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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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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난 아파트 별내

등록 2022-09-14 15:15 수정 2022-09-14 23:34
1429호 표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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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집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많은 것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 아파트에는 그 비밀이 있을 수가 없다.”(<두꺼운 삶과 얇은 삶>)

김현은 1978년 이렇게 썼다. 그 무렵, 서울 잠실 주공아파트 단지의 입주가 시작됐다. 이듬해에는 대치동 은마아파트가 완공됐다. 대형 민간아파트 단지의 시대가 열렸다. 대한주택공사가 국내 최초의 공공임대아파트를 지은 것은 1971년의 일이다. 서울 개봉동에 5층짜리 임대아파트 6개동을 지었다. 13평형이 보증금 7만8천원, 월 임대료 6500원이었다. 그해 준공된 여의도 시범아파트의 분양가가 450만원 남짓이었으니,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반포의 32평 아파트에 살았던 김현은 아이들이 “아파트의 회색 시멘트와 잔가지가 잘 정돈된 가로수들”만 보고 느끼고 살게 해서, 자신도 땅집의 ‘두꺼운 삶’이 아니라 아파트의 삶에 완전히 길들어서 “주위의 모든 것을 엷게 본다”며 부끄럽다고 썼다. 그리고 “아파트 값이 움직이는 시기에 모든 아파트 주민이 소다를 잔뜩 넣은 밀가루 빵처럼 부풀어” 오르고, 아파트 주민들 사이에 몇 평대 아파트에 사는지, 자동차가 있고 없는지를 따지며 “거주 공간이 아니라 자기가 우월함을 확인하는 전시 공간”이 되고 있음을 꼬집었다.

44년이 흘렀지만 김현이 말한 ‘아파트 병’은 심하면 심해졌지, 나아지지 않았다. 이는 김명수가 <내 집에 갇힌 사회>에서 적확하게 분석했듯이 도시에서 자기 집을 가짐으로써 “중산층의 문턱”을 넘고 나아가 안정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다고 여기는 탓이다. “(중산층은) 사적 욕망의 발현을 넘어 소유를 통해 생계를 구성하려는 사적 필요의 산물로 인식”한다. “주거라는 ‘목적’(또는 필요) 자체가 경쟁적 생계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탓이다. 집은 ‘사는 곳’이 아니라 ‘사는 것’이 됐고, ‘사는 것’을 넘어 이제는 ‘살아남기 위한 것’이 됐다.

노태우 정부는 1988년 영구임대주택을 최초로 공급했다. ‘사회주택’의 실질적인 첫발을 뗀 셈이었다. 하지만 ‘영구’ 대신에 김영삼 정부는 5년 거주 공공임대주택을, 김대중 정부는 1998년 10년, 20년씩 살 수 있는 국민임대주택을 공급했다. 도시 저소득층의 주거 안정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공공임대주택은 전체 주택의 8%가량에 불과하다. 지하, 옥상, 고시원 같은 ‘집 아닌 집’에서 사는 가구가 85만6천(2020년 한국도시연구소)에 이른다. 윤석열 정부는 이마저도 공공임대주택 2023년도 예산안을 30%가량이나 삭감해버렸다. 시민사회단체들은 “문재인 정부보다 적은, 매년 10만 호 공공임대주택 공급 공약마저 파기하겠다고 선언한 것에 다름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이런 때에 조금 이상한 그러면서도 특별한 아파트 이야기를 표지이야기로 다뤘다. 공공임대주택 등 부동산 정책의 변화가 당연히 중요하겠지만, ‘살아남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는 곳’으로 아파트를 인식하고 그곳에서 삶을, 공동체를 가꾸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어떤 희망의 가능성을 발견해보고 싶었다. 이곳에선 동네책방과 동네카페, 협동상회를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고 아빠 육아모임, 1인가구 밥해 먹는 모임 등 각종 공동체 모임이 활발하다. 정말 ‘별난’ 것을 다 하는 ‘별내’ 아파트다.

국내 최초의 아파트형 사회주택인 ‘위스테이’ 별내에 2년째 살고 있는 박기용 기자가 “주민들이 아파트를 개별적으로 소유하지 않고 협동조합을 통해 간접 소유하기 때문에 만들어질 수 있는 공동체의 삶”을 전한다. 신지민 기자는 아파트 관리소장인 ‘동네지기’를 인터뷰했고, 손고운 기자는 이러한 구조의 아파트형 사회주택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그렇다면 많은 사람이 이런 아파트에서 살 수 있을지를 하나하나 따져봤다.

2022년 설에 ‘남의 집’이지만 ‘나의 집’처럼 사는 사람들, 세입자이지만 소유자보다 더 ‘내 집’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표지이야기로 다룬 데 이어, 한가위에도 ‘집’ 시리즈를 이어간다. 어김없이 퀴즈큰잔치도 이어간다. 설에 이어, 이번에도 종이엽서는 없다. 온라인에서 퀴즈 응모를 받는다. 정성스럽게 마련한 별의별 상품을 받아갈 행운이 독자 여러분에게 함께하시길 소망한다.

황예랑 편집장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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