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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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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속내 속속들이 아는 ‘동네 정당’ 꿈꾸며

등록 2022-05-27 01:07 수정 2022-05-27 10:37

대선이 끝나고 지방선거가 다가옵니다. 불과 3개월 만입니다.

대의민주주의체제에서 모든 선거는 각각 고유한 의미와 중요도를 갖습니다. 한데 지난 대선의 자장 아래 치르는 이번 지방선거는 그런 성격이 약해 보입니다. 새 정부 출범 22일 만의 선거인데다, 차기 주자들이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지는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탓에 ‘대선 연장전’ ‘미니 대선’이란 말도 들려옵니다. 직접민주주의, 주민자치라는 지방선거의 본령에 가닿을 이야기를 해야 했습니다. 제1413호 표지이야기로 다룬 ‘지역정당을 인정하자’는 주장은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등이 모인 ‘정치개혁공동행동’에서 제시한 주요 정치개혁 과제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처음 선거제도 문제를 접한 건 20여 년 전 대학에서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의 전신인 ‘진보정당 창당을 위한 대학생 모임’ 활동을 하던 때였습니다.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라는 다소 긴 이름의 선거제도를 같은 캠퍼스 내 대학생들에게 홍보하는 캠페인을 했습니다.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에 익숙한 제가 보기에, 개별 정당의 지지율 그대로 의석 비율이 정해지는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는 민의가 그대로 반영되는, 제대로 된 선거제도였습니다. 민주노동당 같은 진보적인 제3정당이 원내에 진입하려면, 이 정당을 지지하는 이들의 표가 사표가 되지 않게 하는 제도가 필요했습니다. 그것은 지금의 거대 양당이 아닌 다른 정치세력에서 대안을 찾는 이들에게 ‘당신이 행사하는 표의 가치는, 줄곧 당선되는 이들만 뽑아온 이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고 이야기해주는 것이었습니다. 비례대표제라는 선거 방식을 처음 접했을 땐 당장에라도 이 땅에 다원화된 사회가 이룩될 것 같았습니다.

우린 누구나 한 사람이 한 표를 행사하는 민주주의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지 않는, 누구나 저마다의 가치를 추구하는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지향합니다. 정치세력이 다양해지는 것은 그만큼 그 사회가 풍성한 대안을 가진 건강한 사회임을 보여줍니다. 군사정부가 지역정당을 금지하면서 내세운 단순한 ‘군소정당 난립’과는 다릅니다. 성숙한 시민들은 진정성 있는 대안정당과 그저 이해를 좇을 뿐인 작당을 구별할 줄 압니다. 우리 사회는 이제 그 정도의 성숙함은 갖췄다고 생각합니다.

중앙정치에 예속된 거대 양당의 지역조직이 우리 동네, 우리 주민의 속내를 속속들이 알 순 없습니다. 지역에 천착한 이들이 모여 그 지역의 정치를 하는 모습을 꿈꿔봅니다. 이미 우리와 비슷한 수준의 다른 나라에선 익숙한 풍경입니다. 독일에선 유권자 연합 같은 선거조직도 일반 정당처럼 선거에 출마합니다. 제가 사는 도시에서 제가 아는 익숙한 이들이 새로운 희망과 대안을 품고 선거에 출마하는 상황을 상상해봅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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