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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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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이야기해요

등록 2022-10-11 08:26 수정 2022-10-12 23:48
1433호 표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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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흑백사진처럼 남는 어떤 장면이 있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라, 아쉽게도 향수의 대상이 될 만한 고향을 갖지 못했다. 대신 서울 변두리 동네에 있던 외갓집을 고향처럼 추억한다.

잿빛 시멘트 담벼락 사이 길고 좁은 골목길을 지나 철문을 열면, 햇살이 곱게 내리쬐는 자그마한 마당이 보였다. 할머니가 겨울이면 동치미를 꺼내주던 장독들이 있었고, 여름이면 잎이 무성해진 넝쿨에 청포도 한두 송이가 매달리곤 했다. 청포도가 ‘맛’이 아니라 ‘연둣빛’ 포도송이로 기억 속에 알알이 박힌 것을 보니, 아마 어린 시절 청포도를 눈으로만 탐내다 돌아오곤 했나보다. 어른이 된 뒤에도, 아주 가끔 마음속에 청포도가 밀려서 온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게 송알송알 탐스러운 청포도를 구경하기 힘들다. 시장이나 대형마트에는 온통 검푸른 캠벨 아니면 땡글땡글 샤인머스켓뿐이다.

어릴 때 즐겨 먹던 사과도 언제부터인가 멀리하게 됐다. 맛있는 사과를 찾기 힘들어졌기 때문인 것 같다. 겨울은 예전만큼 춥지 않고, 여름은 예전보다 뜨거워졌다. 가뭄, 폭염, 홍수, 태풍이 너무 자주 등장한다. 기후변화로 과거 주산지였던 경북 영천 등에서는 더 이상 사과를 재배하지 않고, 재배 지역은 북쪽인 강원도 영월과 정선까지 올라갔다. 포도, 복숭아, 감귤, 단감 등 대부분 과일 재배 지역의 변화도 비슷하다. 최근 배추·고추 가격이 금값이 된 이유도 따지고 보면 기후변화 탓이다. 고랭지 배추를 재배하는 면적이 20년 전보다 3분의 1로 줄었다고 한다.

소비자는 밥상에 오를 채소 가격이 급등해 걱정인데, 반대로 농민들은 쌀값이 폭락해 울상이다. 2022년 9월 통계청이 조사한 산지쌀값(도정한 쌀 20㎏의 도맷값)은 전년보다 20% 넘게 폭락했다. 45년 만의 최대 하락폭이다. 뒤늦게 정부가 공공비축미 45만t을 추가 매입하겠다고 밝혔지만, 농민들의 시름을 덜기엔 역부족이다. 이번호 표지 사진은 9월30일 전북 진안에서 농민들이 논을 갈아엎으며 시위를 벌이는 모습이다. 이것을 류우종 기자가 드론으로 사진 찍었고, 김양진 기자는 전북 김제에서 논농사를 짓는 농민들을, 이정규 기자는 경북 안동에서 고추농사를 짓는 농민들을 만났다. 쌀값 폭락과 채소값 폭등이 사실은 기후변화로 인해 우리 밥상을 위협하는 동전의 양면임을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 소장이 글을 통해 짚어줬다.

맞다. 다시, 또 기후 이야기다. 제14회 손바닥문학상 응모 주제를 ‘지구’로 정했다. 지구의 신음에 응답할, 문학적 상상력이 가득한 글을 기대한다.(9쪽 참조)

‘비건 비긴’ 통권호(제1424·1425호)를 만들고 나서 독자들과 기후위기, 지구, 채식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온라인 대화방(카카오톡 오픈채팅방 ‘한겨레21 지구를 지켜라’)을 열었다. 기자들보다 더 자주 관련 정보를 올려주시는 독자 여러분 덕분에 많이 듣고 배우고 있다. 독자편집위원회3.0, 지구를 지켜라에 이어 세 번째 온라인 독자모임을 시작한다. (기자들의 강권에 못 이겨) 매주 금요일 오후 5시 편집회의 일부를 공개하는 짧은 브리핑을 진행하기로, 덜컥 약속해버렸다. 기자들의 취재 뒷이야기도 전하려 한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한겨레21 독자들과 함께’를 검색하면 ‘수다방’에 입장하실 수 있다. 매달 ‘이달의 독자’께 선물도 드린다.(8쪽 참조) 맞다. 다시, 또 독자 여러분과 더 친해지고픈 몸부림이다. 기대하며 기다려본다.

황예랑 편집장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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