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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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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종적을 감춘 대학생의 메모

등록 2022-12-28 19:59 수정 2022-12-29 08:25

안녕하세요. 제1443호 표지이야기 ‘정신질환을 진단받고 학생 자격을 잃었네’를 쓴 대학생 정혜빈입니다. <한겨레21> 독자에게 인사드릴 수 있어 기쁩니다. 이 기사는 정신질환을 가진 학생들이 대학에서 학사경고를 받는 현실을 다뤘습니다. 학습권은 헌법이 보장한 권리지만 대학이 책임을 방기하는 사이 아픈 대학생들은 그저 ‘버티는’ 삶을 삽니다.

정신질환이 발생하는 연령이 평균 25살입니다. 누군가 정신질환자로 생을 시작하는 출발선에 대학이 존재합니다. ‘함께 살아갈 수 없는 사람.’ 많은 사람이 정신질환자에게 가진 편견입니다. 정신질환자는 그로 인해 학생 자격을 잃고,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외로움에 시달립니다.

제가 넉 달 전 ‘제1회 표지이야기 공모제’에 냈던 취재원고는 2018년에 준비됐습니다. 노트북에 ‘정신질환 대학생 학습지원’ 폴더를 생성했을 때 저는 학내신문사 기자였습니다. 어느 날 캠퍼스에서 종적을 감춘 동기가 남기고 간 메모가 제 취재의 출발이었습니다. 메모에는 ‘수업도 듣지 못하는 내가 학생이 맞는가’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당사자분들을 만나기 쉽지 않았습니다. 사회적 편견으로 정신질환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익명의 힘을 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학교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의 우울증 게시판에 여러 번 게시글을 올렸지만 댓글은 달리지 않았습니다. 관심을 끌기 위해 ‘고닉’(고정 닉네임)으로 활동했습니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기간이 되면 어려움을 토로하는 게시글이 늘었습니다. 그때 다시 한번 물었습니다. “정신질환으로 공부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친구가 있다면 연락해줄래?” 기사를 내기까지 여덟 명의 당사자와 대화를 나눴습니다. 이들은 우울장애, 양극성장애, 불안장애,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등을 진단받았지만 장애인복지법상 ‘장애인’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 정부와 대학이 마련한 학습지원제도에서 제외됐습니다.

기사가 나온 뒤 인터뷰했던 학생들에게 다시 연락했습니다. 종강을 앞둔 지금 그들은 한 학기를 돌아보며 깊은 무기력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준우(가명)는 표지이야기를 읽고 또 읽었다고 합니다. “이번에도 다를 것 없는 학점을 받았어요. 저를 탓하며 잠들지 못할 때면 기사에서 받았던 위로를 떠올립니다.” 그의 말이 참 고마웠습니다. 공감해주신 독자에게도 감사드리며, 정신질환을 가진 학생들에게 다른 학습법이 제공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정혜빈 제1회 표지이야기 공모제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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