 데 큰일을 해왔다. 현재 10% 미만인 밀(0.7%)이나 옥수수(0.8%), 콩(5.9%) 등의 자급률을 유기농 방식으로도 높일 수 있을까?

“우리밀 가격은 국제 밀 가격과 서너 배 차이 난다. 유기농으로 우리 곡물을 살려서 먹으려면 가격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정부가 국내외 가격 차이를 줄이는 정책을 써야 한다. 민간에선 그 차이를 쉽게 넘어설 수 없다. 또 우리 농산물의 한계를 개선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우리밀 품종은 다양하지 못해 빵이나 국수를 만들 때 어려움이 있다. 다양한 품종을 만들어내야 한다. 가치적인 소비도 필요하다. 내가 먹는 곡물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생각해야 한다. 지나치게 싼 농산물은 사람에 대한 착취나 생태계 파괴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판매 정책으로 낱개 판매나 장바구니 사용, 병 재사용 등도 자주 거론된다.

“한살림 매장 242곳 중 63곳에서 낱개나 소분(적게 나눠서) 판매를 하는데 딜레마가 있다. 일단 식품은 포장을 완전히 없애기 어렵다. 조합원이 이런 방식보다 포장해놓은 상품에 익숙하다는 점도 문제다. 병 재사용은 비용 문제가 있다. 한살림은 2010년 이후 일부 병을 수거해 재사용하는데, 새 병보다 비용이 1년에 1억원 정도 더 든다. 다른 생협과도 함께 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병 재사용은 환경과 재활용 차원에서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

배송 시스템이 발전하면서 엄청난 쓰레기가 나온다. 어떤 대책이 있나?

“코로나19 때문에 오히려 한살림 유기농 물품의 판매가 늘어났다. 사먹기보다 집에서 밥을 해먹는 경우가 늘어난 것이다. 집에서 직접 음식을 해먹는 일이 늘어난다면 장바구니를 들고 가서 장 보는 일도 늘어날 수 있다. 요새 텀블러나 손수건을 쓰는 사람도 많아졌다.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은 가능하다. 한편으로는 이런 문제가 있다. 최근 1인가구가 많아졌는데 1인가구는 집에서 음식을 잘 해먹지 않는다. 도마가 없는 집도 있다. 이런 1인가구를 위해 여럿이 함께 쓰는 ‘공유 부엌’이 필요하다. 공동체 아파트인 ‘위스테이’ 같은 데서 그런 시도를 한다. 집에서 밥을 해먹으려면 함께 밥을 먹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지붕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된 경기도 안성 한살림 물류센터. 상품을 운송할 때 재사용 상자와 바구니를 쓴다. 한살림 제공

지붕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된 경기도 안성 한살림 물류센터. 상품을 운송할 때 재사용 상자와 바구니를 쓴다. 한살림 제공

생협끼리 함께할 수 있는 일들

한국에는 한살림과 두레, 아이쿱, 행복중심, 대학생협 등 5대 생협이 있다. 생협들이 함께할 수 있는 일은 없나?

“여러 차원이 있다. 첫째는 친환경 농업과 생협을 확장하기 위한 5대 생협 협의체가 있다. 둘째는 2021년 9월부터 두레, 행복중심과 ‘생협함께’라는 공동 브랜드를 만들어서 쓰고 있다. 최근엔 포장재나 용기도 공동으로 쓰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온다. 물류센터를 함께 만들어서 쓰려고 논의도 했으나, 여건이 되지 않아 못하고 말았다.”

현재 한살림연합회 사무실이 서울에 있는데 한살림의 취지나 환경, 균형발전 차원에서 지방으로 옮길 계획은 없나?

“한살림생산자연합회는 원래 서울에 있었는데 2018년 대전으로 옮겼다가 2020년 다시 충북 청주로 사무실을 옮겼다. 지방으로 옮긴 것은 생산자에게 더 가까이 가려는 것이었지만, 균형발전 효과도 있었을 것이다. 현재 생산자 부문에서 이것을 어떻게 발전시킬지 고민 중이다. 한살림연합회 사무실을 지방으로 옮기는 문제를 논의한 적은 없다. 한살림이 처음 강원도 원주에서 시작해 서울로 옮길 때는 전국의 중심인 서울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현재는 ‘운동’도 중요하고 ‘사업’도 중요해서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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