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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때문에 -2도 더 내려간다

등록 2022-12-17 02:19 수정 2022-12-17 08:10

기사를 마감하는 날(2022년 12월8일) 마침 국회에서 한국전력의 채권 발행 한도를 늘리는 한전법 개정안이 부결됐습니다. 소관 상임위에서 여야 합의로 올라간 법안이라 당연히 별 이견 없이 통과될 것으로 봤는데, 어쩐 일인지 본회의장 의원들 다수는 이 법안 통과에 부정적이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대부분 반대나 기권을 했고, 국민의힘 의원도 57명이 아예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정부·여당은 12월 임시국회에서 다시 법안을 발의해 처리하겠다는 계획입니다.

당장 한전이 유동성 위기에 몰릴 상황인데도 국회 분위기가 이런 것은 아무래도 정부와 여당의 편협한 인식이 작용한 듯합니다. 지금 필요한 건 한전의 대규모 적자를 불러온, 원가에 견줘 지나치게 싼 전기요금을 정상화하는 일입니다. 중장기적으론 기후위기에 대응해 전력산업과 시장구조를 개편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합니다. 주요국도 이참에 화석연료 의존을 끊고 ‘연료가 필요 없는’ 재생에너지 투자를 늘리고 있습니다. 한데 정부·여당은 그저 전 정부의 ‘탈원전’ 탓만 할 뿐입니다.

이날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본회의 발언에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의 여파로 한전이 적자 전환됐다”고 했습니다. 이에 양이원영 민주당 의원은 반대토론에서 “탈원전 정책으로 폐쇄한 원전은 월성 1호기뿐”이라며 “원전 비중이 29.5%였던 2012년은 고유가로 (한전이) 적자였지만 원전 비중이 29%였던 2020년에는 저유가로 흑자였다. 한전 적자, 흑자는 유가 변동을 반영하지 않은 전기요금 체계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국민의힘이 전 정부를 탓하려 했다면 탈원전이 아니라 연료비 연동제를 더 빨리, 더 제대로 도입하지 않은 문제를 지적했어야 합니다. 그래서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전기요금을 정상화하겠다’고 해야 했습니다. 한데 이런 얘기 없이, 그저 한전의 빚주머니만 늘리겠다고 합니다.

조명 꺼진 프랑스 파리 에펠탑의 모습으로 대표되는 유럽의 에너지 위기와 달리 우리는 이 위기를 아직 실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것처럼 느끼는 건 한전이 천문학적으로 적자를 늘리며 ‘총알받이’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까지 버틸지 아무도 모릅니다. 위기는 정공법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정직한 해결을 피하고 문제를 키우기만 하면 호미로 막을 일에 가래를 써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됩니다. 어느 때보다 정책결정권자들의 판단이 중요한 시기입니다.

영국에선 전기·가스 요금이 한 달 30만원 넘게 나오고, 집에서 난방할 수 없어 무료로 이용하는 버스를 온종일 타는 할머니 얘기가 화제였습니다. 조만간 우리에게 닥칠 일인지도 모릅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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