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억여 년 전 지구의 탄생부터 현재까지 지구 나이를 지질학과 고생물학에서 대형 사건을 기준으로 구분한 개념이 ‘지질시대’다. 신원생대에는 초대륙의 분열이 시작되고 지구 전체가 눈덩이처럼 얼어붙었다. 고생대 캄브리아기는 생물다양성이 급증하고 최초의 척추동물이 나타난 시대다. 중생대 쥐라기와 백악기에는 공룡이 번성했고, 약 6천만 년 전 신생대 팔레오세기에는 대형 포유류와 꽃이 등장했다.
현재를 일컫는 신생대 4기 홀로세(충적세)는 약 1만 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현생인류(호모사피엔스)의 문명이 시작된 시기다.
그런데 20세기 들어 학계에선 ‘인류세’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인간의 활동이 지구환경에 큰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음을 경고하는 뜻에서다. 시점은 길게 잡아도 18세기 산업혁명 이후부터다. 지구 나이로 치면 눈 깜짝할 새도 안 되는 기간에 인류가 지구에 미친 폐해가 위험수위에 다가섰다. 엄청난 양의 닭뼈와 알루미늄·콘크리트·플라스틱 등 인류가 새로 만들어낸 물질인 ‘기술화석’(Technofossils)이 지층에 축적되고 있다. 화석연료 사용의 부산물인 온실가스 대량 방출은 기후위기 우려까지 낳는다.
인류세의 또 하나 특징으로 쓰레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인간은 자연환경을 위협하는 고형폐기물을 배출하는 유일한 생명체다. 고형폐기물은 인간의 일상생활이나 산업활동의 결과로 발생하는 폐기물 가운데 고체 상태의 것을 통칭한다. 원자력발전에 핵연료로 사용한 뒤 땅속 깊숙이 묻는 폐연료봉은 인간이 만든 폐기물 가운데도 최악의 위험물질이다. 플루토늄-239의 반감기(방사성물질의 독성이 절반으로 줄어들기까지 걸리는 시간)는 2만4천 년, 넵투늄-237은 200만 년, 우라늄-235는 무려 7억 년이 걸린다. 20세기 중반 들어서는 인간의 쓰레기 발자국이 우주공간으로까지 확대됐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은 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을 일상에서는 잘 느끼지 못한다. 쓰레기 수거와 처리가 신속하게 진행돼 쓰레기가 눈에 잘 띄지 않는 도시 주민과 선진국 시민일수록 더욱 그렇다.
인간이 지구촌에 쏟아내는 쓰레기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2018년 세계은행(World Bank)이 전세계 쓰레기 배출과 처리 실태, 정책 과제 등을 아우른 최신 보고서 ‘What a Waste 2.0’(얼마나 낭비인가!)의 집계를 보면, 인류가 쏟아내는 도시 고형폐기물만 연간 20억t이 넘는다.(2016년 기준) 세계 인구 한 명이 날마다 평균 0.74㎏의 쓰레기를 버리는 셈이다. 올림픽 경기 기준 수영장 80만 개를 가득 채울 수 있는 분량이다. 이 중 절반 가까이(46%)가 매립되거나 야적장에 쌓이며, 11%는 소각장에서 태워진다. 제품이나 퇴비(비료) 등으로 재활용되는 쓰레기는 전체의 16%뿐이다. 도시화와 경제성장, 인구 증가에 따라 지구촌의 쓰레기 생산량도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세계은행은 지금 추세라면 2050년에는 고형폐기물 배출량이 2018년 보고서 작성 시점보다 70%나 늘어난 34억t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쓰레기 배출량과 종류도 소득수준에 따라 다르다. 빈곤국 주민이 버리는 쓰레기는 하루 0.11㎏인 데 비해, 부유국 주민의 쓰레기 배출은 4.54㎏이나 된다. 고소득 국가가 세계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6%에 불과하지만, 그들이 버리는 쓰레기는 전세계 폐기물의 34%(6억8300만t)에 이른다. 예컨대 영국 시민의 1인당 연간 쓰레기 배출량은 482㎏, 미국은 그보다 훨씬 많은 773㎏으로 세계 전체의 12%를 차지한다. 미국산 쓰레기가 중국의 3배, 에티오피아보다 7배나 많다.
쓰레기를 양산하는 부자 나라들은 그동안 자국 쓰레기를 주로 동남아시아의 개발도상국이나 빈곤국에 떠넘겨왔다. 그러나 2021년 1월1일부터 폐플라스틱의 수출입 규제를 대폭 강화하는 국제협약인 바젤협약 개정안이 발효됐다. 중국·타이·베트남·말레이시아·필리핀 등 주요 폐기물 수입국들이 폐플라스틱 반입을 전격 금지하면서, 이들 나라로 향하던 쓰레기는 다시 원산지로 돌아가거나 다른 투기장을 찾아 떠돈다.
쓰레기 처리의 첫 단계는 발생한 쓰레기를 수거해 한데 모으는 것이다. 그렇게 수합된 쓰레기는 대부분 △매립 △소각 △분쇄 △분류(재활용 또는 수출입) △세척 △박테리아 분해 등의 방법으로 ‘처리’된다. 안전하고 위생적으로, 폐기물의 재질에 따라 분리수거하면 훨씬 효율적이다. 그러나 생활폐기물의 수거도 소득수준에 따라 큰 편차를 보인다. 고소득 국가들에선 96%의 쓰레기가 공식 시스템을 통해 수거된다. 반면 중하위소득 국가의 수거율은 51%, 저소득 국가는 39%에 불과하다. 이들 나라에선 폐기물의 절반 가까이가 제대로 수거되지 않은 채 방치되거나 비공식으로 처리된다.
특히 저소득 국가들에선 쓰레기의 93%가 매립 또는 소각 등 적절한 과정으로 처리되지 않은 채 쓰레기 야적장에 쌓인다고 한다. 이런 실태에는 쓰레기 처리 비용도 한몫한다. 2018년 세계은행 보고서는 저소득 국가의 지방정부들은 도시 지역 쓰레기 처리 비용이 예산의 약 20%를 차지해 단일 예산 항목으로 가장 큰 비중이라고 밝혔다. 중위소득 국가에선 지방정부 예산 중 쓰레기 처리 비용이 약 10%, 고소득 국가에선 4% 수준에 불과하다.
허술한 폐기물 관리는 인간과 자연에 직접적 위협이 된다. 쓰레기는 그 자체로 지구환경과 생태계를 위협하는 오염원이다. 매립은 토양오염, 소각은 대기오염, 바다로 흘러들거나 버려진 쓰레기는 해양오염으로 직결된다. 하수시설이 쓰레기에 막히면 오물이 넘치고 질병을 퍼뜨릴 수 있다. 오염 방지 설비를 갖추지 않은 공장 굴뚝과 쓰레기 소각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유독성 분진은 사람과 동물에게 호흡기 질환을 일으킨다. 바다로 흘러든 플라스틱 폐기물은 미세하게 쪼개져 해양생물의 생명을 위협할 뿐 아니라 먹이사슬을 타고 인간에게 되돌아온다. 엄청난 양의 매립 쓰레기는 토양오염의 주범이다. 비위생적 매립지에서 지하로 스며들거나 지표로 흘러나오는 폐수는 생태환경을 암살하는 독극물이다. 온갖 생활쓰레기가 매립되지 않은 채 산처럼 쌓이는 폐기물 야적장에서 돈이 될 만한 물품을 주워 생계를 연명하는 사람도 많다. 위험천만한 일이지만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건다.
쓰레기 매립이 토양만 병들게 하는 건 아니다. 온실가스 배출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미국의 경우 고형쓰레기 매립이 메탄가스를 배출하는 원인 3위다. 2019년 미국 전체 메탄가스 배출량 중 쓰레기 매립지에서 나온 메탄가스가 약 15%를 차지하는데, 이는 승용차 2160만 대가 연간 배출한 양과 맞먹는다.
인간이 만든 쓰레기 중 가장 골칫거리는 플라스틱을 비롯한 석유화학 제품이다. 세계적 권위의 과학저널 <네이처>가 발행하는 환경과학 전문지 <네이처 서스테이너빌리티>(Nature Sustainability)는 2021년 6월 연구보고서에서 “일회용 비닐봉지, 플라스틱병, 음식 용기, 음식 포장재 등 플라스틱 제품 네 가지가 인간이 만든 쓰레기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밝혔다. 이 전문지는 나열한 플라스틱 제품을 비롯해 플라스틱 뚜껑, 합성 밧줄, 낚시 도구, 산업용 포장재, 유리병, 음료수캔 등 10개 유형의 폐기물이 전세계 바다쓰레기에서 4분의 3을 차지한다고 지적했다. 모두 석유화학 제품인 이 폐기물은 인간의 일상생활에서 광범위하게 쓰이는데다 자연분해되기까지 수백 년이 걸리는 탓에 환경오염의 최대 주범으로 꼽힌다.
쓰레기 문제에서 가장 바람직한 대안은 일상생활에서 쓰레기 생산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다. 모든 제품이 재사용되도록 장려하고 폐기물이 나오는 것을 방지하는 데 초점을 맞춘 ‘제로웨이스트’(Zero Waste) 운동이 확산하고,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대체재 사용도 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2021년 7월23일 ‘재사용 소비 모델의 미래’ 보고서에서 “재사용 캠페인을 통해 2030년까지 세계의 모든 포장재 중 최소 10%가 일회용이 아닌 다회용 또는 재사용 가능한 제품으로 대체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런 활동만으로도 바다로 흘러가는 플라스틱 쓰레기의 거의 절반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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