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6일 오후 한겨레신문사에서 결심을 거쳐 응모작 123편 중 최종 3편을 골랐습니다. 대상에 홍수현의 ‘우주를 방랑하는 유서가 되어’, 가작에 김수정의 ‘카스피주엽나무’, 전지은의 ‘짝수인간’을 당선작으로 올립니다. 예심을 한 <한겨레21> 기자와 결심 심사위원이 글을 읽으며 행복한 한 달이었듯이, 당선작에 이름을 올리지 않더라도 지구를 생각하고 글을 완성한 것으로 뿌듯한 ‘달리기’였기를 기대합니다. “사람들 속에 섞여 오랫동안 걷다보면 동일한 온도의 체온을 나눠 갖는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나는 그 온도가 딱 1도라고 생각했다. 그 1도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이기도 하고 삶에 대한 신념이기도 했다.”(‘1도의 세계’) _진행·정리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무작정 종말을 기다려야 할까
기후위기, 동물권, 미세플라스틱, 비거니즘 등의 문제에 접근할 때 죄책감은 어쩔 수 없는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죄책감은 처벌(앞날)에 대한 공포와 체념을 낳기도 한다. 그래서 죄책감은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 무엇도 하지 않고 종말을 기다려야 한다는 식의 기이한 결론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점에 주의하며 작품들을 읽었다.
‘짝수인간’은 세계기후협약에 따라 인류의 반은 짝수 날짜에, 반은 홀수 날짜에 깨어나게 한다는 발상에서 시작된 이야기다. 그렇다면 아내는 짝수이고 남편은 홀수인 난처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난처하게 시작한 이야기는 물 흐르듯 흘러간다. 이야기로서는 제일 재미있었다. 다만 비슷한 발상의 소설이나 영화가 이미 있었다는 점이 한계로 남았다.
‘카스피주엽나무’는 제목도 좋고 문장도 좋았다. 내용도 주제의식이 또렷해 따라 읽기가 편했다. 미세플라스틱이 인간의 몸에 축적돼 발생할 일을 현실적인 공포로 느껴지게끔 하는 상상력이 무척 안정적이고 전문적이었다. 대상을 받아도 충분한 작품이었다. 긴 이야기의 도입부처럼 느껴지니 계속 쓰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우주를 방랑하는 유서가 되어’는 우주선이 화자인 소설이다. 사물지능이라고 해야 할까. 지구를 찾아가는 임무를 띤 우주선인데 충돌로 기억력에 문제가 생겼다. 역시 난처한 상황. 문장력도 좋고 묘사도 잘돼 있는데 읽기가 쉽지만은 않은 묘한 소설이다. 그럼에도 대사에 읽는 맛이 있고, 농담도 유쾌하다. 이야기를 끝내는 방법도 산뜻했다.
덧붙여 개인적으로 끌렸던 소설은 ‘토마토가 사라진 세계’였다. 소설이 미완성처럼 느껴져 아쉬웠지만, 토마토가 내가 아닌가 하는 독백도, 소설 속 소설인 ‘잠들기’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좋았다.
김연수 소설가
‘우주를 방랑하는 유서가 되어’는 색채 감각, 인공지능과의 대화, 아름다움에 대한 탐험, 적절한 감정선 등 모든 요소가 균형감 있게 어우러진 작품이다. 죽어가는 지구에 비탄의 심정을 지니나 ‘아름다운’ 지구를 끊임없이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작가는 낙관할 근거도 조금 마련해준다. 주인공은 바로 SH095 우주선이다. 그는 위기에 처한 지구가 학사경고장처럼 피의 색깔인 줄 알다가 그것이 과거에 창백한 푸른 점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그 회상에 근거해 지구를 찾아가는 여정이 아름답다. “결국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휩싸여 과거로 향한다”는 문장에서 드러나듯, 그는 과거를 팽개치지 않고 거슬러 주검들이 쌓인 지구로 향하는 과감함을 보여준다. “죽음이, 반역이, 시체가”처럼 서너 단어로 병렬된 몇몇 문장은 독자에게 무거운 사유를 자극한다.
‘카스피주엽나무’는 미래에 인류가 갖게 될 가장 잦은 감정은 ‘슬픔’일 거라 암시한다. 앞선 슬픔은 뒤에 올 더 큰 슬픔으로만 잊힌다. 바이러스든 미세플라스틱이든 원인 모를 죽음이 빈번해지는 데서 인간은 죄책감을 피하기 어려운데, 다행히 카스피주엽나무가 미래에 빛 한 조각을 냈다. 이 작품은 취재가 돋보이고, 주제의식이 강하며, 많은 내용을 잘 담아냈다. 주인공이 “숨을 쉬는 것에 지쳐 있다”고 한 것에 동감하는 독자가 많으리라.
‘짝수인간’은 스토리가 흥미로웠다. 지구 위기를 가족·남녀 문제로 풀어낸 것은 여느 지원작들과 좀 달랐다. 선정작은 아니나 시종 동물의 관점에서 우리 사고방식을 뒤집어놓는 ‘인류박멸계획’도 인상적이었다. 이 작품은 동물을 대하는 인간의 ‘응답 능력’이 잘 발달해야만 지구가 제자리를 찾아가리라는 점을 잘 어필한다. 지구는 무거운 주제가 돼버렸다. 그럼에도 몇몇 작품은 소설적 상상력을 증폭해 현실의 논리를 재구성해내는 힘을 보여줬다.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
아쉽게도 본선에 오른 작품에는 논픽션이 없었다. 상당수는 기후위기가 진행된 미래와 미세플라스틱이 일으킨 디스토피아를 다뤘다. 요즘 청소년·청년 세대가 겪는다는 기후우울증이 실감될 정도로 불안과 우울의 감성이 이야기를 지배했다. 다수의 후보 작품을 읽으며 가습기살균제 사태, 코로나19 팬데믹, 지난여름 수도권과 포항의 홍수가 스쳤다.
‘카스피주엽나무’는 우울의 미에 빠지지 않고, 뚜벅뚜벅 걷는 사람의 소리가 나서 좋았다. 미세플라스틱이 일으킨 다발성 뇌경색으로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을 때, 이를 몰아낼 유전자를 지닌 나무가 희망으로 떠오르고, 한 과학자가 해결을 위해 나서는 이야기다.
‘짝수인간’은 서사가 강해 단숨에 읽었다. 차량 홀짝제를 하듯 인간이 홀짝제로 생활하도록 극약처방이 내려진 세계에서 아내와 함께 살기 위해 홀짝제를 하지 않는 한국으로의 망명 과정을 그렸다. 40~50년 전 급진적 환경주의자들은 기아에 허덕이는 저개발국의 주민을 도울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지구의 위기는 본질적으로 많은 인구가 원인이니, 인간을 줄일수록 좋다는 ‘혐인주의’의 발로였다. 세계 인구는 2050년대에 100억 명이 된다.
지구를 찾아 항해하는 우주선을 조종하는 인공지능이 주인공인 ‘우주를 방랑하는 유서가 되어’는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었다. 이번 문학상의 주제인 지구를 직접 다루면서, 지구 생명이 멸망의 나락에 빠진 원인을 우주적 시선으로 되짚는다. “심박수 측정하는 법을 연구하다가 심장을 뛰게 만드는 방법을 잊어버린” 인류는 맨날 학사경고장을 받다가 불에 타 죽었다.
‘지구는 망할까?’ 하고 질문을 던져본다. 지구는 그대로 있을 것이다. 지구는 땅껍질이고 짠물이며 서늘한 대기다. 그 무대에서 어떤 생물종은 없어지고 어떤 생물종은 적응할 뿐이다. 인간은 어떻게 될 것인가? 수많은 동물은 어떻게 될 것인가? 지구 위기는 어떤 이에겐 경제적 이득이고, 다른 이에겐 그럭저럭 통과할 만한 불편이고, 또 다른 이에겐 죽음을 무릅쓴 고통이다. 지난여름 폭우로 반지하 주택에서 네 사람이 익사했다. 닭은 2017년부터 1838만 마리가 폭염으로 죽었다. 약자의 입장에서 위기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앞으로도 읽고 싶다.
남종영 <한겨레> 스페셜콘텐츠부 기후변화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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