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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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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게 다 똑같다면

등록 2022-07-08 17:09 수정 2022-07-09 01:53

2022년 6월 말 기초생활수급자 취재를 위해 서울 강서구의 한 임대아파트에 갔을 때 일입니다. 젊은 날 중식요리사였던 김주현(62·가명)씨는 “누추한 곳이라 죄송하다”며 노브랜드 캔커피를 건넸습니다. 다리가 아픈 상황인데도 취재진이 온다고 가까운 매장에 가서 일부러 사온 겁니다. 아침식사도 하지 못했던 저는 커피를 마시니 잠이 깨고 허기가 가라앉았습니다. 커피를 마시고 나니 김씨가 집안 이곳저곳을 설명해줬습니다. “이건 복지사 아무개님이 기부해주셨다, 이건 어디서 주웠다, 이건 동묘시장에서 유통기한 다 된 걸 샀다.” 그리고 수줍은 표정으로 계속 “누추해 부끄럽다”고 했습니다. 그때 함께 취재를 간 출판사진부 박승화 기자가 그러더군요. “에이,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죠, 뭐.”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은데, 저는 이번 취재를 하기 전에 대체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요. 기초생활수급비(생계급여)가 월 58만원이란 얘길 듣고 어쩌면 ‘먹고’는 살 수도 있겠단 생각을 내심 했습니다. 58만원이 오롯이 식비일 거란 착각을 한 거죠. 평범한 직장인을 생각해봅니다. 월급 200만~300만원이 들어와도 통장을 스치듯 지나갑니다. 이분들도 똑같았습니다. 운 좋게 임대아파트에 살아도 관리비가 있습니다. 임대아파트에 못 들어간 분은 집이 덥거나 추워 수도·광열비가 유난히 많이 나옵니다. 몸이 아파 근로능력이 없어 기초생활수급자가 된 분이 대다수인데, 수도·광열비를 아끼다보니 아플 일이 더 많습니다. 그뿐입니까. 교통비, 통신비, 생필품에 병원 비급여 진료비, 약값까지. 병원비가 없어 제때 병원에 안 가니 건강이 더 나빠지는 악순환을 겪습니다. 식비는 월 58만원의 절반이라도 채우면 다행입니다.

가계부를 작성한 기초생활수급 25가구 가운데 간혹 자신이 먹을 걸 아껴가며 강아지를 키우거나 담배를 피우는 분도 계셨습니다. 이것도 “사람 다 똑같다”고 생각해보면 이해됩니다. 가족이 없고, 친구가 사라졌습니다. 아프고 돈이 없으면 인간관계부터 없어집니다. 강아지가 유일한 벗이고, 굶어가며 피우는 담배가 유일한 탈출구입니다. 취재 중 만난 한 분이 그러시더군요. “아침에 일어나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해보세요. 일할 능력이 안 되는 몸도 몸인데, 차비도 저희한텐 무섭거든요. 그냥 불 꺼진 조용한 방 안에서 온종일 대충 먹으면서. 도시에 살아도 나 혼자 산속 절에 있는 기분입니다.”

지난호 기사가 나가고 이런 댓글을 단 독자가 있었습니다. “오이 맛있겠네. 부자들도 검소하게 밥 먹더라.” 오이를 썰어 반찬 삼는 사진에 달린 댓글입니다. 우리는 온갖 채소와 소스, 닭가슴살이 들어간 다이어트 도시락을 이틀도 먹기 힘들어합니다. 이분들은 복지관에서 얻어온 국물에 오이, 김치와 먹는 밥이 맛있을까요. 집 밖으로 몇 걸음만 걸어나가면 풍요의 거리가 펼쳐져 있습니다. 피자, 치킨, 아구찜, 삼겹살. 그 많은 음식 냄새를 지나 집으로 들어와 초라한 밥상을 마주합니다. 만약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다면, 이분들도 우리와 똑같은 감정을 느낄 겁니다.

기사가 인터넷에 나간 첫날,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한 조롱성 댓글을 보며 우울한 밤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메일함을 열어보니 “후원할 방법을 알려달라”는 편지들이 와 있었습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세탁소를 운영하신다는 동포 할아버지, 강원도 동해에 사는데 반찬과 후원금을 보내고 싶다는 아기 엄마, 유기농 쌀을 전달하고 싶다는 분까지. 인터넷으로 본 세상은 때로 너무 가혹해 보이지만, 실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엔 이렇게 따뜻한 분들이 계십니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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